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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조제) '씨네21' 한지민 & 남주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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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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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있다. 외출할 땐 휠체어가 필요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집 안에서 보내며 책을 읽고 상상으로 세계를 누비는 조제(한지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대학생 영석(남주혁).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이 끌린다. 두 사람의 손과 시선과 마음은 꼭 맞게 하나로 포개진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이 ‘하지만’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원작인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이 영원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눈부)>에서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진 관계로 호흡을 맞췄던 한지민과 남주혁은 <조제>에서 다시 한번 연인으로 손을 맞잡는다. <조제>의 제작보고회 날 제작기 영상을 보고 눈에 눈물이 고였던 남주혁과 그런 남주혁 때문에 따라 눈물을 훔쳐야 했던 한지민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조제와 영석으로 살았던 시간을 여전히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조제>로 2020년을 마무리하는 한지민과 남주혁을 만나 사랑을 말하는 영화에 대해, 영화를 향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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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백>의 백상아를 연기하며 그해 배우가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찬사를 받았던 한지민이 선택한 인물은 장애 때문에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할 수밖에 없는 <조제>의 조제다. 드라마 <아는 와이프> <눈이 부시게> <봄밤>을 통해 그녀가 보여준 인물들 역시, 우물쭈물하거나 멈춰 설 여유 없이 일상을 전투적으로 치러낸 캐릭터들 이었다. 작품 외적으로도 여러 사회 활동을 통해 어떤 장애물이든 지혜롭게 뛰어넘을 것 같은 이미지를 구축한 한지민과 조제의 조합이 궁금해진 이유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배우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 듯해서다. 한지민의 또 다른 시작점이 될지도 모를 <조제>의 개봉을 앞두고 원작과는 다른 조제만의 사랑법에 관해서, 30대를 마무리하는 2020년의 고민과 관심사에 대해서 물었다.


-<조제>는, 영화로는 <미쓰백> 다음 작품이자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남주혁과의 연이은 작업, 또 유명한 원작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여러 부담감을 안고 시작했을 영화다.
=<최악의 하루> 시사회 때 김종관 감독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번은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후 <눈이 부시게>를 작업한 직후 주혁씨로부터 <조제>에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시나리오를 읽어봤다. 내가 주혁씨와 작업한 지 얼마 안됐는데 괜찮겠냐고 감독님에게 물었더니, “두 사람이 더욱 편안한 호흡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고 또 시나리오도 원작과 다른 방향이라 “한지민이 보여줄 수 있는 점이 명확하게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어렵지만 조제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점이 어려울 것 같았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를 본 지 꽤 오래됐는데 일부러 다시 찾아보지는 않았다. 김종관 감독이 그려낸, 그리고 또 나만의 온전한 조제를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아마 감독님도 장면마다 원작과의 차별성을 염두에 뒀더라면 리메이크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어려울거라 예상했던 점은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하는 캐릭터로서의 조제, 자신의 감정을 말로 드러내지 않거나 표현의 폭이 넓지 않은, 잔잔하면서도 색이 뚜렷하지 않고 또 낯설지만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조제만의 색을 과연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점이었다. 극중 조제를 대하는 영석(남주혁)과 관객 모두 조제가 어떤 사람인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때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시나리오상에서는 조제의 감정 변화를 짚어낼 수 있는 장면이나 대사 등이 명확하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영화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인물의 눈빛이나 표정, 영화의 온도, 기운으로 전해지는 정서적 울림이 많은 영화다. 김종관 감독만의 색깔이기도 한 것 같다.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김종관 감독은 <조제>의 공간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소개했다. 조제의 공간에 들어섰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작업 전에는 감독님이 보여준 레퍼런스 이미지가 있었다. 실제 촬영장에 들어서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책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찌 보면 책은 조제에게 세상의 빛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뛰놀 수 있는 공간이다. 화려한 것은 아니고 보다 풍부하게 꾸며진 것 같다.


