입원 안 알리고 보험 가입 넉달 뒤 백혈병
보험사, 보험금 지급 거부
1·2심 “고지의무 위반과 발병 사이 인과관계 없어”
대법 “아니다…보험금 지급 의무 없어”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보험계약 체결 직전 입원치료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가 4개월 뒤 백혈병이 발병했다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과 백혈병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신숙희)는 보험계약자 A씨가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보험금 1억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 측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2심) 판결을 뒤집고, A씨 패소 취지로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9년 12월께 자신의 약혼자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계약을 현대해상과 맺었다. 문제는 약혼자가 불과 약 2주 전 신우신염으로 10여일간 입원치료를 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으면서 생겼다. 신우신염은 신장 등에 세균이 감연되는 질환이다.
특히 계약 체결 당일 약혼자의 진료의료서엔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게 확인된다”며 “감염내과, 혈액내과 진료를 의뢰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백혈병은 백혈구 수치의 증가가 확인되면 골수검사를 진행해 확진에 이르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A씨는 이를 보험사 측에 알리지 않았다.
당시 보험계약 청약서의 ‘계약 전 알릴 의무’ 항목엔 ‘최근 3개월 이내에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건강검진 포함)를 통해 의료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A씨 측은 입원, 질병의심소견란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은 채 ‘아니로’라고 답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보험 계약 체결 4개월 후 A씨의 약혼자는 상급병원에서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A씨는 계약대로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보험금 지급도 거절했다.
A씨 측은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A씨가 보험사에 대한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에 대해선 양측 모두 다툼이 없었다. 다만 A씨 측은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보험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보험금 일부를 지급해달라고 했다.
이는 상법 제655조에 근거한 주장이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으면 보험사는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
1심과 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을 맡은 부산지법 심우승 판사는 2023년 7월, 보험사가 A씨에게 보험금 1억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생략-
하급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기록상 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있는 사정이 보인다”며 보험사 측 승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입원치료 사실 및 진료의뢰서 발급 사실과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며 “A씨 측 주장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 이유에 대해 “진료의뢰서에 백혈구 수치 등이 지속적으로 높게 확인된다는 내용이 기재됐다”며 “이는 백혈병을 의심할 수 있는 주된 지표일 뿐 아니라 실제 4개월 뒤 백혈병을 진단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입원치료·통원치료를 받다가 백혈병 진단을 받을 때까지 4개월의 시간적 간격이 인과관계를 전혀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장기간이라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2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깨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 향후 진행될 4번째 재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험사 측 승소로 판결이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