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쳐 / 비틀즈 엔솔로지 (1995)
비틀즈가 전세계로 투어를 돌며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아시아에서 비틀즈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필리핀뿐이었고..
실제로 비틀즈가 공연한 아시아 국가도 이 두 나라 뿐이었다.
1966년 일본 공연에서 "신성한 부도칸(무도관)에서 공연하겠다는 비틀즈 고 홈!"을 외치는 반비틀즈 시위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일본의 분단위 스케줄 관리에 깊은 인상을 받고 온 비틀즈는 이와는 비교도 안되는 충격을 남긴 필리핀 공연에 착수한다.
마닐라에서의 공연은 성공적이었지만..
문제는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영부인 이멜다가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초대에 대한 답변은 "영광이긴 하지만 일정상 거절할 수 밖에 없다."였다.
(나중에 비틀즈는 초대 사실은 알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것은 뜻밖의 큰 파장을 불러왔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주문한 비틀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침 식사에 의아해하며
TV를 켰는데 뉴스 보도에는..
"그들이 날 욕보였소!"
라고 울부짖는 이멜다의 모습이 나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비틀즈는 신부와 수녀 응딩이 뒤에 꽁꽁 숨어 줄행랑을 시도했다.
(카톨릭 국가 필리핀에서 설마 신부나 수녀를 때리진 않겠지.. 라는 생각에서..)
(7월 6일 출국날 사진 추가)
겨우 겨우 비행기에 탑승했으나..
기내에서는 "브라이언씨(비틀즈 매니저) 비행기에서 내려주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결국 비틀즈는 공연 수익을 모두 토해내고 나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존 레논
그런 정신병원 같은 곳에는 다신 안 갈겁니다.
조지 해리슨
아나운서는 그러더군요. "그들은 초대를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링고 스타
저는 필리핀이 싫어요.
폴 매카트니
나중에 알았는데 그 마르코스와 이멜다는 국민들에게 몹쓸짓을 한 사악한 폭군이었다는군요. 그래서 참 고소했습니다.
그들을 욕보인건 우리밖에 없었으니까요.
3줄 요약
비틀즈가 필리핀 공연하러 갔다가 필리핀 대통령 영부인에게 저녁 식사 초대 받음.
거절했다가 못 돌아올뻔.
공연 수익 토해내고 돌아옴.
문제는 7월 4일 공연날 아침에 벌어졌습니다. 10시 경, 비틀즈가 묵고 있는 호텔에 일단의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11시에 있을 점심 환영연을 위해 비틀즈를 데리러 왔다며 이를 비틀즈의 매니저에게 알립니다.
매니저였던 엡스타인은 당일 오후 공연을 앞두고 계획에 없던 행사를 할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정중하게 이 초청을 거절합니다. 전날 밤에 미리 요청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거부는 비틀즈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악몽으로 돌아옵니다.
우선 그 점심은 이멜다가 300명의 어린이들에게 비틀즈를 보여주겠다며 마련한 자리였고 사전에 예약된 자리도 아니었음에도 이멜다는 자신의 초청을 비록 상대방이 비틀즈라고 할지라도 누군가가 감히 거부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300명의 어린들에게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이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럼에도 비틀즈는 오후의 축구장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서인데 필리핀 TV에서는 이멜다의 환영연을 비틀즈가 무시하고 모욕을 주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TV를 접한 엡스타인과 비틀즈 멤버들은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고 엡스타인은 그길로 방송국을 찾아가 고의가 아니었다고 사과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5일이 되자 문제는 더 악화되었습니다. 우선 신문마다 헤드라인으로 비틀즈가 이멜다를 모욕했다는 기사를 내보냈고 TV에서는 광분한 대중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는데 비틀즈의 현지 경호인력과 보조요원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공항으로 가서 다음 기항지인 뉴델리로 떠나는 게 급선무였던 비틀즈는 항의 시위대의 위협을 받으며 자신들의 힘으로 마닐라 공항까지 어렵게 도착하였습니다. 이 와중에 비틀즈는 자신들을 숨기기 위해 신부님들 무리를 따라가기도 하였습니다.
하여간 이 막장 사건은 마르코스 부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한 단면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가 자기 주위를 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