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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취재하러 갔다가…'키오스크 도우미'가 됐다[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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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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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사람이 있던 자리를 '기계'가 빠르게 채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바뀌었네"하고 적응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냥 그걸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힘듦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것 좀 도와줘요"하기도 민망하고, 또 아예 사람이 없기도 하니까요. 비용 절감과 편리란 미명하에 많은 어르신들이 소외되고 있습니다. 조금의 배려만으로도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신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린 누구나 나이가 듭니다.

[[디지털 배려-①]노년층 소외시키는, 무심한 무인(無人) 시스템…모르면 불편한 걸 넘어 '불가능'하거나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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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소재 한 백화점 내 영화관. 영화 미나리를 보러 온 어르신은 키오스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한참을 서 있었다.

직원이 있어야 할 예매 창구는 다 닫혀 있었고, 키오스크로만 예매할 수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할머니 한 분이 영화를 예매하는 키오스크 앞에 섰다. 잠시 동안은 그리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는 화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영화 예매, 상영시간표 등 선택 화면이 떴다. 신중할 정도로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진 뒤, 그는 영화 예매를 눌렀다. 그리고 오후 시간대의 '미나리'를 선택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몇 명이 볼지 선택하는 화면이 나왔다. 숫자를 눌러야 하는데, 할머니는 글자만 계속 눌렀다.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는 결국 멈췄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심한 기계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안내해 줄 직원도 없었다. 영화 예매 창구는 닫혀 있었고, '무인 운영'이란 안내만 있었다. 그저 미나리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던 할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라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취재를 위해 지켜보려 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도와드릴까요?"라고 여쭤보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을 선택하고, 자리를 고르고, 경로우대로 결제했다. 할머니는 처음 보는 내게 신용카드를 건넬 만큼 전적으로 의지했다. 기계의 심판이 끝난 뒤 마침내 종이 티켓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고마워요." 어르신은 안도하며 그제야 영화관 의자에 앉았다.

그게 끝이 아녔다. 잠시 뒤 할아버지 한 분이 왔다. 그는 키오스크 앞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다가가 혹시 영화 예매하시러 오셨느냐고 여쭤봤다. 그는 고갤 끄덕였다. 보고 싶은 영화는 또 미나리였다. 일사천리로 안내를 마친 뒤, 다시 영화 티켓을 그의 손에 쥐어줬다. 어르신은 짧게 고개를 숙인 뒤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마 자존심이 센 분이리라, 그리 짐작했다.

그렇게 30분 동안 총 네 분의 영화 예매를 도왔다. 취재하러 갔다가, '키오스크 도우미'가 된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누군가가 필요해 모른척 할 수 없었다. 낯선 기계 앞에서, 더는 작아지게 할 수 없었다.


밥 먹는 것도, 주차 정산도 무인화…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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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소재 대형마트 푸드코트에 설치돼 있는 무인계산대. 어르신들 중에선 이용하는 걸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다./사진=남형도 기자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일대 백화점과 대형마트, 카페와 음식점을 둘러보고 있었다. 키오스크(무인 단말기)가 누군가에겐 어떤 불편함을 초래하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특히나 디지털 환경과 기계가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사람을 바라보고 원하는 걸 주문하는 게 더 편한 이들에게, 온전히 스스로 화면을 눌러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어떤 것일지 싶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았다. 백화점 내 안내부터 그랬다. 친구와 쇼핑 왔다던 김옥희 할머니(71)와 이영채 할머니(72). 그는 특정 매장을 가야 한다며 안내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나 몇 번 누르다 원치 않는 화면으로 넘어가자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뒤에 사람들이 서자 눈치를 보다가, "그냥 일단 가보자"하며 자리를 비켜줬다. 김 할머니에게 이유를 묻자 "민폐 끼치기 싫어서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이 안내해주면 참 좋을텐데"라고 했다.

