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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조제) [씨네21] 김종관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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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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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덧없을지라도 예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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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원작을 리메이크한다는 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리메이크가 원작을 뛰어넘기 힘든 이유야 갖다 붙이는 만큼 계속 나오겠지만 두 가지 정도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하나는 원작을 다시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게 이미 애정 고백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너에게 반하다. 그 순간, 이건 이기고 지는 경쟁도 아니고 상대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도 아니다. 그저 가슴을 뒤흔든 순간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화답일 따름이다. 

두 번째로 처음은 힘이 세다. 첫사랑, 첫만남, 첫 경험. 세상 모든 처음은 어떤 형태로든 각인되어 마음 한구석 방을 배정받는다. 월세도 내지 않고 내내 머무르는 뻔뻔하고 고마운 기억들. 그래서 원작과 비교를 시작하는 순간 그 어떤 리메이크라도 가난하고 부박해 보이는 걸 피하기 어렵다.

김종관 감독의 <조제>를 말할 때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이하 <조제…>)을 옆에 놓고 계속 키를 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원작 소설과 비교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신작 <조제>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늘어 놓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조제…>를 사랑하는 만큼 밤새도록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들뜬 실망감으로부터 한발 떨어져 생각해보면 김종관 감독의 <조제>가 가만히 다가와 가슴을 두들긴 장면들도 분명 존재한다. 원작 소설의 ‘조제’, 이누도 잇신의 ‘조제’와는 다른, 처음 보는 조제와의 만남. 이번 글에서는 한국영화 <조제>와의 시간에 온 신경을 집중해보려 한다. 심장 박동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릴 만치 고요한 밤. 소복이 쌓인 눈이 온 세상 소리를 먹던 밤. 그 밤 한가운데에 서서 감지되는 순간들을 수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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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의 여지없이, 이건 <조제>를 위한 변명이다. 이누도 잇신의 영화가 그랬듯 <조제>는 앞서 나온 이야기들과 다른 이야기를 걷는다. 어떤 관객은 단지 다르다는 걸 넘어 한참 모자라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감상도 동의한다. 김종관의 <조제>는 여러모로 모자라고 약점이 많은 영화다. 하지만 그렇게 비교하고 내버려두기엔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계속 눈가에 아른거리는 어떤 순간들. 마음을 뺏긴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 한 사람쯤은 이 덧없고 예쁜 세계를 향한 고백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자세히 볼수록 발견되는 <조제>의 매력을 중심으로 김종관 감독의 <조제>가 원작과 다르게 성취한 점을 비교해보았다. <조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김종관 감독의 인터뷰도 전한다.


http://naver.me/xPt4Tj8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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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무너질 때'

매번 누가 이런 걸 조사하나 싶은 것만 깨알같이 찾아내는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데까지 10초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진정 놀라야 하는 건 10초라는 짧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빼앗긴다는 불가항력의 사태 그 자체다. ‘첫눈에 반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강조하고 싶은 건 어쩌면 짧은 시간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크기일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세계가 세차게 흔들린다는 신호. 나의 세계로 누군가가 뛰어들어온다는 통제 불가능한 사건. 하지만 사랑 한가운데에 있을 때 우리는 대체로 그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사랑이라고 단정지으면 왠지 날아가버릴 것 같으니 그냥 ‘너에게 빠진다’ 정도로 해두자. 

누군가에게 빠지는 일은 실은 빈칸을 만드는 작업이다. 나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 안에 안착하는 과정은 교통사고와 같아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동안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랑에는 현재가 없다. 오직 빠지기 전과 후, 그러니까 검은 밤바다 같은 미지를 앞둔 망설임과 빠져나온 후 빈칸을 되돌아보는 기억으로 존재한다. 김종관의 <조제>는 그 공백과 침묵의 시간의 한 귀퉁이에서 곁불을 쬐려는 듯 가만히 쭈그려 앉으며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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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휠체어에서 튕겨나와 넘어져 있다. 망가진 휠체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남자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리어카를 발견하고 여자를 태운다. 리어카를 끄는 남자와 뒤에 탄 여자, 그리고 망가진 휠체어. 어색하고도 특별한 만남. 이상할 법도 하건만 어딘지 자연스럽게 시작된 인연. 영석(남주혁)과 조제(한지민)의 시간은 그렇게 서로의 울타리를 부순 교통사고와 함께 열린다. 그날 이후 영석은 조제가 계속 눈에 밟히는 듯 조제 주변을 맴돈다. 

