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황인찬, 종로사가 中
모두들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어서 눈인사 뒤엔 종이 위를 지나가는 펜 소리만 들렸던 시 쓰는 시간.
너에게 닿기 위해선 산그늘이 내려앉은 호수를 헤매야 했는데 나는 벌써부터 마음을 들킨 것 처럼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지.
수면 위를 스치는 소금쟁이가 그 은밀한 부럭을 감추려는 듯 제 그림자를 끌고
종종종 물 가운데로 파문을 그리며 사라지면 어느새 나는 너를 보고 있었어.
넌 가만히 턱을 고이고 호수를 보고 있더라.
모두들 시 쓰기에 여념이 없는데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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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때 무지개를 열 개는 그리고도 남을 것만 같은 펜으로
마음속에서 너의 이름을 계속 쓰고 있었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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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사람이 탔다가 내리고, 기어이 뒷 좌석에 앉은 우리 둘만이 승객으로 남았을 때,
그대로 버스가 영원히 달려갈 것만 같았던 그 순간,
너라는 세계에, 내가 닿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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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가 호숫가에서 그 시간 내내 시를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 바보 같은 생각이지?
어쩌면 난 그때 못 쓴 시를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나만 여전히 나머지 공부를 하는 기분이야.
넌 여전히 눈을 감고 호수의 바람을 흠향하고 있고.
그런데 써도 써도 그날의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없으니 어쩌면 좋을까.
내가 가진 펜으로는 그려낼 수 없으니 어쩌면 좋을까.
미안, 이젠 정말 네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아.
박상수, 후르츠 캔디 버스 中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마치 자신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말처럼
쥐가 있던 피크닉 자리에서
힘내, 사랑하니까
꽃 덤불이 그려진 빨간 카드에 처음으로 한 줄을 적었다
황병승, 쥐가 있던 피크닉 자리 中
이 목소리로 내 이름 한 번만
나긋하게 불러주면 나는 더 바랄 것 없겠다고,
내가 다 침몰해도 좋겠다고.
서덕준, 세이렌 中
"나도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사랑해."라는 말을 수박씨처럼 툭툭 뱉어보는 오늘밤도, 유성우에 빌었던 소원은 도착하지 않는다.
이현호, 말은 말에게 가려고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최진영, 구의 증명 中
사랑했었던 것 같아.
달리 할말은 없어.
박연준, 하필何必, 이라는 말 中
한때 아픈 몸이야 술기운으로 다스리겠지만,
오래 아플 것 같은 마음에는 끝내 비가 내린다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다
박정대, 어제 中
지금은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사랑을 한다는 말을 못했어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고
김승일 , 난 왜 알아요? 中
어쩌면 네가 밤 속에 누워 녹아갈 때
물 없는 사막은 너를 향해 서서히 걸어올지도 모르겠어
사막이 어쩌면 너에게 말할지도 몰라
사랑해, 네 눈물이 지하수를 타고 올 만큼 날 사랑해줘
허수경, 밤 속에 누운 너에게 中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이제니, 거짓말의 목소리 中
너를 사랑해서 다행이야. 우연히 만난 거, 그게 기뻤어.
마지막에 사랑한 사람이 너라서 다행이야.
시바타 준, 너에게 中
사랑해.
그거 하나로 저 암흑 속에서 버텼어.
윤현승, 하얀 늑대들 中
백 년이고 이백 년이고 널 위해 계속 울고 싶었어.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 슬픔이 내 사랑이었으니까.
오자키 카오리, 메테오 메토세라 中
당신도 알까요 내 사랑은 왠지 허덕여 왔어요 당신이 곁에 있어도 난 당신이 그리웠어요
사막에서 눈물을 훔치며 별을 봐요 별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지 않고 꼭 우리에게 대답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모든 별자리마다 허기진 음악이 태어나고
그 소리가 태초의 먼지를 잠 깨울 때 별들은 진동하며 목을 놓아요
돌이킬 수 없는 걸 돌이키려 하진 않겠어요
성기완, 블랙홀 언젠가 터질 울음처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