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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가마쿠라코코마에역(鎌倉高校前駅)의 모습. 만화 '슬램덩크'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배경지로 유명해 한국인·중국인에게 인기다.
지난 13일 저녁 일본 도쿄도 긴자(銀座) 세이코 시계탑 앞 횡단보도에 서양인 관광객이 북적이고 있다. /박소정 기자
지난 13일 일본 도쿄도 긴자(銀座) 세이코 시계탑 앞에는 뉴욕 거리를 방불케 할 만큼 서양인이 북적였다. 긴자는 유명 백화점과 명품 매장이 즐비한 도쿄 대표 번화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일본을 찾아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다.
만화 ‘슬램덩크’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지로 낡은 전차와 바다 배경이 유명한 가마쿠라(鎌倉)도 관광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특유의 평화롭고 한적한 분위기의 사진 한 장으로 잘 알려진 이곳이지만, 실상은 그런 사진을 남기려는 한국인들로 시끌벅적했다.
긴자와 가마쿠라가 보여주듯 일본 경제는 엔저로 인한 관광 호황의 수혜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다. 일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8월 일본의 여행수지는 2582억엔 흑자를 냈다. 1996년 8월 이후 최대 규모다.
비단 한국인만 일본을 찾는 것이 아니다. 미국 등 서양인 관광객의 수도 코로나 이전보다도 확연히 늘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발표한 8월 방일 외국인 수의 2019년 대비 증가율은 한국(84.3%)이 가장 높았고, ▲멕시코 70.8% ▲중동 39.1% ▲캐나다 33.9% ▲인도네시아 28.7% ▲필리핀 22.7% ▲미국 17.5% ▲독일 15.8% 등이 뒤를 이었다. 상당 부분은 엔저의 영향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자국민들의 소비, 즉 내수 성적은 처참하다. 엔화 약세 현상이 수입 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일본 국민들은 최근 고물가를 절감(切感)하고 있다. 점점 더 지갑을 닫는 추세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8월 실질 소비 지출은 전년 동월 대비 2.5% 감소했다. 지난해 11월부터 2월(1.6% 증가)을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 기록이다. 지난 7월엔 감소 폭이 무려 5%에 달했다.
일본 현지 경제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일본의 현 20~50대는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물가가 높다는 걸 거의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세대”라며 “그런 사람들이 최근 1~2년간 가격의 가파른 오름세를 처음으로 겪는 데다, 임금은 가격의 속도만큼 안 오르니 내수가 활성화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3일 해설 기사를 통해 “엔저가 고물가를 초래해 서민 생활도 걱정되고 있다”며 “(물가 만큼 임금은 오르지 않으면서) 식비나 에너지 비용을 절약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구조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어려움은 더 가중될 것”이라면서 “경제·금융면에서의 일본 정부의 대응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