-예고편에 담긴 장면 가운데는 조제가 영석을 퉁명스럽게 대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러면서 아주 연한 미소를 짓기도 하는데 그 장면들을 보고 나니 한지민의 조제가 어떤 톤 앤드 매너로 말을 내뱉는 캐릭터일까 궁금해진다. 영화를 보게 될 관객은 아마 원작 속 이케와키 지즈루가 보여줬던 사투리 연기의 톤과 비교하며 보게 될 텐데.
=조제가 어떤 표정과 톤으로 대사를 뱉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원하는 분명한 지향점이 있었다. 지금 이 대화만으로 조제답다, 라는 걸 이해시키기가 참 어려운데 예고편에 등장하는 “독이라도 타놨을까봐?”라는 대사를 할 때를 예로 들면, 조제만의 묘한 유머가 영화에 분명히 담겨 있다.



-조제와 영석이 우연히 만나 서로의 마음에 동요가 일게 되고, 또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변화하게 될 텐데 연기하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나.
=아마 관객은 그런 순간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영화를 보게 될 거다. (웃음) 물론 연기하는 내게는 나름대로 변화의 순간들이 있었다. <조제>는 영석의 따뜻한 마음씨로부터 관계가 시작되는 영화인데 극중 조제는 대사보다는 여러 상황과 표정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보여준다. 조제와 영석의 동선 변화로도 그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중에, 옆에 없어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영화에서도 그런 영석의 존재감을 깨닫게 되는 조제의 순간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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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이 제작보고회 직후 개인 SNS에 조제로 분한 지민씨의 사진을 한장 올렸다. 공식 포스터에 사용된 컷인데, 그는 그 신을 촬영할 때 “우리가 만나게 될 조제를 처음으로 마주한 기분이 든 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내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조제의 사진”이란 댓글을 남겼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직은 말할 수 없는 어떤 장소에 영석과 조제가 도착한 장면인데 첫 촬영날 찍었다. 감독님이 직접 찍은 그 사진을 보면서 앞으로 조제가 겪게 될 순간에는 바로 이 얼굴을 하고 있겠구나 싶더라. 설정상 조제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진에서 보여준 눈빛만큼은 어디든 멀리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일종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진이라고 감독님이 말씀해주셨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조제의 대사 중 “때로는 너랑 가장 먼 곳을 가고 싶었어. 그러면서도 갇혀 있고 싶었어”라는 말에서도 느껴지듯, 조제는 어떤 관계가 시작되기 전부터 결말을 내다볼 줄 아는,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 장면을 연기할 때 나는 영석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는 조제의 단단함과 동시에 외로움도 같이 느꼈다. 아마 조제는 다시 외롭고 쓸쓸해지더라도 그 이전만큼 두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외롭지만 두렵지 않은 조제의 마음이 그 장면에 담겨 있다.


-<조제>의 조제는 위스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영석과 위스키에 대해 나누는 대화도 있을 만큼, 술은 조제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매개다. 그런데 <봄밤>의 정인이 첫 등장할 때 대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나.
=물론 기억한다. (웃음) “소확행이 별거야? 퇴근하고 친구와 한잔.”


-<눈이 부시게>에서는 혜자가 좋아하는 선배 앞에서 술에 취해 고백하다가 구토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위스키를 잘 아는 조제라는 설정이 배우의 전작 속 연기를 염두에 둔 감독의 의도인가 싶더라.
=많이 알려져서 이제는 말할 수밖에 없겠다. (웃음) 저는 술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설정은 전적으로 김종관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현장에서 직접 위스키와 관련된 대사를 공들여 바꾸실 때도 있었다. 책과 위스키, 감독님의 평소 모습에서 조제다운 면이 보일 때가 있다.


