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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결혼후 첫 명절 (현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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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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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맞아 스트레스 지수가 만렙을 찍은 며느리로서 내가 겪은 명절 스트레스의 의미와 이유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1. 가장 큰 이유- 자아소멸의 아픔

초중고딩 때는 몇등 했는지, 몇점 맞았는지, 대학 가서는 남친 생겼는지, 장학금은 받았는지, 토익은 몇점 나왔는지, 입사 후에는 야근은 많은지, 연봉은 올랐는지, 요즘은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나의 동정이 명절마다 친척들의 관심사. 그러나 결혼하고 시댁에 가면 내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나는 남편을 ‘내조’하고 회사 잘 다니도록 챙겨줘야 하는 자에 불과하므로 아침은 잘 차려주고 있는지, 반찬은 뭘 해먹었는지에 대한 질문만이 있을 뿐이다. 나라는 존재가 작아지다 못해 아주 그냥 우주의 먼지로 소멸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심적 고통이 크다.





2. 남녀 불평등 구조가 집약된 행사

80년대생들은 여자라고 차별받으며 자란 적도 없거니와, 도리어 고시 등 각종 시험에서 여자의 능력이 훨씬 우월한 것도 경험했고, 여자라고 연봉이 더 적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남녀역차별’ 현상이 화제가 되는 시대에 사회에 진출했다. 따라서 합당한 이유 없이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과 부조리는 결혼 후 첫 명절 때 겪게 된다. (어쨌든 내 경우는 그랬다)

며느리와 사위가, 도대체 여자와 남자라는 것 빼고 다를 것이 무어란 말인가. 왜 내가 시댁에서 2박3일간 부엌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남편이 우리집에서 설거지 한번 한다고 수세미 이리 내라, 아니 왜 자네가 설거지를 하나 온집안이 수선이란 말인가. 왜 나의 노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가. 왜 한쪽은 의무이고 한쪽은 선의인가. 나는 어떤 집안에도 ‘시집온’ 적이 없고, 내 알아서 스스로 독립된 가정을 이루었으며 단지 이집 아들의 배우자일 뿐인데.





3. 시댁은 아무리 좋아도 시댁이라는 깨달음

아니 애정남이 정해줬지 않은가. 며느리들은 명절 당일 아침 설거지 마치면 바로 친정가라고. 과일도 먹지 말고 가라고.

더군다나 첫 명절이라 우리 친가, 외가 조부모님께 인사드려야 해서 차례지내고 바로 가겠다고 말씀드렸고,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가게?’‘손님들 다 가시면 가지’‘이따 가도 괜찮다’... ‘어머니 제 신발 어디 놓으셨어요?’‘신발은 왜?’ 으악~ 예예, 저도 저희집에 가려고요ㅠㅠ 심지어 나중에 ‘새벽같이 갔다며’ 소리도 들렸다.

나는 무슨 논리를 들이대도 이집 식구는 아니란 말이다.피를 나눈 가족이 될 수는 없다 말이다. 기본적으로 서로를 항시 배려해줘야 유지되는 인위적인 관계에 있단 말이다. 그리고 나도 우리 집이 따로 있다 말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명절의 꽃, 차례도 다 지낸 상황에서, 이제 더 할 음식도 없는데 왜 어르신들이 아량을 베푸시어 ‘인가’를 내리셔야 ‘내가 우리집에’ 갈 수 있는 거지? 나름 토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처음 해보는 일들을 서툴지만 완전 땀 흘리며 했는데 다~ 없어지고 나는 ‘새벽에 사라진 며느리’로 남았다는 슬픈 이야기.





4. 외숙모의 재발견

우리 외숙모들은 명절 때 항시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밥먹을 땐 가장 늦게 들어와 밥만 후다닥 드시고 가장 먼저 일어나 다시 부엌으로 가셨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풍경이라 원래 외숙모란 분들은 부엌에 계시는 거라는 인식이 박혀있어서 거기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 갑자기, 불현듯, 우리 외가가 외숙모들의 시가이며, 시가라서 부엌에 있었던 것일 뿐이고, 친정은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에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 모친이 외가에 ‘이따 내가 뭐 줄게 있으니까 다들 기다리고 있으라’는 전화를 하는 걸 듣고 순간 외숙모에 빙의--;되어서 ‘그깟 선물이 뭐라고 엄마가 기다리라 마라 그러냐 외숙모는 집에 안가고 싶겠냐’라며 괜히 짜증을 부렸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장을 제대로 못 펴는 이유

결혼 당시 양가 도움을 일절 안 받겠다, 남자 집-여자 혼수 구조는 불합리한 구습이므로 똑같이 둘이 모아서 우리 힘으로 하겠다고 공언했을 때는 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를 내가 싫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으므로 당당할 수 있었다. 남편만 혼자 ‘왜 남자가 집을 해와야 해? 난 싫어’ 했으면 주위에서 욕먹었을 게 분명하지만 내가 먼저 주장했기에 상황은 깔끔하였다. 그런데 명절에 대해서는, 여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에서 내가 ‘추석엔 우리집 먼저 갈까?’ 등 되도 않는 소리를 해버리면 ‘며느리의 도리’라는 어르신들의 절대논리 앞에서 아무런 설득력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난 절대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남편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육체노동의 힘겨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결혼 하나로 너무 달라진 나의 위치에 대한 억울함과 섭섭함, 반경 300키로 안에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사투리도 못알아듣겠는 답답함, 다 한가족인데 나만 동떨어져 있는 듯한 외로움, 이런저런 설움이 몽땅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 시댁 어르신들께서 많이 배려해주신 것은 사실이나, 그런데도 서러워서 시댁 있는 이틀 동안 밤마다 우느라 눈이 부어서 화장도 못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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