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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민족고대 다 죽었다고 개탄하시는 졸업생 분께.(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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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4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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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그 수많았던 일에 수많은 고대 구성원들이 침묵했겠습니까. 정유라의 비리에 나 몰라라 그냥 넘어갔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처럼 울분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해 비판했겠습니까. 그때 정유라의 입시 비리 건에 관해서는 당사자에 가까운 이대생들이, 최순실-박근혜의 국정 농단에는 국민들이 주체가 되어 촛불 집회를 열었습니다. 정유라의 입시 비리 건에 있어 고대인들이 깃발을 들고 이대를 찾아갔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 혹은 오지랖 넓게도 고대인들이 먼저 그것을 들고일어나야 했다고 하시는 말씀인지, 저는 솔직히 무엇을 바라고 하신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같은 대학생으로 분개하면서도, 이대생들이 스스로 학내의 문제를 정치성을 배제한 좀 더 순수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비판할 수 있게, 그것에 숟가락을 얹지 않은 세련된 고대인들의 판단에 저는 오히려 박수를 보냅니다.

  4.19를 촉발하게 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 4.18 의거처럼, 아마 촛불집회가 처음 열렸던 10월의 청계광장과 행진해서 도착한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붉은 깃발과 고대인의 함성으로 가득 물들어야 했다고, 그래야만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작지 않은' 참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고, 왜 그때 나오지 않았냐고 하는 그 비판을 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도 졸업생의 신분으로 1차 촛불 집회부터 10여회 이상을 참여했던 사람으로, 저는 고대의 구성원이지만 '국민'의 일원으로 그 시위에 나갔기 때문에, 고대라는 타이틀을 굳이 밝히거나 내걸지 않았습니다. 100만명이 모였다던 3차 집회에서도 몇몇의 선후배와 함께 나가게 되었지만, 그 조촐한 지인 모임에는 다른 대학 출신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고대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집회가 끝난 후에 고대 출신이 아닌 분이 어색할까봐 최대한 고대 커뮤니티에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뒤도 마찬가지고요.

고대생은 고대생이기 전에 이 나라 역사의 일부분이고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100만명의 선봉에 수천 명의 고대인들이 붉은 옷에 붉은 깃발을 들고 섰다면 님의 마음에 꼭 드셨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한 사람의 국민으로 돌아가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수수한 행색으로 대오에 녹아들어 집회에 참석했을 고대생의 마음에, 국민의 축제에 자신들 커뮤니티의 세를 과시하며 생색을 내지 않았을 모습에 감사합니다. 고대인들은,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까지 그 100만의 인파의 곳곳에서 한 명의 국민으로서 자기 사정이 허락하는 한 한 사람의 국민으로 역할을 다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고대가 주축이 되어 촛불이 든 것을 '조국'과 '민주당' vs '자한당'과 '적폐'의 프레임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에 대해 저는 솔직히 환멸감과 염증을 느낍니다. 이번에 고대가 고대의 이름을 걸고 촛불을 든 것은 고대생들이 그 스스로 이번 논란의 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하면서도 구성원으로서 제기할 문제를 정확히 짚어낸 이번 시위의 합리성과 절제미는 민주화 운동 이후 온전한 정답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학생 사회의 정치참여의 형식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의혹이 밝혀져 좋은 쪽을 끝나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것이 더 커져서 불처럼 번지게 되면 그때 역시 고대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정유라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후에 성숙하게 촛불 시위의 동력을 움켜쥐지 않고 국민들에게 자연스레 넘겨주었던 이대인들처럼, 고대인 역시 고대의 깃발을 내세우지 않고 성숙한 시민, 역사를 생각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후보자와 그의 자녀의 대입 의혹을 밝히라는 것을 무조건적인 정권 반대로 생각하는 오류, 그리고 혹 정권을 반대하는 입장이 있더라도 그것을 '친일'과 '친자한당'과 동일시하려는 파쇼적인 망상과 광기는 부디 거둬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미 이 정권의 티끌을 논하려면 님들 같은 분들 때문에 '자한당' 비판과 촛불 집회 참여 스펙(광우병 3회, 미선/효순 참사 교내 3보1배/국정농단 촛불 집회 10회 이상) 등을 줄줄줄 읊어야하는 불편을 심심찮게 겪고 있으니까요.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나오는 '50원짜리 설렁탕에 비계만 나왔다고 돼지같은 주인년을 욕하는' 소시민은 오늘 집회에 참여한 고대인들이 아니라 그것을 '오늘만 나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세력에서 거대한 권력을 가진 아이콘의 잘못을 들여다 보고 비판하는 '어렵고 험난한 길'보다는, 간만에 후배들을 포함한 고대의 구성원들이 모여있는 이곳으로 와서 깽판 놓듯 시위의 의미를 폄훼하고 까내리는 '아주 쉽고 편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도우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 제대로 읽으셨다면 그 시에 나오는대로 '거어즈'나 개십쇼. 님이 거어즈를 개고 계신들 님을 소시민이라고 비난할 고대인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언젠가 그 거즈를 다 개고, 진영 논리가 아닌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으실 때 그 때 광장에 나오세요. 그때야 고대의 깃발을 들지 않은 고대인이 졸업생 선배의 어깨를 감쌀 겁니다.

  저 역시 앞에 '신규가입'이 뜰지 모르는 졸업생입니다. 그제 이 시위가 궁금해서 정말 몇 년만에 고파스에 재가입을 하였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의혹을 꺼내준 후배님들께 감사합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게 현명히 처신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저역시 졸업생의 한 사람으로 미력한 글로나마 저런 식의 왜곡된 정의관과 역사관, 사람의 진심에 대한 무례함을 가진 글에 대해서 일이 끝날 때까지 제 시간 닿는대로 이곳에서 참지 않고 저항하고 반박할 것입니다. 저항하는 고대인들 응원합니다. 진영 논리를 넘어 기득권을 넘어서는 그날까지 싸워주십쇼. 그리고 기회가 되어 기득권에 편승된다면 그땐 죽을만큼 맞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살면서 노력하겠습니다. 

+)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인용 부분은 다른 분이 고파스에서 이 번 시위를 비판하면서 올린글에서 인용된 부분이라서 그 글을 읽고 피드백 하면서 재 인용 하신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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