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
Q. 강원의 올 시즌 전반기를 평가한다면.
감독으로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감독으로 처음 ACLE를 경험했다. 내가 코치 생활을 11년 이상 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경험한 아시아 대회이기도 했다. 경험이란 게 중요하다는 걸 또 느꼈다. 우리가 ACLE 일정으로 시즌 시작이 빨랐다. 동계 훈련 계획을 짜는 것부터 과거와 달랐다. 올해 초 호주, 일본 원정 등이 이어지면서 배운 게 많다.
Q. 예를 들면?
호주는 이동 거리가 상당히 길다. 계절도 한국과 다르다. ACLE를 소화하던 중 올 시즌 K리그1을 시작했다. 한국은 굉장히 추운 시기였다. 일정이 과거와 달랐지만, 동계 계획엔 큰 변화를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선수들 컨디션 관리가 쉽지 않았다. 2주 먼저 시작하는 게 진짜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내가 그 2주를 조금 간과했던 것 같다. ACLE와 리그 병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알게 됐다.
Q. 감독으로서 배우고 느낀 게 정말 많은 듯 보인다.
ACLE와 K리그1을 병행하려면 선수단 컨디션 관리에 훨씬 더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ACLE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일정을 보면, 울산 HD와의 리그 홈 개막전 후 마치다 젤비아와의 ACLE 16강 1, 2차전으로 이어졌다. 준비 과정에서 무언가 꼬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과가 좋지 않았고, 그 흐름이 리그 초반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Q. 그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나.
경기력은 시즌 초에도 나쁘지 않았다. ‘골 결정력만 보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린 올 시즌 리그 여섯 번째 경기인 광주 FC전에서 첫 승리를 거뒀다. 광주전을 준비하면서 전술을 바꿨다.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우리의 방향성을 수정한 거다. 광주전을 계기로 전반기를 기분 좋게 마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시즌 중 큰 틀의 변화를 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경험의 힘이 아닌가 싶다. 나는 코치 생활을 오래 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좋은 결과는 물론 나쁜 결과까지도 예상한다. 선수들에게 그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설명했다. ACLE를 통해 축구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도 느꼈다. 개인적으로 빌드업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상대를 끌어내서 조금씩 균열을 내는 형태인데 요즘 트렌드를 보면 빠른 공·수 전환이 더욱 중요해졌다.
Q. 강원 축구를 보면 알 수 있는 듯하다.
빌드업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공격 전개 시의 위치, 때론 직선적인 패스와 침투 등이 필요하다. 어떻게 접근해야 상대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내가 지도자 생활을 2014년에 시작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큰 영감을 준 감독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맨체스터 시티와 작별한 펩 과르디올라다.
Q. 과르디올라 축구에 특히 더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가 있을까.
과르디올라 감독은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시티를 거치면서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제시해 왔다. 한 감독이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을 유심히 지켜보고 연구하면서 내 축구 철학의 기반을 쌓은 것 같다. 나뿐 아니라 많은 젊은 감독이 유럽의 유능한 지도자를 보면서 영감을 얻고 큰 노력을 기울인다. 다만 고민해야 할 지점은 있다.
Q. 어떤 부분인가.
세계 어떤 지도자든 과르디올라 감독과 같은 축구를 구현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모두가 과르디올라의 축구를 구현할 순 없다. 세계 축구 트렌드와 우리 팀의 장·단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올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민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들을 더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Q. 변화의 시작이었던 광주전에서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건 무엇인가.
핵심은 전방 압박과 높은 에너지 레벨이었다.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강하게 누르고자 했다. 스프린트와 같은 고강도 움직임도 많이 나오길 바랐다. 우리의 변화가 통하면서 상대가 쉽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본다.
Q.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기존 철학을 어찌 보면 버린 것 아닌가. 시즌 중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와 ACLE 16강에서 맞붙었던 마치다가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ACLE와 K리그1을 치르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축구를 과연 100% 이뤄낼 수 있느냐’는 거였다. 짧고 빠른 패스를 기반으로 상대를 완전히 내려앉히고, 기술적으로 공간을 만들어내 승리까지 쟁취할 수 있을까 나에게 먼저 물었다.
