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14일 수원지법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 민주노총 간부 등이 첫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4명의 피고인 가운데 핵심인 석모 전 민노총 조직쟁의국장은 법정에서 “그들(북한)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만나야 한다. 만남에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는 14일 오전 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석씨와 전 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김모씨, 전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씨, 전 민노총 산하 모 연맹 조직부장 신모씨 등 4명에 대한 1차 공판을 열었다. 70석에 달하는 법정 방청석은 민노총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이날 피고인들은 모두 “정부와 검찰이 간첩으로 몰고 있다”고 했다. 변호인단도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국제형사사법 공조법상 증거능력 상실, 국가보안법 위헌 소지 등을 근거로 들며 무죄를 주장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찰이 기소할 때 법원에 제출하는 건 공소장 하나여야만 하고,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것은 제출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공판준비기일에서 제기된 이같은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또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며 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피고인들이 북한 공작원과 회합했다는 증거로 제출한 영상물 등에 대해서도 “국가 간 형사사법공조 조약 등 절차에 따른 증거가 아니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위헌소지가 있다며 재판부가 이를 소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피고인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접선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의견 진술을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굴 만났는데 공작원인지 몰랐다든지, 거기에 대해선 진술 안 하는 거냐”며 “(북한 공작원을)만났나, 안 만났나”라고 묻기도 했다.
발언 기회를 얻은 석씨는 “정부·국정원·정치검찰이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악용해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다”며 “저는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만남에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만나면 오해와 긴장이 해소되고, 이해· 신뢰·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며 “통일을 위한 작은 밑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들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중요한 부분적 진술을 한 것 같다”며 “그대로 조서에 남겨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허심탄회하게 피고인들의 입장을 듣는 정도로 판단했다. 증거로 남기거나 하진 않겠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석씨는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102회에 걸쳐 북한 지령문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7년 9월과 2018년 9월엔 중국과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직접 북한 공작원을 접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민주노총 내부 통신망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이 기재된 대북 보고문을 북한 측에 전달하고, 북한 지시에 따라 민노총 위원장 선거 후보별 계파 및 성향, 평택 미군기지·오산 공군기지 시설·군사 장비 등 사진을 수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3명도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거나 지령에 따라 간첩 활동하는 등의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또 ‘민심의 분노를 활용해 기자회견 발표, 촛불시위 등으로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키라’는 등의 지령을 받고 반미·반일·반보수를 앞세운 정치투쟁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북한은 지령문을 통해 청와대 등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 마비를 위한 자료 입수와 화성·평택 2함대 사령부, 평택 화력·LNG 저장탱크 배치도와 같은 비밀 자료를 수집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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