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근초고왕> (2010)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1화만 본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왜 망작이 되었는지 이해를 못한다. 스토리와 역사적 사건 고증은 개판인데 소품과 배경, 언어는 열심히 고증했기 때문. 갑옷을 비롯한 각종 복식과 생활상의 재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삼국시대 드라마가 보여준 개판 고증과 다르게 크게 일신된 면모를 보여준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근초고왕의 백제 위례궁
드라마 근초고왕의 백제 조정
드라마 광개토태왕 (잘못된 고증)
회의나 연회와 같은 여러 공식석상에서 각 신료들이 모두 개인 탁자를 놓고 의자에 앉는 등 입식생활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는 고분벽화를 바탕으로 사료의 내용을 충실히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백제의 일각에서는 무릎을 꿇거나 책상다리로 앉아있는 등 좌식생활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이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로부터 역추적한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북방계(부여), 후자는 남방계(삼한)의 생활상을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지 이것만으로도 고대적인 분위기가 엄청나게 살아났다
드라마 근초고왕의 삼국시대 의상
고구려 관모
백제 관모
의상도 격자무늬, 와당무늬, 불꽃무늬와 같은 다양한 문양을 접목시킨 점에서 의미 있게 평가된다. 고구려의 관모는 사료에 근거하여 왕이 쓰는 백라관(白羅冠)과 대가들이 쓰는 책(幘)을 구현하였으며, 백제의 관모로는 오우관으로 흔히 알려진 변(弁)과 관식을 전면적으로 사용하여 역시 당대상에 가까운 훌륭한 고증을 보여주었다. 다만 고구려의 책은 사료에 근거하여 위의 덮개(屋)가 없어야 하는데, 실제 고증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물론 그런데도 엉망진창인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의 관모와 비교해보면 이쪽이 월등히 우수하다.
또한 조선시대 사람이 현대어 쓰는 유사 사극들과는 달리 사극 특유의 고풍스러운 대사들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 주서(周書)의 기록에 따라 백제에서 왕을 가리키던 '어라하'라는 단어를 충실히 복원해서 쓰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데, 조명주 작가의 전작 자명고에서도 백두산을 가리키던 '불함산'이라는 말을 복원해서 "은혜가 불함에 닿았다"는 식의 표현이 등장했음을 상기하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당시 백제에서 한강을 가리키던 이름인 '욱리하'를 사용하였다.
왼쪽 - 드라마 근초고왕의 고구려 고국원왕
중간 - 실제 쌍영총 벽화
오른쪽 - 드라마 주몽 (잘못된 고증)
갑옷의 경우에도 고구려의 갑옷 고증은 모든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물론 갑찰의 수결법이나 형태 등 세부적인 부분은 오류가 있고, 부분적으로 대조영의 갑옷이 재활용되긴 했지만, 새로 제작한 갑옷들은 찰갑의 전체적인 형태를 고증에 맞추어 매우 훌륭하게 재현한데다가 투구 역시 최대한 벽화에 맞추어서 백제가 주연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군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더욱이 고구려군 병사들의 모습도 벽화에 맞추어서 잘 재현되었고 갑옷도 일신되는 효과를 맞았다.
그러나 후속작 광개토태왕에서는 이처럼 훌륭한 고증을 보인 근초고왕의 갑옷을 모두 버리고, 대조영과 천추태후 때부터 지겹도록 우려먹었던 중국식 갑옷, 아니, 중국식 갑옷도 아닌 국적불명의 갑옷을 재활용하는 악수 중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드라마 주몽의 경우 서프라이즈에서 중세 서양 갑옷으로 재활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