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인 주인이의
남동생 해인이는 마술사임
마술사는 무언가를 숨기거나 바꾸는 사람임
마술의 핵심은 세 가지임
1. 보여주기
2. 감추기
3,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이 영화 내에서 주인이 가족은 숨기는 것을
삶의 전략으로 쓰고 있음
주인이는 피해 사실을 숨기고
엄마는 괴로움과 알콜 중독을 숨기고
아빠는 죄책감에 못 이겨 자신의 행방을 숨김
해인이는 이 모든 비밀을 보관하는 사람임
해인이는 작중에서 끊임없이 마술 연습을 하고
다가오는 마술 쇼를 준비함
마술은 현실을 바꾼다는 환상을 줌
하지만 성공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음
이건 윤가은의 현실 인식이라고도 할 수 있음
마술처럼 단번에 고통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현실은 트릭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해인이는 계속 마술을 함
서투르고 실수를 해도 그만두는 일은 없음
왜냐면 그건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랑의 행동이기 때문임
변화를 믿지 않지만 그래도 시도하는 것
해인이는 교도소에서 오는 삼촌의 편지를
혹시라도 누나가 읽을까봐 몰래 숨김
이 역시 숨기고 바꾸는 마술사의 방식임
누나는 너무 멀쩡하고 활달하게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고통을 좀처럼 신뢰하지 않음
하지만 누나가 편지를 받으면 어떤 상처를 입을지
해인이는 알고 있음
그래서 읽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누나를 보호함
이건 어린이가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 방식의 사랑임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단지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비밀을 가둬두는 것
해인이가 앓고 있는 아토피는 원인 없는 염증으로
스스로의 면역 반응이 자신을 공격하는 병임
가족이 숨기고 있는 고통과 비밀
해인이는 그것을 몸으로 대신 느끼고 있음

클라이막스의 마술 쇼에서 해인이는 관객들의
고민을 상자 속에 모아서 숨기려고 함
하지만 그의 마술은 실패함
그는 마술사일 뿐이고 누구의 고통도
진짜로 없앨 수 없음
마술이 성공하기 위해선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함
그 때 해인이의 앞에는 엄마도, 누나도 없었음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난 후, 영화의 막바지에
주인이는 해인이가 침대 밑에 숨겨둔
삼촌의 편지들을 봄
해인이는 삼촌에게 누나 대신
편지 그만 보내라며, 사라져줬으면 좋겠다며
답장을 보내려고 했음
그 때까지 주인이는 남동생이
뭘 짊어지고 있는지 몰랐음
이건 동생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게 된 것이며
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임
마술사의 트릭이 성공할 준비가 되는 것이기도 함
왜냐면 마술은 속이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믿는 기술이기 때문임

마지막에 해인이가 마술을 성공시킨 건
자신을 믿어주고, 같은 방향을 바라봐주는
가족이 눈앞에 있어서임
마술은 진실을 숨기는 기술이 아니라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기술이며
해인이의 입장에서는 누나와 엄마가
이해해야만 완성되는 기술이기 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