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 씨는 조선인으로서 일본인 아내를 맞이한 선구자였으며, 부부가 한결같이 일본 풍속을 숭상하여 집안에서는 온통 일본어만 사용했습니다. 조선인과의 교제를 피하고 일찍이 조선 옷(한복)을 입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집안은 '내선융화(일본과 조선의 동화)'의 표본으로 당시 사회(친일 세력 및 일제 지배층)의 칭송을 받았다 합니다.
무명의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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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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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엄청난 업적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