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E4 유전자 동형접합형 보유자는 알츠하이머에 걸릴 게 거의 확실합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산파우 병원의 기억연구소 소장 후안 포르테아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6일(현지시각)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생명과학·의학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실렸다.
APOE 유전자는 체내의 지방 대사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변이형 중 하나인 APOE4 유전자는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크게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APOE4 유전자를 한 개만 물려받으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커지고, 두 개인 ‘동형접합형’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그 위험성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 논문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APOE4 유전자 동형접합형을 가진 이들은 알츠하이머에 ‘반드시 걸린다’는 단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연구자들을 특히 APOE4 유전자 동형접합형은 알츠하이머의 위험 요소가 아니라 ‘원인’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연구진은 미국 국립 알츠하이머 협력센터가 보유한 3297명의 뇌 기증자 데이터와 유럽·미국의 5개 기관이 가진 1만명 이상의 임상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APOE4 유전자 동형접합형 보유자는 55세에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병적 이상 증상을 보였다.
또한 APOE4 유전자 동형접합형 보유자 중 많은 이들이 65세가 되면 인지 기능 저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APOE4 변이 유전자가 없는 이들보다 더 젊은 나이였다.
APOE4 유전자 동형접합형을 가진 이들은 인구의 2~3%를 차지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중에서는 15~20%로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연구단은 또 치매를 유발한다고 알려진 APOE4 유전자 동형접합형이 한국인에게는 세계 평균에 비해 3배 이상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국인의 약 20%가 이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대로 된 치료법이 나오기 전까지 APOE4 유전자 동형접합형을 보유했는지를 환자가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스탠포드 의과대학의 신경과 전문의 마이클 그레시우스 박사는 “알츠하이머 증상이 없다면 자신이 APOE 변이 유전자를 가졌는지 확인하지 말아야 한다”며 “현시점에서는 슬픔만 초래할 뿐”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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