Q. 어떤 답이 나왔나.
냉정하게 지난 경기들을 봤다. 거기에 답이 있었다. 점유율이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승점 3점을 가져오지 못했다. 축구는 골이 나와야 이길 수 있다. 볼 점유율이 90%를 넘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웃을 수 없다. 승점 3점을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그렇게 자그마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간의 경험과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기반으로 새로운 답을 도출한 거다.
Q. 시즌 중 큰 틀의 변화는 선수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선수들을 이해시키고 그 축구를 이행하는 건 또 다른 능력인 것 같은데.
감독의 역량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우린 우리 축구에 대한 믿음이 컸다. 빌드업을 통해 상대를 어렵게 만드는 경기 운영 방식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던 거다. 다만 나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이 ‘골만 들어가면 될 것’이란 답만 생각했다. 질문을 바꿨다. ‘골을 넣기 위해 이 방식이 최선인가’란 것이었다.
Q. 거기에 대한 답은 무엇이었나.
‘아니’란 답이었다. 파리 생제르맹이나 아스널, 맨시티 등 세계적인 팀의 득점과 실점 상황을 유심히 봤다. 답은 빠른 공·수 전환, 트랜지션 상황에 있었다. 세계적인 팀들도 볼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이기진 못한다. 높은 확률로 승부를 가르는 건 상대 볼을 빼앗았을 때 얼마나 빠르게 상대 진영에 도달해 슈팅까지 가져가느냐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키느냐’에 초점을 맞추면 답이 보인다. 트랜지션이다.
Q.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굉장히 구체적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감독이다.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다. 무언가를 제시만 해선 안 된다. 방향을 제시했으면, 왜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그게 감독의 능력이고 역할이다. 트랜지션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리듬으로 끌고 갈 것인지, 어떻게 해야 공격으로 더 빠르게 나아갈 것인지, 볼을 가지고 있을 땐 어떤 공간을 공략할 것인지 등을 세부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했다. 선수들에게 세계적인 팀들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왜 시즌 중 전술을 수정하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해시켰다.
(생략)
Q. 정경호 감독의 꿈은 무엇인가.
거창하지 않다. 이 감독직을 유지하는 거다. 나 진짜 힘들게 이 자리까지 왔다(웃음). 강원 감독을 계속 맡고 있다는 건 그래도 잘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국가대표팀 감독이나 유럽 도전을 꿈꾸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내 삶을 이어가고 싶다.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하루하루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정도면 행복한 삶 아닌가.
Q. 감독이 선수보다 재밌나.
선수가 편하다. 선수는 나만 잘하면 된다. 내 몸 관리 잘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신경을 나에게만 쏟는 거다. 감독은 신경 써야 할 범위가 넓다. 코칭스태프, 선수들 관리해야 하고, 프런트와의 소통도 이어가야 한다. 능력도 출중해야 한다. 과거엔 전술형 감독, 매니지먼트형 감독 등으로 유형을 나눴다. 지금은 다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로 가고 있다.
Q. 그렇게 바뀌는 이유가 있을까.
선수가 감독을 평가하는 시대가 왔다. 선수들에게 신뢰를 전하려면 다 잘해야 한다. 전술이면 전술, 매니지먼트면 매니지먼트 모든 능력을 고루 보여줘야 선수들이 믿고 따른다. 선수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줘야 감독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겠나. 선수 성향, 그에 맞는 전술과 조합, 선수 개개인의 성장을 끌어내는 각기 다른 동기부여 등 해야 할 게 많다. 그걸 해내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랫동안 할 수 있다. 내가 겸손함을 잃지 않고 매일 노력하는 이유다.
(생략)
Q. 축구가 여전히 재밌나.
축구는 정말 어렵다. ‘재밌다’고 표현할 순 없다. 그건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다. ‘충분히 준비된 것 같다’고 느낄 때면 변함없이 부족한 점이 발견된다.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가고 있는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도 온다. 항상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이 항상 옳다는 법도 없다. 경험이 더 쌓인 10년 뒤쯤엔 그래도 좀 재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웃음). 축구는 정말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다. 정답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이 길을 나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니까 하는 것 아니겠나. 늘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나아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