이건 보통의 사랑 이야기다.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만나고, 문득 상대에게 스며들었다가, 한참을 함께한 뒤 결국엔 헤어지는 이야기다. 옆구리가 쓸쓸해지는 가을이란 계절이 생겨난 이래 무수한 이야기 속에서 수없이 반복된 그저 그런 연애담. ‘그래서 행복해졌습니다’라는 대리 만족의 해피엔딩도 아니고, 애정이라는 운명의 장난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깊숙이 탐구해가는 것도 아닌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범한 지점은 끊임없이 시선을 붙들어둔다는 것이다. 다음 사건이 궁금해지는 이야기의 동력과는 다르다. 별거 없는데 괜히 눈길이 가는 마음. 카메라는 영석이 왜 조제에게 끌렸는지 설명하는 대신 서로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저 가만히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예쁘게 부스러지는 부스러기들을 하나씩 주워 모으다 보면 어느새 하나가 된 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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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가 계속 눈에 밟히는 이유'

되도록 피해가고 싶지만 아예 외면할 순 없을 것 같다. 김종관의 <조제>와 이누도 잇신의 <조제…>는 마음의 형태를 그리는 방식이 다르다. 이누도 잇신의 <조제…>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애상의 노래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사람이 있다. 그녀와는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츠네오(쓰마부토 사토시)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사랑보다는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 읊조린다. 때문에 츠네오의 시점에서 조제를 되돌아본다는 행위가 중요하다. 

이누도 잇신의 <조제>는 사랑이 지나간 흔적, 빈자리로 마음의 부피와 무게를 가늠한다. 엔딩의 두 장면. 조제와 헤어진 후 산뜻한 척 집을 나서던 츠네오는 서럽게 울음을 터트린다. 무엇을 향한 울음인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지만 우리는 거울 같은 그 장면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날들, 도망쳐온 비겁하고 서러운 순간들을 마주한다. 반면 조제에게 헌사된 장면은 홀로 집에서 밥을 지어 먹는 모습이다.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방 안은 적막하고 고독하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뒤가 생략되어 있다. 고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 고독하지 않다고 자신을 방어했던 조제는 이제 기꺼이 고독하기로 한다. 이 모든 것은 츠네오가 조제와 함께했던 시간을 되돌아봄으로써 완성되는 사랑의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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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김종관의 <조제>는 시점이 혼란스럽다. 영석의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 영화는 조제의 내레이션으로 문을 닫는다. 초중반 영석의 시점으로 조제를 관찰하던 영화는 눈 내리는 밤, 영석과 조제가 함께 있기로 결심한 그 밤부터 조제로 초점을 옮긴다. 그러나 웬일인지 조제의 독백이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편편해지고, 선명하던 사랑의 형태마저 뿌옇게 흐려진다. 서사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화자의 이동은 명백한 실패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조제>는 누군가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라. 이누도 잇신의 <조제>가 ‘되돌아보는 이야기’라면 김종관의 <조제>는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정성스럽게 수집한 보석함이다. 다만 여기서 아름다움의 기준은 철저히 조제의 내면을 따른다는 게 중요하다. 영석이 책으로 가득한 조제의 방을 보며 감탄하자 조제는 으쓱함과 쓸쓸함의 중간쯤 걸터앉은 표정으로 말한다. “할머니가 주워온 것들에서 골라낸 거야. 사람들은 책을 버리니까. 사람들이 잔뜩 버린 쓰레기 책들이 나한테는 용도가 있는 거지. 여긴 버려진 것들의 쉼터 같은 곳이야. 내가 이뻐해주지.”

<조제>는 낯설고 비루해 보였던 것들이 점차 소중해지는 시간을 따라가는 영화다. 영석은 선물받은 햄 세트를 핑계 삼아 조제를 보러 가서 전한다. “난 안 먹는데, 안 먹으면 쓰레기니까.” 조제는 답한다. “쓰레기를 줘서 고맙다.” 할머니와 사는 낡은 집은 조제의 성이다. 영화 초반 조제의 집을 보여줄 때 우리는 쓰레기 더미 속에 묻힌 삶을 목격한다.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의 집은 변두리로 밀려난 궁핍한 생활상을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시선으로 전한다. 

