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번역이 표현에 있어 조금 더 자유롭다. 가령 “안 돼” 할 때, ‘안’하고 ‘돼’를 띄어 써야 하잖나. 그런데 나는 두 단어가 띄어져 있는 게 시각적으로 안 예뻐 보여서 붙여서 쓴다.
영어와 우리말 중 어느 쪽 공부를 더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영어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두라고 하고 싶다. 해당 언어에 자신이 있어야 우리말 번역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하거든. 또 영어는 항상 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늘리는 게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It’s on the house”를 직역 하면 “집에 있다”지만, 진짜 뜻은 “이건, 서비스예요”다. 그런데 그걸 “집에서 가지고 왔어”로 번역한 걸 본 적이 있다. 보면서 ‘저 분은 책으로 영어를 배우셨구나’ 했다. 평가절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공부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웃음)
Q. 영화 번역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비해, 진입 장벽은 높은 것 같다. 인맥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인맥, 중요하다. 인맥이 1차라고 본다. 나 같은 경우에도 소니에서 시작을 했는데, 그게 연결이 돼서 워너와 폭스에서 연락이 왔다. 평가가 좋게 났는지, 로컬 업체 쪽에서도 연락이 왔고. 그게 다 긍정적인 의미의 인맥이라고 본다. 그런데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 않나. 혼자 잘났다고 설쳐봐야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힘들다. 물론 경험이 전무 하고 실력도 없는데, 인맥만으로 꽂아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신뢰인 것 같다.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쌓이는 신뢰 말이다. 현재 이십세기폭스, 소니, 워너 등 세 군데 직배사 영화들은 거의 내가 번역 한다. 작은 영화나 지나치게 여성적인 영화를 빼면, 90%를 하는 셈이다. 작년에 번역한 작품? 블록버스터는 거의 다 내가 했다고 보면 된다.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직배를 통해 들어오니까. (중략) 그래서 “왜 박지훈이가 다 하냐?”는 일각의 불만도 이해한다. 하지만 번역에 문제가 생길 경우 영화사가 입어야 할 막대한 피해를 생각하면 직배사 입장도 이해가 된다. 날짜를 미리 받아놓고 자막을 찍어서 심의를 넣는데, 이게 틀어지면 광고도 못하고, 개봉에도 차질이 생기고, 모든 게 어그러지니까. 그러다보니 직배사 입장에서는 작업했던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게 사실이다.
1997~98년도에 지금의 와이프와 세계 일주를 1년간 했다.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왔는데, 마침 IMF가 터져서 경기가 안 좋았다. 아는 분이 “놀면 뭐 하냐, 한번 해 봐라”며 소개시켜 준 게 비디오 번역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번역을 시작했는데, 내 적성과 너무 잘 맞았다. (중략) 재미있다. 재미있는 일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 적성과도 잘 맞고.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게 있다면?
시간에 쫓기는 거? 해외일정에 맞춰 동시개봉 하는 영화가 많다보니, 번역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다. 그래도, 뭐.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웃음)
(+)
Q.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읽히는 자막을 만드는 것. 영어 단어를 1대 1로 번역하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영어 표현은 ‘May Be’(~일지도 모른다)인데, 우리말로 ‘~임에 틀림없다’(Must Be)로 번역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임에 틀림없다’로 번역한다. 단어나 문법에 얽매이는 것보다 전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숲을 보는 거지.
출처 (ISSUE INTERVIEW 무비위크 2012년 8월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