-최근 출연작인 <아는 와이프> <봄밤> 그리고 <조제>는 사랑, 결혼, 나아가 관계 맺음에 관해서 연관 지어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작품들이다. 배우가 작품을 선택할 때 이런 연관성, 혹은 현재의 고민을 반영한 결과일까 궁금하다.
=<봄밤>을 선택한 이유는, 연인 관계에서 다음 스텝을 고민하게 될 때 정 때문에 결혼을 택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조제>는 판타지, 멜로영화가 전해주는 재미도 있지만 조제와 영석의 첨가물 없는 민낯 같은 관계, 현실과 닿아 있는 점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데 단 한 가지 이유만 있을까. 감독님도 그런 이유에 대한 명확한 표현을 영화에 담고 싶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관객 입장에서는 친절하지 않은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이별은 나 자신조차 속일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 순간을 명확하게 그려내지 않는 것이 원작과의 차이일 수 있다. 원작 영화에서는 이별하는 과정이 세밀했다면 <조제>는 사랑하는 과정에 더 중점을 둔 것 같다.


-<조제>는 조제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조제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취향으로 이뤄진 영화이기도 하다. 그를 연기한 배우 한지민은 평소 무엇을 주로 바라보고 아름답다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첫째는 자연, 둘째는 사람. 계절이 다가오고 멀어지는 풍경을 떨어져서 바라볼 때도 좋지만 가까이 들여다보고 감동받을 때가 많다. ‘어떻게 이파리에 저렇게 얇은 줄기들이 있지? 꽂은 어떻게 색을 내고 향기를 풍기지?’라며 자연에서 받는 에너지가 크다. 또 예전에는 슬퍼서 울었는데 요새는 따뜻해서 울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전해주는 감정을 통해 내가 치유받는다. 내 옆 사람들이 곧 나의 세계가 아닐까.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오면서 맡았던 작품의 캐릭터들이 전해주는 메시지, 또는 배우가 직접 사회 활동을 하면서 대중에게 전하는 한지민의 이미지는 건강함이다. 앞으로도 작품을 선택할 때 현실을 잘 극복하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는 캐릭터를 선택하게 될까.
=어떤 작품이든 좋은 영향을 끼쳐야겠다고 다짐하듯 고르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내 고민과 관객의 요구가 맞아떨어지는 경우들이 있었을 뿐이다. <국가부도의 날>의 특별출연은 김혜수 선배와 꼭 한번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고, <허스토리>는 친한 후배인 이설 배우의 출연작이어서 감독님에게 인사드린 게 인연이 되어 우정출연하게 된 식이다. 그때 마침 내가 ‘기억의 터’ 홍보대사를 하고 있기도 했고. <미쓰백>도 <조제>도 화장을 잘 안 하고 나온 경우인데, 관객에게 나의 새로운 면을 한 장면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만들었다. 다음 작품도 그렇게 고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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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귀하고 특별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던 <보건교사 안은영>의 홍인표 한문 선생님처럼 실제 남주혁에게서도 특별한 기운이 느껴질지 궁금했다. 혹은 드라마 <스타트업>의 남도산처럼 공대생의 사고 회로를 지닌 엉뚱하고 멋있는 청춘의 초상일지, 혹은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이준하처럼 세상의 밑바닥을 경험하고도 온기를 간직한 청년에 가까울지 궁금했다. 

의외로 남주혁은 무색무취했다. 중학생 때 농구선수로 뛴 이력이나 모델로 활동하다 배우가 된 이력에서 짐작하게 되는 에너지와 화려함은 어디다 숨겨놓은 걸까 싶을 만큼 조용히 환경에 녹아들었다. 그 무색무취함과 조화로움이야말로 배우 남주혁의 치명적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제>에선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차례로 통과하는 대학생 영석이 되어 조제(한지민)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반짝 스타가 아닌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남주혁이 또 한번 진심을 다해 몰입한 작품이다.


-지난겨울, 겨울이 주 배경인 <조제>를 찍었다. 겨울을 좋아하나.
=추위를 느끼며 일할 때의 겨울 말고 ‘쉬는’ 겨울을 좋아한다.


-촬영 순으로 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영화 <조제> <리멤버>, 드라마 <스타트업>까지 작품과 작품 사이 쉬는 시간 없이 쭉 달려왔다. 대본을 숙지할 시간도 빠듯했을 것 같은데.
=막상 닥치니 하게 되더라. 도저히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도전하지 않았을 거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품에 들어가는 건 나 역시 원치 않는다. 이를테면 <스타트업>에서의 뜨개질도 <보건교사 안은영> 때 매듭 만들기를 해서인지 금방 손에 익더라. 다만 짧은 기간에 많은 작품을 해서 혹시 내가 연기한 인물들이 비슷해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컸다.