왜 <조제>인가. 왜 이 영화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화답은 영화가 수집한 공간의 디테일에서 묻어난다. 영석과 조제의 만남이 이어지며 바뀌는 것은 바로 이 공간과 소품들을 묘사하는 온도다.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보이던 것들이 점차 조제의 세상을 둘러싼 보물들로 보이기 시작할 때, 영석을 비롯한 관객은 어느새 조제의 울타리 안에 들어서는 셈이다. 관계란 무엇인가. 결국 서로의 쓸모와 의미로 자리 잡는 과정이다. <조제>는 누군가의 관심과 손길이 닿은 순간 더이상 잡초가 아닌 꽃이 될 수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다. 가난한 지방대생의 현실이나 취업에의 압박, 복지의 사각지대 등 한국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실감 위에서, 김종관의 카메라는 고요하고 담담하게 서로의 쓸모가 되는 순간들을 채집한다. 물론, 꽃도 언젠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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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괜찮다는 말'

밋밋하거나 인물이 잘 보이지 않거나. <조제>의 아쉬움을 지적하는 평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는 듯하다. 조제가 어떤 사람인가. 영석은 왜 조제에게 빠지나. 조제의 매력이 무엇인가. 두 사람은 왜 헤어질 수밖에 없나. 영화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신 조제의 울타리 안으로 우리를 초대해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울타리 안에서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올 법할 기억을 마주한다. 평범하고 심심해서 더 예쁜 순간들. 영석과 조제의 만남은 필연도, 대단한 사건도 아니다. 그저 만나고, 고독을 나누고, 마음이 다한 뒤 헤어진, 그뿐인 이야기. 그러나 이 범상한 기억들을 기어코 예쁘게 기억하려는 의지가 이 모든 순간을 어여쁘게 만든다.

김종관의 <조제>가 이야기를 닫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기억이 어디에 맺혀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와, 꽃들이 죽는다. 예쁘게, 조용하게 죽는다.” 예쁘게, 덧없을지라도 예쁘게. 사랑, 아니 마음을 빼앗긴다는 기적은 그런 ‘예쁨’을 향한 발버둥 속에 삶을 지탱한다. 기억 속에서 내가 더이상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이제 괜찮아. 앞으로도 그럴 거야.


http://naver.me/xhsx3k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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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리메이크다. 한편으론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도 드물 것 같다. <페르소나-밤을 걷다>(2018), <아무도 없는 곳>(2019), <달이 지는 밤>(2020) 등 한동안 유령과 죽음의 흔적을 더듬던 김종관 감독이 보편적인 자리로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김종관 감독의 클래식 멜로, <조제>가 탄생하기까지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리메이크인데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최악의 하루> 후반작업 중에 일본 프로듀서들과 협업할 일이 있었다. 그중 <조제…>와 관련됐던 PD가 있었는데 리메이크해볼 생각이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그땐 어렵다고 답했다. 훌륭한 원작을 그대로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작자로서 리스크도 크고. 그런데 계속 앙금처럼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지향하는 감정의 이야기,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해온 것도 도전이 아닌 게 없었다. 작은 영화, 단편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는데 그것 역시 방식과 방향이 다를 뿐 큰 용기가 필요한 작업들이었다. 그동안 많은 단편을 만들고 오랫동안 독립영화 작업을 한 이유는 그 안에서 분명히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좋은 원작을 두고 도전하는 것에서 창작자로서 배우고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나를 움직였다.


-원작 영화와의 비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큰 숙제 중 하나는 원작에 대해 애착을 가진 분들을 어디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좀더 독립적인,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대중영화로서의 보편성, 그리고 멜로적인 정체성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별에 대한 입장이나 이별의 과정이 원작 영화와 다르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공간, 문화 차이는 물론이고 시대도 달라졌다. 이별의 책임을 인물에게 묻기보다는 관객이 스스로의 현실이나 보편적인 사랑, 이별의 과정에 대입해볼 수 있길 바랐다. 원작이 문학적인 색채가 진하다면 내가 모티브로 잡은 건 할리우드 클래식 멜로다. 멜로가 희귀해져가는 시대에 제대로 된 멜로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지방대생, 가난과 취업, 장애인 복지 등 훨씬 사실적인 디테일들로 채워진, 땅에 발을 디딘 이야기로 현지화됐다.
=기본적으로 가난에 대한 기억이 있다. 미술이나 배경은 내 기억 속에서 길어 올려 채우는 편이다. 다행히 내가 해석한 조제라는 캐릭터가 가진 개성과도 결이 닿았다. 영석도 마찬가지다. 이건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던 영석이라는 인물이 사랑이란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초반부는 영석의 방황을 가져가되 뒤에는 이별에 대한 클래식 멜로의 정서를 진하게 보여주려 했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는 인물을 둘러싼 주변 상황들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풍경을 담았다.



