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글은 위키 펌인데 몇 줄 지움)

1973년 무렵 장남 (첫째)이 태어났고, 1979년에는 장남의 아버지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이후 장남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취학통지가 오지 않자 어머니가 관공서를 방문, 아버지가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된다.
1981년에는 장녀 (둘째)가 태어났으나 이후로 아이는 집에서 출산하고 출생신고 역시 하지 않았다.
1984년경에는 차남 (셋째)가 태어났지만 병으로 사망하였고, 시신 처리를 고민한 어머니는 비닐로 싸서 악취제거제와 함께 박스에 넣어 벽장에 두는 방법을 택한다.
이어 1985년경에는 차녀 (넷째)가, 1986년경에는 삼녀 (다섯째)가 태어나 네 아이를 두게 되었다.

1987년 가을 무렵 어머니는 남자친구와 동거하기 위해 첫째에게 현금 5만 엔 (당시 환율로 28만 원)을 쥐고는 동생들을 잘 돌봐달라고 맡기고 집을 나섰다.

이후로도 송금을 하는가 하면 가끔 모습을 비추기도 하였다.

1988년 4월, 삼녀 (당시 두 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장남과 함께 노는 친구들이 화가 나 옷장 위에서 몇번씩 떨어뜨리는 폭행을 가했고, 삼녀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집에 있던 컵라면이 안 보이자 삼녀가 먹었다 생각하고 그지랄 했다는듯))
7월 17일에는 집 주인이 불량배들의 집합소가 되어있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스가모 경찰서 직원이 아파트 방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장남 (14~15세?)과 장녀 (7세), 차녀 (3세)의 세 아이가 방치되어 있는 광경과 백골화된 유아 (차남)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아이들을 돌봐야 할 부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발견 당시 장녀와 차녀는 쇠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날 복지원에 넘겨졌다.

당시 경찰은 장남을 조사하며 상황파악에 나섰지만 애매한 점이 많았고, 장녀의 진술을 통해 장남이 동생을 돌보고 있었던 것 같다는 추측을 세웠다.
아이들은 편의점의 도시락 같은 정크 푸드로 하루하루를 때웠기 때문에 영양 실조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한편으로 아이들의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도 언론에 보도되었다.
7월 23일, 우연히 TV 뉴스를 보다 사건 소식을 접한 아이들의 어머니가 자진 출두하였다.
경찰은 어머니의 진술을 통해 9개월 전에 집을 나왔으며 삼녀 (셋째)가 실종 상태에 있음을 알게 된다.
1988년 8월 어머니는 보호책임자 유기치사 혐의로 체포 및 기소되었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을 받았다.
장남 역시 삼녀의 사망에 관여하였다고 보고 상해치사 및 시신유기죄로 도쿄 가정법원에 송치되지만 상황을 고려해 고아원에 보내졌다.
3년 후 어머니는 출소하여 두 딸에 대한 양육권을 부여받았다.
고아원으로 보내진 장남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본문의 짤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장면들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실화 전체를 쓰기보단 사건의 배경만 모티브로 삼았다고 함
(영화엔 셋째도 나오지 않음)
그리고 아이들에게 미리 대본을 주지 않고 그때그때 지도하면서 촬영했다는데
원래 이 감독이 아역 배우들에겐 대본을 안 준다나 봄

영화 "어느 가족" 촬영할 때 릴리 프랭키에게 대본을 안 줬다는데
이분이 자기가 아이가 된 건가 싶었다고 함

첫째 아키라로 나온 야기라 유야는 2004년 칸 영화제에서 14살에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함
당시 쿠엔틴 타란티노가 "많은 영화 중 기억에 남는 건 아키라(첫째)의 얼굴뿐"이라고 칭찬했다고...
https://gfycat.com/ThatTightDassie
은혼 실사화에서 히지카타로 나옴


아키라의 친구로 나온 칸 하나에는 재일교포인데 성인이 됐을 때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고 함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한국 이름은 한영혜)

언제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왼쪽부터 한영혜, 고레에다 감독,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둘째 쿄코)

키타우라 아유도 계속 활동하고 있는 거 같은데

최근 이십일세기 소녀라는 영화에 나옴
다른 동생 둘은 2007년쯤에 소식이 끊긴듯
어,,,음,,,글만 올리기 뭐해서 영화 짤도 올렸는데 어쩌다보니 근황 얘기까지 쓰고,,,
마무리 방법을 모르겠음

아무도 모른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