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왕의 정부하면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뒤에서 엄청난 권력을 휘두른 여자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와 먼 타입의 여자도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지금 다룰 '도로시 조던' 이다.

그녀는 1761년, 아일랜드에서 프란시스 블랜드와 그의 정부이자 배우인 그레이스 필립스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그녀의 부모 사이에선 도로시 말고도 다섯 명의 형제가 있었지만, 아버지 프란시스는 다른 배우와 결혼하기 위해서 가족을 버렸다.
때문에 도로시와 도로시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뒤를 따라 배우가 되어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끼와 재능을 타고난 도로시는 곧 유명한 배우가 되었으며,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결혼해서 안정을 찾길 원한 도로시와 다르게 남자들은 연애만 하고 결혼은 흐지부지 되기 일수였다.
이 과정에서 사생아를 낳기도 한 도로시는 수많은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영국으로 활동지를 옮겼으며, 마치 요단강을 건넌것 같은 각오를 했다고 해서 예명을 어머니의 성인 필립스에서 '조던' 으로 바꾸었다.
영국에서도 명성을 얻은 도로시는 그녀의 운명을 바꾸게 될 한 남자를 만나게 되니 그가 바로

국왕 조지 3세의 아들 윌리엄 왕자였다.
왕자를 만날 당시 도로시는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었고 그 남자의 아이들까지 낳았지만, 그 역시 자신과 결혼할 마음이 없단걸 눈치챈 도로시는 이별을 고하고 왕자와 정식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왕자와 사랑에 빠진 도로시는 1791년 동거를 시작했고, 그와의 행복한 가정 생활을 꿈꾸었다.
도로시와 왕자의 신분은 너무나도 차이가 났기 때문에 결혼은 어림도 없었지만, 긴 동거 생활을 하면서 둘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가정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저 셋째 왕자에 불과한 윌리엄의 정부인 도로시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은 전혀 없었으며, 설령 있다고 해도 그걸 휘두를 성격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도로시의 생활은 마냥 꿈같진 않았다.
윌리엄은 낭비벽이 심했으며, 국회에서 지급하는 돈은 그가 사용하는 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거기다 도로시는 왕자와의 사이에서 무려 10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줄줄히 출산했기 때문에 양육비로 엄청난 금액의 돈이 필요했다.
때문에 도로시는 무대에 계속 서야 했으며, 쉴새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계속됐으며 결국 1811년, 둘은 헤어져야만 했다.
아들들의 양육권은 윌리엄이 가져가게 되었고 딸들은 도로시가 양육하고 윌리엄이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해서 도로시는 무대에서 더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도로시의 딸, 프랜시스 알소프)
하지만 1814년, 도로시가 윌리엄과 살기 전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프랜시스의 남편 토마스 알소프가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빚을 떠안게 된 도로시는 다시 무대에 올라 일을 해야 했지만, 그녀의 인기는 사그라든지 오래였다.
이런 도로시의 상황을 본 윌리엄은 딸들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기위해 딸들까지 자기가 데려가서 키우기로 결정했다.
1815년, 빚에 쫓겨 전재산을 잃은 도로시는 프랑스로 도망갔다.
그곳에서 가난과 병에 시달리던 도로시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결국 1년 뒤 숨을 거뒀다.
죽기 직전 애타게 윌리엄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찾았지만 그들은 그녀를 찾지 않았다.
아버지의 덕으로 상류 사회에 진입하고 고위 귀족들과 결혼을 하게 된 자식들은 천한 신분의 가난하고 병든 어머니를 마주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 후 윌리엄은 형의 자리를 물려받아 국왕 윌리엄 4세가 되었으며, 도로시와 헤어진 이후 결혼한 왕비 아델라이드는 비록 자신이 낳은 자식들은 아니었지만 도로시가 낳은 의붓자녀를 매우 예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