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둘러싼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3,370만 명 개인정보 유출로 시작해, 각종 산재 은폐 의혹이 붙더니, '셀프 조사' 논란을 둘러싼 진실 공방까지 가세했습니다.
수사 대상인 기업이 조사 결과를 직접 발표하는 상황을 정부가 성토하자, 쿠팡은 '정부가 시킨 일'이라며 반격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이렇게 번질 거라고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초유의 전개입니다.
시시각각 새로운 정보가 나오고 있어, 맥락을 놓치기 쉬울 정도입니다.
여기서 잠깐, 각도를 달리해 큰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 사건이 왜 이렇게까지 커지는지 이해가 될 겁니다.
■ 한국은 무대, 더 중요한 건 막후
표면적인 전선은 한국 정부 vs 쿠팡의 대결, 혹은 맞짱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갈등의 진원은 따로 있습니다. 시선을 바다 건너 미국으로 돌려보죠.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핵심 인사였던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의 규제가 한미 FTA에 위배된다"며 쿠팡을 두둔하고 나섰습니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의 갑작스러운 개입 뒤엔 쿠팡의 전방위 로비가 있을 거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미국에서 신고 등록한 로비는 합법이고, 쿠팡은 큰돈을 들여 많은 로비스트를 고용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로비스트는 선수들입니다. 그 뒤에 판을 짜는 감독과 코치진이 있습니다. 물론 최종 보스는 범 킴, 즉 김범석 대표겠지만, 김 대표를 도와 큰 그림을 그리는 핵심 참모들이 있습니다.
주목되는 건 두 곳. 국내 최대 로펌 김·장 법률사무소와 글로벌 메가 로펌 '시들리 오스틴(Sidley Austin)'입니다.
단순히 ‘정부 대 기업’의 갈등이 아니라, ‘한국 정부 및 정치권 vs 쿠팡 및 김·장–시들리 오스틴 법률 연합’과 같은 더 복합적 전선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 김앤장, 쿠팡 대표이사부터 임원까지
쿠팡의 성장사에서 법률 리스크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이름은 늘 같습니다.
김·장 법률사무소입니다.
쿠팡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 각종 규제와 분쟁, 공정거래 조사에 일관되게 관여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는 변호사가 대표이사까지 맡는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일의 속성상 그렇습니다.
변호사는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는 훈련을 받은 전문가입니다.
반면 경영자는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성장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법무와 경영진은 사고방식의 충돌이 일어나기 쉽고, 대부분의 기업이 법무팀과 사업팀을 분리해 운영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쿠팡은 다릅니다.
쿠팡은 일반적인 기업 경영의 상식을 깨고 규제 대응과 법무를 아예 경영의 중심축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단순히 법무팀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위험 관리 전문가를 최고 경영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사법적 방어를 기업 생존을 위한 최우선 전략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것도 특정 법률사무소를 중심으로.
먼저, 강한승 전 쿠팡 대표입니다.
강 대표는 서울고등법원 판사 출신인데, 2013년부터 2020년까지 7년 넘게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일했습니다.
쿠팡의 로켓배송 관련 소송을 진두지휘하면서 '동일인(지배주주) 지정' 같은 규제 리스크 전반을 담당했습니다.
쿠팡은 김범석 대표가 정말 피하고 싶어 했던 '동일인 지정' 대응을 김앤장에 맡겼고, 강한승 당시 김앤장 변호사는 팀장을 맡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동일인 지정 예외를 끌어냅니다.
이후 쿠팡 대표이사로 옮깁니다. 이사회 의장도 맡았습니다. 쿠팡의 급성장 시기와 겹칩니다.
지금은 미국 쿠팡에서 북미 사업 개발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를 받는 물류 계열사, 쿠팡 CFS와 쿠팡 CLS에도 김앤장 출신이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정종철 CFS 대표는 판사 출신으로, 2011~2023까지 10년간 김앤장 변호사였습니다.
홍용준 CLS 대표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김앤장에서 형사 이슈를 담당하다가 쿠팡에 합류했습니다.
물류 전문가가 아니라 변호사 출신이 쿠팡 핵심 자회사 대표에 선임된 이유는 명확합니다.
노동·안전·물류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민감한 법적 갈등을 '대표이사급 법조인'이 직접 관리하기 위한 포석입니다.
2022년 12월 쿠팡의 금융 계열사 쿠팡 파이낸셜 각자 대표로 온 김영준 대표 역시 김앤장 출신.
임원진에는 이혜은 전무가 있습니다.
2022년 6월 검찰에서 나온 뒤 김·장 법률사무소에 합류했는데 이듬해, 쿠팡 경영관리실 전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형사 리스크 대응, 대외 법무 전략을 담당하는 걸로 알려집니다.
이쯤 되면 쿠팡 그룹은 김앤장 출신들이 움직이는 거대한 IT·법률 플랫폼에 가까워 보입니다.
■ 시들리 오스틴, 너는 누구냐
국내에 김·장 법률사무소가 있다면, 미국에서는 글로벌 로펌 시들리 오스틴(이하, 시들리)이 있습니다.
시들리는 미국 법률 전문 사이트 '로닷컴'이 꼽은 세계 10대 로펌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해, 전 세계 20여 곳에 사무소를 두고 있습니다.
2024년 연 매출이 34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 원을 넘습니다. 소속 변호사는 2천 명에 이릅니다.
특징은 한국 기업 관련 업무에 특화돼 있단 것.
홈페이지를 보면 '한국 최고 수준의 로펌과 수년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시들리가 말하는 '한국 최고 수준의 로펌'은 김·장 법률사무소로 보입니다.
김·장 법률사무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결과, 최소 3명의 외국 변호사가 시들리 출신입니다.
이 중 두 명은 김앤장으로 오기 직전까지 시들리에 있었습니다.
김·장 법률사무소와 시들리는 쿠팡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부터 명품 플랫폼 '파페치' 인수까지 모두 함께 진행해 왔습니다.
시들리와 김앤장 라인. 한두 해 인연이 아닙니다. 시작은 2019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9년 3월. 미국 쿠팡의 법무 및 컴플라이언스 최고책임자로 제이 조르겐센이 합류하는데, 시들리의 파트너 변호사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들리-김앤장 연합의 정점엔 현 쿠팡 대표, 헤럴드 로저스(H.L. Rogers)가 있습니다.
로저스 대표는 시들리에서 2006년에서 2016년까지 10년 넘게 일하다 2020년 쿠팡에 합류했습니다.
법조계에서 "사실상 김·장 법률사무소와 시들리 연합군이 김범석 의장의 문고리 권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위험 관리라는 이름의 '책임 회피'
쿠팡 사태가 법리 싸움으로 번질수록 김앤장과 시들리 출신 인사들의 목소리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사태를 풀기보다는 ‘기업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전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쿠팡의 관리 부실을 인정하는 순간, 곧바로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모든 판단이 ‘리스크 관리’의 틀 안에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 구제나 재발 방지 대책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법률적 방어막에 부딪혀 되돌아옵니다.
김범석 의장은 자신이 결정해야 할 순간에도 법률가들의 조언에만 기대는 건 아닐까.
언제까지 법률가들이 설계한 ‘가장 안전한 조언’ 뒤에 숨어 있을지….
쿠팡과 김범석 의장의 제1 목적은 '사업을 하는 것'입니까? '위험을 피하는 것'입니까?
한국 소비자들은 묻고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2093944?sid=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