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들이 바른 말로 책망을 하면,
저(폐비 윤씨)는 손으로 턱을 고이고 성난 눈으로 노려보니,
우리들이 명색은 어버이인데도 이러하였다.
하물며 주상에게는 패역(悖逆)한 말까지 많이 하였으니,
심지어는 주상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발자취까지도 없애버리겠다.’고 하고
또 스스로 ‘상복(喪服)을 입는다.’ 하면서
여름철에도 항상 흰 옷을 입었다.
그리고 늘 말하기를,
‘내가 오래 살게 되면 후일에 볼만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는 그가 어린 원자(元子)가 있기 때문에 후일의 계획을 한다는 것이니, 우연한 말이 아니다.
- 정희왕후가 폐비 윤씨에 대해 내린 언문교서 중 일부-
참고로 윤씨가 혼날때 손으로 턱을 괸채로 노려봤다는 왕실 어른들은

시할머니 정희왕후
성종이 어릴때 수렴청정으로 조선을 다스리고
계유정난때 남편이 주저하며 망설이자 갑옷을 내어와서 입혀줬던 여장부

시어머니 인수대비
이분은 뭐 워낙 유명....
세자빈 시절에 세조가 지어준 그녀의 별명은 '폭빈'
저 후덜덜한 왕실 어른들한테
이 정도로 패기갑이었던 며느리는
윤씨말고는 훗날 숙종 엄마인 명성왕후 정도밖에 없을듯...
차이가 있다면 폐비윤씨는 후궁 시절에는 엄청 공손하고 왕실어른들한테 잘해서
차기 중전으로 낙점을 받은건데 중전이 되자마자 돌변했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