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가 무너진 결과가 진영 내부의 개싸움이라는 사실은 조금 씁쓸하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진영논리는 결국 깨져야 한다. 하나의 진영 안에서는 언제나 정의와 악이 명확히 구분될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
한때는 같은 편으로 불렸던 사람들이 등을 돌린다. 조국이라는 사건은 단지 한 정치인의 흥망이 아니었다. 유시민과 진중권이 정반대 방향으로 멀리멀리 사라져간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다”는 믿음을 무너뜨렸다. 그 과정은 혼란스러웠지만, 어쩌면 건강한 일이기도 했다. 비판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스포츠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져도 괜찮다. 욕은 감독이 먹으면 된다. 강인이는 멘탈을 지키고, 클럽으로 돌아가 자신의 축구를 하면 된다. 태극마크 하나에 자신의 모든 가치를 걸어야 했던 시대는 지났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이 선수를 정의하는 게 아니라, 선수가 국가대표라는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정체성이 국적 하나에 갇히지 않으니까, 더 넓은 무대에서 훨훨 날 수 있다.
문화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굿즈 소비가 한풀 꺾였다. 이제는 북 오마카세다. 서울도서전에 수만 명이 몰린다. 책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사러 가는 것이다. 김민경씨가 라스에 나와 김구라에게 책을 골라주는 세상이다. 사은품을 모으던 시대에서 누가 큐레이션해놓은 장소에 찾아가는 시대로 바뀌었다. 이러다 보면 몰입을 즐기는 시대로. 언젠가는 음식도, 예술도, 책도,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보다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가’를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기성 정치 역시 변화를 피하지 못한다. 늘 이해관계에 따라 진영을 선택하면서도 그것을 정의라고 포장해 왔다. 지금은 1990년대 이후 태생의 숫자가 적고 표가 안되니 계몽하려 하고, 타이르려 하고, 속이려 한다. 그러나 지금의 20~30대는 예전처럼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신경안정제처럼 소비하던 시대도 끝나간다. 유시민을 찬양하던 20대 여성이 제일 먼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정치인은 더 이상 위안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평가받는 대상이다.
김어준의재능은 언제나 치고 빠지는 데 있었다. 흐름이 불리하면 한 발 물러나고, 다시 유리한 국면을 기다린다. 유시민이 골치 아파지자 그런 소리 할 거면 자기 채널 파서 하라고 폭탄을 돌린다. 저런 방송을 릴리즈 하고 정작 지금 늘 꿈꾸던 유럽 자영업자 놀이하러 파리에 있다. 유럽. 7080세대가 그토록 동경하던 그 단어. 민주주의의 완성형, 여유로운 삶의 교과서처럼 소비되던 곳. 그런데 지금 그 유럽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흔들리고, 극우 정당이 의회를 채우고 있다. 이상향은 언제나 현실보다 늦게 업데이트된다. 어떤 진영이든, 어떤 정치적 올바름이든, 어떤 ‘멋’이든 현실 앞에서는 생각보다 허약하다. 그래서 더 이상 멋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파편적으로 살아간다. 가족도, 회사도, 정당도, 국가도 우리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 대신 취향과 직업, 언어와 여행, 책과 음악, 인터넷 커뮤니티가 우리의 일부가 된다. 그것은 선진국 사회 젊은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김어준, 조국, 유시민, 진중권도 한때는 젊은이였다. 그들은 기존 질서에 맞서는 안티테제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그들 역시 새로운 질서, 다시 말해 또 하나의 테제가 되었다. 다음 세대는 그들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다. 역사는 그렇게 정반합을 반복한다.
그들의 비극은 상대가 너무 저열했다는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싸웠고, 너무 깊이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도 그 더러움을 닮아 갔다. 괴물을 상대하다가 괴물이 되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조금 다르다. 더 개방적이고, 더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간다. 유신도 없고, 고문도 없다. 적어도 민주주의의 제도 안에서 싸울 수 있다. 물론 갈등은 여전하지만, 상대를 절대악으로 규정해야만 하는 시대는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
결국 사람들은 진영이 아니라 개인이 된다. 정치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 국적 이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 이념 이전에 하나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세대가 이전 세대에게서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자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