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5시쯤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NO CHINA’(노 차이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시위대 50여명이 행진을 벌였다. 인근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른바 ‘멸공 페스티벌’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헌법재판소 해체” “탄핵 무효” 등 구호를 외쳤다.
이날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들을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에게 “왜 사진을 찍느냐”며 항의하고 “중국 공안에 이를 거냐. 우린 중국을 공짜로 줘도 평생 안 간다”고 윽박지르듯 말했다.
최근 탄핵 반대 집회는 한남동 관저와 헌법재판소에 이어 중국대사관 앞까지 옮겨갔다. 윤 대통령 측과 그 지지자들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중국인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중국 혐오(혐중) 정서가 고조됐다.
‘중국이 한국을 점령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부정선거 음모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입법·행정·사법 기능과 언론이 “중국 자본에 먹혔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를 ‘우한 폐렴’으로 부르거나 실업급여 반복 수급을 언급하는 등 그간 외국인 차별에 쓰인 논리도 꺼내 들었다.
백지원 전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시위에서 “중공에 부역하는 매국 세력들이 중국인들에게 참정권까지 부여하고 중국인들은 우리 혈세로 만든 국민건강보험을 수백억원씩 수탈해간다”며 “실업급여 편취하고 부동산 투기하고 입시 특혜 등 특권으로 대한민국을 속국화하고 대한민국 청년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인터넷 매체들은 연일 음모론을 펼치며 혐중 정서를 조장하고 있다. 한 매체는 “중국에서 온 이민자 여성은 모두 중국인으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중국 본토와 매우 밀접하다”고 했다. 이주여성들이 조직적으로 부정선거에 개입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극우 세력이 확산시킨 혐오는 물리적 위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중국인 여성 관광객들을 밀치며 “중국인이 여기 왜 왔어!”라고 소리치는 영상이 공유됐다.
중국동포들은 극우 세력의 논리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일상에서 혐오를 마주하게 되자 우려하는 분위기다. 2일 영등포역에서 만난 한 중국 출신 결혼이주민 A씨는 “(중국어) 억양이 남아 있는 사람 중에는 ‘밖에 나가서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25년 전 결혼이민을 온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루머를 퍼뜨리려는 사람들이 화풀이할 곳이 없어서 중국동포들을 겨냥한다”며 “근거 없는 이야기로 혐중 정서를 키우다 보면 중국의 혐한 정서까지 커질지 모른다. 결국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무역상이나 유학생 등 민간 교류만 위축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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