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은 신이 났다. 텔레비전이라는 이름의 마도구에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재미있고 신기한 영상들이 흘러나왔고, 그중에서도 홈쇼핑이라는 채널에서는 연신 흥미로운 신문물을 소개해댔다. 그런 왕자님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무묭이 선심 쓰듯 ‘주문’이라는 것을 선보이자 바로 다음날 텔레비전 속 신문물이 자택에 도착하기까지 했다.
왕자님은 크게 감동한양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신계, 신계로구나...!”
정적의 ‘밤놀이’에 긴장하여 선잠을 잘 필요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독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왕자님은 이세계의 마도구와 착실하게 사랑에 빠졌다.
그런 왕자님의 오른팔은 텔레비전이요, 왼팔은 AI스피커였다. 그의 발치에선 로봇청소기가 오늘도 아양을 떨어댔다.
그에 비해 무묭은 슬슬 화가 쌓이기 시작했다. 전업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무묭은 흔히들 그러하듯이, 작업효율을 위해 낮과 밤이 거꾸로 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왕자는 너무나도 아침형 인간이었다. 그는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단련을 한다며 부산을 떨었고 최근 푹 빠진 ‘갈비탕’을 데워다가 아침식사를 해야만 한다면서 무묭을 오전 7시부터 일으켜 깨웠다. 제 잠을 방해하는 그의 행태에 무묭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평소 귀찮다는 이유로 스낵과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던 그녀에게 따뜻한 국물이 있는 식사는 심히 기꺼웠다.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갈비탕 냄새에 무묭은 짜증도 잊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 비록 더쿠다네라는 듣도 보도 못한 나라긴 하지만 어쨌거나 왕족이라는 자가 손수 차려주는 식사가 아닌가. 비록 내가 내는 전기료, 내가 내는 가스비, 내가 산 갈비탕이지만... 어디 그뿐이랴. 왕자는 무묭이 제 삶의 편의를 위해 샀지만 그저 그릇수납장으로만 쓰이던 식기세척기까지 알뜰하게 써먹고 있었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남이 대신 해준다는데 화를 낼만한 낯짝이 무묭에겐 없었다.
물론 왕자가 그녀의 집에서 무전취식중이라는 것을 무묭은 수면과 허기에 취해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