-<조제>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엔 어려서 영화를 보지 못했을 테고, 언제 처음 원작을 접했나.
=영화가 개봉했던 게 2004년이니까, 그때 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성인이 되고서야 영화를 알게 됐는데, 늘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막상 보지는 못했다. 그러다 2~3년 전쯤 영화를 본 것으로 기억한다.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기대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청춘물에 잘 어울리는 20대 남자배우가 아니라, 연기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컸다. 멋진 캐릭터만 맡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때 김종관 감독의 <조제>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그동안은 이런 작품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조제>는 인물의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작품이었고, 그런 연기를 너무나 해보고 싶었다. 또 김종관 감독님이 만드는 <조제>는 어떨까 기대됐다. <폴라로이드 작동법>부터 <페르소나>까지, 감독님의 영화는 물론이고 뮤직비디오도 챙겨 봤다. 감독님이 연출하는 영상에 들어가보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읽고선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혹은 평범하지 않은데 평범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쓰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주인공 츠네오와 <조제>에서 남주혁이 연기한 영석은 어떻게 같고 다를지 궁금하다. 영화 출연 당시 쓰마부키 사토시는 훈훈한 소년의 이미지로 사랑받는 일본의 라이징 스타였고, 그런 점에서 쓰마부키 사토시와 남주혁 사이 연결고리도 있어 보인다.
=쓰마부키 사토시,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이상일 감독의 <분노>를 보고도 다시 한번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조제> 촬영을 마치고 실제로 일본에서 쓰마부키사토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올해 2월쯤 이누도 잇신 감독과 쓰마부키 사토시를 만나기로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만나지 못했다. 영석을 연기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고, 그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 연기했는지 직접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할 땐 최대한 쓰마부키 사토시를 참고하거나 비교하지 않으려 했다. 아직 연기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쓰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츠네오와 내가 맡은 영석을 비교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면, 분명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영석을 만들지 못하고 따라갔을 것 같다. 어설프게 흉내내고 싶지 않았고, 나만의 영석을 만들고 싶었다.


-영석은 사랑과 욕망에 솔직한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했나.
=영석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그러다 우연히 조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잘해주고 싶고 더 큰 사랑을 주고 싶고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 제 앞길만 보고 달려가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조제는 무엇보다도 영석이 옆에 있어주길 바란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데 영석은 내가 성장해야, 떳떳해져야, 당당해져야 이 친구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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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현실의 무게 앞에서 서서히 부식되고 마모되는 사랑 이야기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비겁하고 부끄러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을 것 같다.
=영석이 조제에게 “옆에 있을게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대사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말은 영석의 진심이었지만 결국 가슴 아픈 말이 되고 만다. 진심으로 했던 사랑의 고백이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점점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자신이 뱉은 말이 기억나지 않기도 하고 지키지 못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연기했다. 정말 몰입했고, 그래서 괴롭고 힘들었다. 연기를 할 땐 늘 진심이다. 이 인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싶다. 그런데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도 많다. 그럴 땐 그냥 맡겨 버린다. 현장에서 느끼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주어진 조각을 맞추다 보면 퍼즐이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목소리나 발음, 발성이 듣기에 편안하다.
=노력의 결과다. 스무살 초반까지만 해도 목소리가 가볍고 떠 있었다.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목소리가 주는 힘이 크다는 걸 알게 됐고 긴 시간 꾸준히 갈고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나 발성법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저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만, 오래오래 이 일을 잘하고 싶기 때문에 계속 노력하고 있다.


