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 갈까요. 멍을 덮으러, 열을 덮으러 삿포로에 가서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술을 마실까요.
술을 마시러 갈 땐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거예요.
전나무에서 떨어지는 눈폭탄도 맞으면서요.
동물의 발자국을 따라 조금만 가다가 환해지는 거예요.
하루에 일미터씩 눈이 내리고 천일동안 천미터의 눈이 쌓여도 우리는 가만히 부둥켜 안고 있을까요.
미끄러지는 거예요. 눈이 내리는 날에만 바깥으로 나가요. 하고 싶은 것들을 묶어두면 안 되겠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절망한 것들을 사과할 일도 없으며, 세상 모두가 흰색이니 의심도 서로 없겠죠.
우리가 선명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모호해지기 위해서라도 삿포로는 딱이네요.
당신의 많은 부분들. 한숨을 내쉬지 않고는 열거할 수 없는 당신의 소중한 부분들 까지도.
당신은 하나인데 나는 여럿이어서, 당신은 죄가 없고 나는 죄가 여럿인 것 까지도 눈 속에 단단히 파묻고 오겠습니다.
삿포로에 갈까요.
이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中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뜨거운 물 좀 떠와라"는 외할어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그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는 평소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두분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말들은 두 분이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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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듯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아침 업무회의 시간에 '전략' '전멸'같이 알고 보면 끔찍한 뜻의 전쟁용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고
점심에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 "언제 밥 먹자"라는 진부한 말을 했으며
저녁부터는 혼자 있느라 누군가에게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이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中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만약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다면 나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몸, 내 키, 내 머리와 재능, 우리집, 내 나라, 그 어떤 것도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겁니다.
뿐입니까. 나의 성별 또한 내가 택한 것이 아니며 나의 이웃, 나의 가족, 친척, 친구 등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고른 것은 없죠.
인생이라는 게임이 왜 이렇게 모순되고 불공평한지 38년을 살아왔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뿐.
그러나 그 불공평함이 결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면,
게임의 승부는 누가 하루라도 더 빨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석원, 「보통의 존재」中
아낀다는 건 그런 거다.
좋아하는 것 중 좀 더 좋아하는 것.
아끼는 것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손가락으로 세며 떠올릴 수 있다.
줄무늬 셔츠 두 벌, 기분 좋아지고 싶은날에 꺼내 입는 겨울 코트, 담에 늘어지는 여름꽃, 2호선 지하철에서 바라본 한강 위의 풍경,
그리고 정성스레 포장된 초콜릿을 하나씩 벗겨 먹듯 울고 싶은 날이면 찾아 듣던 노래들도.
오래 보고, 만지고, 맛보고 싶다. 매일 입지도 않고, 찾고 싶지도 않다.
멋대로 덩굴을 늘어뜨리고 꽃을 꺾거나 손으로 움켜쥐고 싶지도 않다.
아끼는 것 중에는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들이 더 많다.
빠져 죽고 싶을 만큼 바다를 찾고 싶은 날이 있지만, 부레와 아가미가 생겨 물속에서 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마음에 가까운 것일수록 한 발짝 멀어질 줄 알아야 한다.
코를 박고 냄새를 들이마시고, 살갗이 닳도록 문지르고 싶지만,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다.
아끼는 게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오래 아끼는 것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하나와 하나를 위하는 일이며 또한, 둘을 위하는 일이다.
함부로 쓰지 않고, 소중하게 여겨 보살피거나 위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정현, 「나쁜 기억 지우개」中
"밥 먹었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밥 먹었냐는 말이 진짜 밥 먹었는지 그 자체가 궁금해서 건네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뜻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내가 발 디디며 살아온 삶에서 밥이라는 건 사랑이라는 단어와 맞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지 않고 집에 들어오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가족들은 밥 같은 무언가를 내어주기 바빴다.
어릴 때 우리 집이 심하게 휘청거렸던 적이 있다.
그때도 아버지는 내가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면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큰돈을 쥐어주시고는 했다.
내가 처음 했던 요리가 초등학생 때 어머니를 위해 끓인 라면이었다.
그렇게 자라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밥 먹었냐는 말을 자주 건넨다.
서울에서 일하던 친구를 동네에서 오랜만에 만났을 때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제일 먼저 건넸다.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도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밥 먹었냐고 매일 물어봤다.
단순히 밥 먹었냐는 말이 아니라 꽤 의미가 있는 말이다.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밥을 챙겨 먹을 만큼 그래도 조금은 쉬면서 살고 있는지.
오늘을 잘 보냈는지 같은 뜻이 담겨 있다. 이런 걸 보면 사랑은 학습되는 것 같다.
내가 사랑이라고 배워왔던 것들을 그대로 하고 있으니까.
밥은 먹고 지내냐고 묻고 싶은 밤이다.
/박근호, 「비밀편지」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