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과 스스로 거기까지밖에 못한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온다.
https://img.theqoo.net/YYxNa
기 세기로 유명한 슬램덩크 세계관에서도 가장 기가 센 캐릭터를 뽑으라면 그건 권준호다.
그는 한 번도 정신적으로 패배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정대만이 다 부숴버리겠다며 미쳐 날뛰며 전 농구부원들을 쥐어패고 공포로 몰아갈 때조차 그는 기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물론 싸움모드로 돌입하기 전인 극초반에는 안절부절못하며 채치수를 찾긴 했다). 멘탈 강하기로만 따지면 그는 송태섭보다 한수 위다. 기복도 없고 주로 본인이 불안정할 때 저 나이대 남자아이들이 자주 보이는 불필요한 공격성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천재가 우글거리는 북산에서, 특히 사건 사고가 유달리 많은 북산에서 3년을 버틴 남자다. 그것도 채치수와 함께.
열등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좀먹는지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뛰어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은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을 만났을 때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 자존감은 생존과 직결돼 있다. 그것이 기량의 우월함을 겨루는 스포츠계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슬램덩크가 프로 농구가 아니라 고교 농구라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프로의 무대였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근사한 순간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타인의 월등함을 목격한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의욕이 꺾여 승부를 포기하거나 역으로 상대를 자신보다 낮은 위치로 끌어내릴 궁리를 하게 되거나. 두 가지 경우 모두 비참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선택지라는 함정 속에 갇혀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열등감.
대부분의 사람은 이 강렬한 상념을 열정과 혼동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열등감은 열정이 아니고 단 두 가지 선택지만이 이 강렬한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정답도 아니다.
적절한 자극은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채치수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변덕규나 강한 상대를 만날 때마다 미친놈처럼 자극을 받고 성장하는 서태웅, 정우성, 윤대협 같은 존재들은 이런 강렬한 감정을 능숙하게 핸들링할 줄 안다. 의욕이 꺾여 승부를 포기하기에는 승부욕이 너무 강하고 상대를 낮은 위치로 끌어내릴 궁리를 하기에는 자존감과 프라이드가 강하다. 그래서 이들은 대상을 극복한다. 그것도 같은 재능으로. 단적으로 서태웅은 정우성과 정확히 같은 플레이를 해내 보임으로써 자신을 증명한다. 변덕규 역시 계속해서 채치수의 영역인 골 밑에서 피지컬로 승부를 건다. 물러남이 없고 상대의 강점을 흡수하고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상대가 강한 만큼 나도 강해진다. 그래서 이들은 뛰어난 상대를 만나길 오히려 강렬히 열망한다.
권준호는 조금 다른 유형이다. 권준호에게는 이들과 같은 강렬한 승부욕이나 강고한 프라이드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못남도 존재하지 않는다. 놀라운 일이다. 중학시절부터 함께 해온 채치수의 엄청난 성장과 도내 모든 농구부의 주목을 받던 정대만의 재능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하면서도 그는 이들에게 눌리지 않고 자신의 농구를 찾아간다.
(후략)
원문 링크 : https://brunch.co.kr/@soulandu/57
https://img.theqoo.net/YYxNa
기 세기로 유명한 슬램덩크 세계관에서도 가장 기가 센 캐릭터를 뽑으라면 그건 권준호다.
그는 한 번도 정신적으로 패배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정대만이 다 부숴버리겠다며 미쳐 날뛰며 전 농구부원들을 쥐어패고 공포로 몰아갈 때조차 그는 기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물론 싸움모드로 돌입하기 전인 극초반에는 안절부절못하며 채치수를 찾긴 했다). 멘탈 강하기로만 따지면 그는 송태섭보다 한수 위다. 기복도 없고 주로 본인이 불안정할 때 저 나이대 남자아이들이 자주 보이는 불필요한 공격성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천재가 우글거리는 북산에서, 특히 사건 사고가 유달리 많은 북산에서 3년을 버틴 남자다. 그것도 채치수와 함께.
열등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좀먹는지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뛰어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은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을 만났을 때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 자존감은 생존과 직결돼 있다. 그것이 기량의 우월함을 겨루는 스포츠계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슬램덩크가 프로 농구가 아니라 고교 농구라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프로의 무대였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근사한 순간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타인의 월등함을 목격한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의욕이 꺾여 승부를 포기하거나 역으로 상대를 자신보다 낮은 위치로 끌어내릴 궁리를 하게 되거나. 두 가지 경우 모두 비참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선택지라는 함정 속에 갇혀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열등감.
대부분의 사람은 이 강렬한 상념을 열정과 혼동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열등감은 열정이 아니고 단 두 가지 선택지만이 이 강렬한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정답도 아니다.
적절한 자극은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채치수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변덕규나 강한 상대를 만날 때마다 미친놈처럼 자극을 받고 성장하는 서태웅, 정우성, 윤대협 같은 존재들은 이런 강렬한 감정을 능숙하게 핸들링할 줄 안다. 의욕이 꺾여 승부를 포기하기에는 승부욕이 너무 강하고 상대를 낮은 위치로 끌어내릴 궁리를 하기에는 자존감과 프라이드가 강하다. 그래서 이들은 대상을 극복한다. 그것도 같은 재능으로. 단적으로 서태웅은 정우성과 정확히 같은 플레이를 해내 보임으로써 자신을 증명한다. 변덕규 역시 계속해서 채치수의 영역인 골 밑에서 피지컬로 승부를 건다. 물러남이 없고 상대의 강점을 흡수하고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상대가 강한 만큼 나도 강해진다. 그래서 이들은 뛰어난 상대를 만나길 오히려 강렬히 열망한다.
권준호는 조금 다른 유형이다. 권준호에게는 이들과 같은 강렬한 승부욕이나 강고한 프라이드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못남도 존재하지 않는다. 놀라운 일이다. 중학시절부터 함께 해온 채치수의 엄청난 성장과 도내 모든 농구부의 주목을 받던 정대만의 재능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하면서도 그는 이들에게 눌리지 않고 자신의 농구를 찾아간다.
(후략)
원문 링크 : https://brunch.co.kr/@soulandu/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