-한지민 배우뿐 아니라 <보건교사 안은영>의 정유미,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 <안시성>의 조인성 등 특히 연상의 배우들과 케미스트리가 좋다. 혼자 돋보여야겠다는 욕심이 보이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여유가 눈에 띈다.
=선배님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신인인 나를 그저 좋아해주시고 챙겨주시고 칭찬해주셨다. 김혜자 선생님도 부족한 내게 늘 ‘잘한다, 잘한다’ 해주셨는데, 그럴 때면 그 마음에 보답하는 후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김혜자 선생님과 연기하는 게 어떻게 어렵지 않을 수 있겠나. 처음 <눈이 부시게> 대본 리딩할 땐 심장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아니 찢어졌다. (웃음) ‘에이 모르겠다’ 하고 리딩을 마쳤는데, 현장에선 무조건 캐릭터에 몰입했다. 상황에 몰입을 잘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인물 대 인물로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잘했다기보다 주변에서 흔들리지 않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면 나 역시 빛이 난다. 한마음으로 작품을 하면 모두가 빛이 나는 작품이 나온다는 걸 최근에 느꼈다.


-팀워크나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학생 때 농구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인가.
=팀 운동을 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마인드가 생긴 것 같다. 농구할 때도, 혼자서 튀려고 패스해야 할 때 패스 안 하고 드리블하면 팀 전체가 힘들어진다. 득점, 패스, 어시스트, 리바운드 등 자기 기록을 위해 욕심내는 사람이 있으면 힘들다. 경기를 이겨도 기분이 찝찝하다. 농구할 때 감독님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얘기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였다.


-농구선수와 모델 일을 하며 키 큰 또래 집단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정작 스스로는 큰 키나 외모 때문에 특별히 주목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운동할 땐 평범한 키였다. 농구부 고등학생 형들은 195cm쯤 됐으니까, 늘 올려다보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내가 작게 느껴졌다. 그때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사람이 작다. 마음속 그릇은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서도 작다. 고무 그릇인 것 같다. (웃음) 고무로 만든 그릇.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젊은 나이에 인기를 얻으면 유혹에 빠지기도 쉽고 적당히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들텐데,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건강한 기운이 있다.
=이 일을 하기 전까지 힘든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다. 만약 내게 건강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더 열심히 성장하려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건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두고 모델 일을 시작했고, 모델을 하다가 우연히 연기도 하게 됐다. 연기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은 배우라는 직업이 너무나 소중하다. 연기를 시작하면서 10년 뒤의 목표를 세웠다. 10년 뒤엔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배우, 남주혁이 아닌 작품 속 캐릭터로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까지 10년을 잡았고, 지금은 그 과정을 묵묵히 통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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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스퀘어 조제) 미공개 본편 삭제 영상 2 20.12.23 253
29 스퀘어 조제) [씨네21] 김종관 감독 인터뷰 1 20.12.15 280
28 스퀘어 조제) 남주혁 인터뷰 20.12.07 475
27 스퀘어 조제) 씨네21 별점 1 20.12.04 529
26 스퀘어 조제) 시그니처 아트카드 20.12.04 218
» 스퀘어 조제) '씨네21' 한지민 & 남주혁 인터뷰 20.12.03 222
24 스퀘어 조제) 한지민 인터뷰 20.12.03 218
23 스퀘어 조제) 김종관 감독 인터뷰 20.12.03 247
22 스퀘어 조제) 아시아 개봉일 20.12.02 152
21 스퀘어 조제) 씨네 21 1283호 표지, 한지민 남주혁 1 20.11.27 288
20 스퀘어 조제) 감성 프로덕션 스틸컷 20.11.25 292
19 스퀘어 조제) '조제의 세계' 제작 다이어리 영상 20.11.24 200
18 스퀘어 조제) 대만 포스터 1 20.11.19 320
17 스퀘어 조제) 보도스틸 10종 20.11.19 198
16 스퀘어 조제) 오늘자 제작보고회 20.11.17 226
15 스퀘어 조제) 2차 포스터 & 2차 예고편 20.11.16 327
14 스퀘어 조제) 캐릭터 포스터 공개 및 개봉일 확정 20.11.13 182
13 스퀘어 조제) 새 포스터 20.11.12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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