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짓기를 마친 사무라이개미 여왕이 있다.

이 여왕은 주변을 탐색하느라 분주하다.
혼자서는 왕국을 만들 수 없어 남의 왕국에 기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곰개미 둥지가 그 타겟.

목표를 정한 사무라이개미 여왕은 거침없이 돌격한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곰개미 둥지.
곰개미들은 서둘러 고치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거나, 낯선 침입자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사무라이개미는 타고난 전사다.
튼튼한 신체와 강인한 턱으로 상대를 쉽게 물어 죽일 수 있지만, 어째서인지 물기만 할 뿐 죽이지 않는다.
곰개미가 전투 패로몬을 발산해 전면전이 되는 걸 막기 위해서이다.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그녀는 포위망을 뚫고 안쪽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피난길에 오르며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곰개미 여왕.

참다못해 직접 공격을 시도한다.
농축된 개미산을 침입자의 머리에 쏘고 일개미들에게 전투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전사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무라이개미 여왕이 낫으로 곰개미 여왕의 가슴속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곰개미들은 자신들의 여왕에게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 공격으로 곰개미 여왕이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여왕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여왕이 탄생했다.
곰개미들은 강한 여왕을 따르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강인한 사무라이개미 여왕을 쉽게 받아들였다.

일개미들이 숨겨뒀던 고치를 원상 복귀 시키고
왕국은 일상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곰개미들의 수난이 시작된다.


사무라이개미는 전투에만 특화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어
많은 양분을 저장할 수도 없고
스스로 영양 섭취를 하거나 노동, 몸단장 등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도 없다.
곰개미들은 수시로 영양분을 나눠주고 고치를 바쳐 새로운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사무라이개미 여왕이 곰개미 둥지에 기생한지 두 달이 지날 무렵부터는
새로운 여왕이 낳고 곰개미가 기른 첫 사무라이 일개미가 탄생했다.
장장 껍질을 벗는데 6시간, 몸을 닦아주는 데 3~4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무라이 개미들은 태어날 때 방치되거나 곰개미들에게 공격받아 죽는다.
어쨌거나 곰개미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왕 또한 그 사실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왕국의 대다수는 곰개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달라진다.
사무라이개미 여왕에게선 오직 사무라이개미만 태어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종의 비율은 전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왕국에 사무라이개미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활동을 하지 않고 왕국에서만 생활하는 식충이들이기 때문이다.

왕국에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일은 곰개미들이 한다.
개미굴을 확장, 사무라이개미 애벌레 돌보고 먹이기, 사냥하기 등..
한마디로 노예다.

오늘은 사슴풍뎅이를 잡아왔다.

물론 둥지에서 분해하는 일 또한 곰개미들의 몫이다.

사무라이개미 귀족님들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사냥도 분해도 먹는 것도 혼자 못하는 귀한 몸이기 때문이다.
곰개미가 영양분을 농축해 주면 받아먹을 뿐이다.
그래서 사무라이개미가 많아질수록 왕국에는 더 많은 곰개미가 필요하다.

곰개미: (힘들다...)

이때 문제 해결을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무라이 개미 한 마리.

나이와 경험이 많은 사무라이개미가
숨겨진 곰개미 둥지를 찾기 위해 정찰에 나섰다.

결국 발견해낸 곰개미 둥지.

이 소식을 동료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둘러 달려간다.

페로몬을 뿌리며 냄새로 길을 만드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게을러도 착실한 놈들이다.



정찰병의 소식이 굴 깊숙히 전달되고


잠시 뒤, 사무라이개미들이 바쁘게 굴을 빠져나간다.
곰개미는 해독이 불가능한 자신들만의 페로몬을 뿌려, 수천 마리의 '사무라이개미 원정대'가 출정을 시작한 것이다.

정찰병이 뿌려놓은 페로몬을 따라 드디어 목적지에 이른 선발대.



무차별 약탈이 시작되었다.
이들이 노리는 건 곰개미의 고치와 애벌레.
자신들의 왕국에서 노예로 부릴 일꾼들이다.

공들여 만든 곰개미 둥지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약탈자들은 전리품을 들고 당당히 귀환했다.


납치해온 고치들은 왕국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새 식구로 자라나게 된다.

물론 보살피는 건 기존 곰개미들의 몫이다.
기존의 곰개미들은 새로 태어난 곰개미들을 먹이고 보살펴
사무라이개미 왕국 다음 세대의 일꾼으로 키워낸다.
다음 세대는 그 다음 세대를, 또 그 다음 세대를 이렇게 키워낼 것이다.
납치당해온 것도 모른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