그러나 물러서면 아예 해결이 안 되는 것들도 많았다. 백화점 내 주차 정산이 그랬다. 층마다 무인 정산기가 놓여 있어 '사전 정산'을 하도록 했다. 나갈 때에도 사람 대신 무인 결제기가 놓여 있어, 완료된 차량만 차단기를 올려주도록 했다(도움을 요청하는 인터폰은 있다). 무인 정산기에서 결제를 마친 송병옥 할아버지(75)는 "자녀들이 알려주고, 몇 번씩 연습한 뒤에야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기계 앞에서 작아진다고 했다. 대형마트 내 푸드코트를 갔더니, 무인으로 주문하는 키오스크 앞에서 장성순 할머니(76)가 서성거렸다. 그는 "장을 보고 국수라도 한 그릇 먹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배는 고프고, 도와줄 사람은 안 보이고,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그냥 갈까 했다고. "호출벨 누를 생각은 안 했느냐"는 물음에 장 할머니는 "아이고, 뭐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어요"라고 했다. 그를 도와 주문을 해주니 고맙다고 하며 인사를 한 뒤 갔다. 밥 먹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걸 도움 받아 해결해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QR 코드가 뭔가?"…수기 명부 없앤 가게들 앞에서 '당황'


손님, 여긴 QR 코드 없으면 입장이 안 되세요."

이번엔 한 카페. 어르신 세 분이 출입문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걸 봤다. "응? QR 코드가 뭔가?"하고 되물으니 직원은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QR 코드 발급 받아야 된다"며 재차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손님들이 자연스레 QR코드를 찍고 들어갔고, 당황한 어르신들은 "그냥 다른 데 가자고"하며 문 밖으로 나갔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출입 명부를 작성해야 하는데, 몇몇 가게들이 수기 명부를 없앤 탓에 벌어진 일. 실제 서울 중구, 마포구, 양천구 일대 카페와 음식점을 돌아보니 QR 코드 인증만 하는 가게들이 다수 발견됐다. 이유를 묻자, 마포구 한 카페 직원은 "수기 명부도 코로나19 방역에 좋지 않다고 해서(펜 사용 등) QR 코드를 주로 쓰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코드명에 당황하는 이들이 많았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피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박창옥 할아버지(77)는 "QR 코드라는 건 처음 들어봤어. 자주 가던 한식집에 갔는데 그런 얘길 하길래 뭔가 싶었지. 수기로 쓰겠다고 하니까 없다고 하고. 우리 같은 노인들은 말해줘도 모르는데, 다른 방법도 알려줘야지"라며 씁쓸해 했다.

QR 코드를 아는 이도 힘들어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카페 이용을 못했다는 김모 할머니(73)는 "딸래미가 알려줘서 QR 코드를 배웠는데, 한 번은 누르려고 하니 화면이 평소와 달라서 못 받았다"며 "죄송하다는 말에 바깥에 나왔더니 마음이 참 속상하더라"라고 했다.


2분이면 계산 끝인데…할머니는 '긴 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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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 설치된 셀프계산대. 키오스크 6곳이 설치돼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사람이 대체한 키오스크로 인해 초래하는 건 단지 불편한 정도가 아녔다. 불편을 넘어 잘 모르면 '시간 손해'를 보고, 아예 이용조차 '불가능'한 것으로 빠르게 현실화 되고 있다.

서울 양천구 소재 대형마트서 카라멜 2개를 사보기로 했다. 하나는 일반 계산대에서, 또 다른 하나는 키오스크로 된 '셀프 계산대'에서 했다. 일반 계산대는 총 3개, 사람이 계산을 했다. 셀프 계산대는 총 6개, 각자 알아서 하는 거였고 도와주는 직원 한 분이 있었다.

셀프 계산대에서 먼저 해봤다.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넣어 결제하는데 걸린 시간은 총 2분에 불과했다. 비어 있는 키오스크가 많아 대기 시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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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들이 계산하는 계산대를 이용하기 위해 긴줄임에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옆의 셀프계산대를 이용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다수였다./사진=남형도 기자



이어 일반 계산대로 갔다. 대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앞에 먼저 와 있는 이들만 대여섯명 정도. 기다린 뒤 계산을 마치니 총 12분이 걸렸다. 셀프 계산대와 비교하면 무려 6배의 시간을 더 쓴 셈이었다.

내 뒤에서 계산을 마친 박정임 할머니(80)에게 '셀프 계산대'를 왜 이용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난 사람이 편하더라고. 기계는 무서워요."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31608461569794&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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