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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아빠가 뇌경색으로 입원한 지 한 달째 되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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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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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빠가 초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초반은 훌쩍 지나서 병세가 본격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이었음. 6월 초여름, 아빠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을 때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음. 9월 중순에 입원해서 이제야 한 달이 되어가니 얼마나 늦은 건지... 서로의 스케줄이 안 맞았다 하더라도 내가 더 세심하게 챙겨봤어야 했음


쨌든, 아빠는 뇌의 오른쪽 굵은 메인 혈관이 거의 막혀있는 상태. 비유하자면 메인 혈관은 고속도로고, 그 주변의 자잘한 혈관들이 국도인데, 아빠는 고속도로에 교통체증(=혈류가 잘 흐르지 않음)이 생겨서 주변의 국도를 통해 혈액이 도는 것으로 연명하다시피 함.


혈액이 충분히 돌지 못하니 산소와 영양분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우뇌의 50%의 뇌세포가 죽음. 그런 우뇌의 영향으로 몸의 왼편이 마비가 되었고 팔다리를 포함한 왼측의 내장 기능도 사실상 잘 기능하지 못함.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음. 왼쪽 폐의 영향으로 숨 쉬는 게 다른 때보다 좀 힘들고(코골이도 굉장히 심해지며 입으로 숨 쉬심), 소화기능 및 대장의 기능이 떨어져 자체적 배변이 안 됨. 배변은 관장을 하거나 변비약을 먹여서 해결해야 됨. 무엇보다 인지, 판단, 기억, 충동조절 능력이 많이 상실됨. 유치원생 같아. 최근 며칠간은 빈 천장을 보면서 처제의 얼굴이 보인다거나 조카의 얼굴이 보인다거나 말하기도...


편마비로 움직이지 못하니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함. 가장 큰 겉기저귀를 가장 아래에 놓고, 대변을 위한 속 기저귀를 덧대고, 음경에는 소변이 새지 않도록 구멍 뚫인 기저귀를 돌돌 말아서 고정시켜줌. 이렇게 해도 소변이 새서 다른 기저귀들까지 몽땅 갈아야 할 때도 잦음. 침대 시트까지 새는 일도 많음. 하지만 계속 용을 쓰며 뒤척이는 아빠를 뭐라할 수는 없었음. 한 달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오른팔 오른다리를 움직이는 것뿐이니까... 안 움직이면 미치겠다 하더라고


거의 대부분은 본인이 아프다는 인지를 못하심. 손등의 바늘을 입으로 물어 뜯으려고 한다거나, 병실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기가 답답하다며 제발 밖에 나가자고 소리친다거나, 아직도 스스로 걷고 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끊임없이 시도함. 이로 인해 입원 초반에는 내가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두 번 낙상하심. 다행히 보조침대에 이불 두껍게 깔아놔서 다치진 않으셨음...


핸드폰을 거꾸로 들고 빈 곳을 습관적으로 터치한다든지, 전혀 아닌 페이지를 켜놓고 평소처럼 전화하듯 귀에 가져다 댄다든지, 기저귀가 답답해서 오른손으로 자꾸만 내리려고 하고, 꽂아놨던 소변줄과 콧줄을 뽑는다든지, 지금이 1995년이다 5월이다 3월이라고 한다든지, 내 나이가 17살이라고 한다든지... 많은 걸 잃은 와중에도 내가 먹고 싶다 갖고 싶다고 한 건 잊지 않으심


한 번은 아빠가 자꾸만 밖에 나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시길래 어디를 가시려고 이러냐 물었더니 "너 빵 사주려고". 내가 어제 아침에 딱 한 번 생크림빵 생각난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계속 "너 먹고 싶다고 했잖아" 하시며 나가야한다고 하심. 본인은 입맛 없다며 미음 4숟갈밖에 못 먹었으면서. 외에도 "문구점 가자", "야구보러 가자", "바다에 가자" 하심. 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곳들이거든


아빠가 자꾸만 기물을 망가뜨리려고 하고 본인 몸을 때리고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속상한 와중에도 아프기 전처럼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주려고 하는 아빠 모습이 보이니까 다른 의미로 속상해짐. 이럴 때마다 내 수명이랑 건강을 아빠에게 주고 싶음


(거동이 아예 안 되는 환자라) 간병비가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간병은 나와 엄마가 하루씩 돌아가며 돌보는 중. 아빠가 낮에 30분 자고 1시간 용 쓰는 식으로 주무셔서 저녁~새벽에는 전혀 안 주무시는 바람에 그날의 보초(?)는 항상 밤을 새야함. 그리고 아빠는 아침이 되면 귀신 같이 자주 잠에 빠지심... 수면 사이클을 돌려보려고 해도 낮에 잘 때에는 흔들고 소리치고 두드려봐도 거의 기절하듯 잠들어서 안 깨심...


혈관에 스턴트를 넣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는 답변을 받음. 이런 수술은 아예 초기에 했어야 했는데 아빠는 초기가 지나서 거의 막힌 상태로 왔으므로. 현재 아빠의 상태는 한 달 전 막혀있던 그 상태에서 계속 현상을 유지하고 있을 뿐임. 언제 다시 뇌경색이 더 터질지 모르는 위험요소를 안고 살아가는 중. 남은 수술은 다른 혈관이랑 연결해주는 건데... 이건 완전히 대수술이고 부작용이 있어서 최후의 보루라고 하더라고. 또한 아빠가 지금의 현상을 유지하는 건 혈전을 녹이고(근데 이미 쌓은 혈전은 안 녹는 것 같고 더 쌓이지 않게만 하는 듯) 혈액을 묽게 해주는 약 덕분인데, 이 약 때문에 지혈이 잘 안 돼서 수술을 하려면 약의 투여를 멈춰야 함. 이러나 저러나 힘든 선택이 많음


치료비와 입원비는 한 달 째인 지금까지 도합 약 600 나옴. 물론 이것저것 적용 받은 후의 금액임. 비급여 치료제도 많았고, 검사들도 잦고 비쌌음. 외에도 나와 엄마의 식사와 교통비, 간병에 드는 물품비, 생활비 더하면 적어도 100은 더 얹어야 할 듯함


솔직히 아빠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조금만 더 좀만 더 나랑 엄마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난 아직 아빠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음...


그냥 갑자기 서글퍼져서 일기 겸... 두서 없이 한번 써봄


만약 이 글을 읽은 덬이 있다면 꼭 건강검진 거르지 말고 받아보길 권장함. 뭐가 되든 건강이 최고고 병은 초기에 잡는 게 좋으며 가장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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