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8살에 사별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울고 살았어요. 제가 여행을 참 좋아하거든요. 150개 나라를 가고 싶은데 30곳 정도 갔어요. 함께 할 여행 파트너 찾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 검은색 트렌치 코트에 은빛 브로치를 단 60대 여성 A씨가 마이크를 잡더니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저기서 "마음 고생 많이 했겠네", "대단하네" 등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70대 여성은 연보라색 마스크를 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여성은 "젊었을 때도 미팅 한번 안 해봤고 이 나이에 이런 자리 처음 와봤다"며 "죽을 때까지 예쁘게 살고 싶어서 별명이 '이쁜이'"라고 했다.
이날 운현궁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깜짝 소개팅이 열렸다. 참가자들 평균 연령은 75세. 최고령 참가자 나이는 91세였다. 새로운 인연을 찾고 싶은 '싱글'이라면 이번 행사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남성 16명과 여성 18명이 참가했다.
행사에서는 닉네임(별명) 소개를 비롯해 그룹 대화, 1대 1 자유대화, 레크레이션, 매칭타임 등이 이어졌다. 처음엔 어색한 분위기이었지만 함께 대화를 나누고 스킨십을 하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최종 매칭된 커플은 총 6팀이었다.
2대 8 가르마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80대 남성은 하늘색 셔츠에 칼주름이 잡힌 회색 정장 바지를 입고 나왔다. 이 남성은 중저음 목소리로 "항상 향수를 뿌린다"며 "남자가 혼자 살면 냄새도 나는데 항상 자기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야채를 좋아해서 집에서 키워먹는다", "일요일마다 산악회를 다녀서 산을 좋아한다", "가리는 음식은 없다", "사직동에 운동하러 자주 간다" 등의 얘기가 오갔다. 한 60대 여성은 아모르파티 노래가 흘러 나오자 무대 위로 올라가 춤을 췄다.
사회자가 '여기에서 가장 자식을 많이 낳은 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손을 들었다. 한 여성은 "자녀 넷이고 딸이 57살"이라고 말했다. 그 옆에 있던 여성이 질세라 "자녀 넷에 아들이 62세"라고 하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곳을 찾은 참가자들은 지루한 일상 속에 새로운 인연을 찾고 싶다고 했다. 이별과 사별의 아픔을 겪으면서 평생을 홀로 살다 보니 외로운 마음이 컸다고 했다.
최종 커플이 된 67세 여성 B씨는 상대 남성과 손을 잡고 운현궁을 떠났다. B씨는 "딸이 둘인데 시집 가고 혼자 산 지 20년이 됐다"며 "그냥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에 올라온 지 35년이 됐다는 남성 C씨는 "그동안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술도 마시고 집도 잘 안나왔다"며 "10년 넘게 헛헛한 마음이 들었는데 친구가 한번 신청해보라고 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최고령 참가자인 91세 남성 역시 행사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는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산 지 24년 됐다"며 "늙은이한테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주려는 취지가 좋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새로운 친구와 대화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라며 "내년에도 반기별로 어르신 솔로 프로젝트를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https://naver.me/I55sGmZ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