-제목이 <조제>다.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제목에서 뺐는데 후반부에 호랑이와 물고기를 굳이 등장시키는 게 의아하다.
=원작 소설 제목이기도 한 만큼 호랑이와 물고기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거기서 변주를 한 것이 경계 너머에 대한 상상이다. 영화는 영석이 조제를 관찰하는 시점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제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이 영화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제는 현실과 상상의 구분을 두지 않고 오가는 사람이고, 영석은 그걸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시점 혹은 경계의 이쪽저쪽을 오가고 싶었다. 원작과는 쓰임새가 다른 만큼 제목까지 가져가기엔 미안해서 <조제>로 했다. 주인공 조제는 원작보다 연령대를 올린 만큼 한층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이 있다.


-캐릭터도 많이 바뀌었다. 할머니의 경우엔 거의 대사가 없다.
=원작을 본 사람들은 계속 원작과 비교할 수밖에 없지만 내 기준은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쫓아올 수 있도록 캐릭터 해석에 공을 들였다. 영화보다 원작 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다. 원작 영화의 캐릭터는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데 이 영화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껴 절제해서 표현하려고 애썼다. 인물들의 남루함을 살리는 쪽이랄까.


-옆모습 실루엣과 뒷모습을 한국에서 가장 섬세하게 찍는 감독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멋진 장면들이 등장한다.
=인물 묘사를 할 때 표정을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는 목소리, 옆모습, 흘러내린 머리카락, 손끝 등을 입체적으로 쓰는 편이다. 조제는 어둠에 잠긴 인물로서의 모습을 좀더 보여주고 싶어 초반에는 그림자와 실루엣 위주로 가져갔다. 어찌 보면 거기서 벗어나 점차 밝은 쪽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담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단편을 찍을 때보단 조건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좀더 찍어보고 싶은 이미지들을 많이 시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크레인을 활용한 부감같이. (웃음) 흔한 이야기, 멜로의 통속성 속에서 사람을 향한 시선들을 생각해주면 좋겠다.


http://naver.me/53YCew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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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에게 조제의 반짝이는 기억, 그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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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던 밤, 담장 안에서'


조제는 영석이 불편해졌다며 쫓아낸다. 어쩌면 울타리 안으로 불쑥 들어온 영석이 두려워졌을지도 모른다. 한참 뒤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조제의 집을 찾은 영석. 조제는 매몰차게 영석을 밀어내보지만 결국 담장 안에서 함께 머물기로 결심한다. “조용하게 눈을 밟으며 나에게 왔지.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어. … 나는 이제 무섭지 않아.”

=공을 많이 들인 장면이다. 촬영장에서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조제는 구멍 뚫린 담을 보며 어딘가로 넘어가는 상상을 한다. 그렇지만 조제는 어디까지나 안에 있는 사람이다. 영석은 그걸 받아들이고 담을 메워준다. 그렇게 서로를 아껴주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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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지와 대관람차, 문을 닫아보아도'

<조제>에는 동물원이 없다. 대신 영석과 조제는 연인이 된 뒤 놀러 간 유원지에서 함께 대관람차를 탄다. 두렵지만 함께 있으면 할 수 있는 일. 대관람차는 두 사람만의 행복한 시공간을 선사하지만 한 바퀴 돌면 내려와야 한다. 내려야 할 차례가 왔을 때, 조제는 대관람차의 문을 살포시 닫는다. 결국엔 끝나버릴 부질없는 저항. 그럼에도 한 바퀴 더 돌 수 있다는 행복한 유예.

=이별엔 ‘왜’가 없다. 적어도 영화에서 그걸 보여주려 하진 않았다. 이를 통해 관객 각자의 보편적인 체험으로 확장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가장 좋은 순간 느끼는 불안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걸 유지하고 싶은 마음. 조제의 내면이 단단해지는 시간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조제는 죽음을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깊고 쓸쓸한 영역의 느낌들을 주고 싶었다. 영화의 엔딩을 대관람차와 이별 사이 어느 시간으로 잡은 것도 비슷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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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수족관, 물의 기억들'

이누도 잇신의 <조제…>, 다무라 고타로의 애니메이션 <조제>, 그리고 김종관의 <조제>의 큰 차이는 바다를 가는 타이밍이다. 애니메이션 <조제>는 일찌감치 바다로 가고, 이누도 잇신의 <조제…>에선 헤어지기 전 이별 여행에 가깝다. 김종관의 <조제>에선 바다에 직접 가지 않는다. 대신 물의 공간이 두 차례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바다와 아쿠아리움이 바로 그것이다.


=물의 세계는 원작 <조제…>에서도 중요하다. 정서는 살리되 내가 할 수 있는 쪽, 우리 조제에 더 어울리는 쪽으로 끌고 오려 했다. 영화를 보고 두개의 이미지가 주는 느낌의 차이를 직접 확인했으면 좋겠다.

http://naver.me/GvFutr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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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경원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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