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할머니 1편 -상
안녕 하십니까?
처음 인사 드립니다
.
다음 웹툰인 어우내를 무지 좋아 하는 초보 글쓴이 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작가님 이름 빌려 백두부좋아로 했습니다. 방끗!
괴담 이라고 표시 해야하나 미스테리라고 표시 해야 하나 한참 고민 하다가,
제 경험담인 관계로 경험으로 표시 했습니다.
안 믿으시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만 제 경험담이 틀림 없으니 전 떳떳 합니다. 흐~
일단 배경 설명 좀 하고 얘길 시작 해야겠지요?
제 어린 시절 얘기 입니다.
글로 쓸 경험담이 몇편이나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한 10편쯤은 될거 같은데.....
더 될지도 모자랄지도 모르겠지만
글이 막혀 도저히 올릴 수준이 못된다 생각 되어지는거 이외엔 될수 있으면
생각 나는 에피소드를 졸필이나마 최대한 올리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대략 초등학교 5학년때 까지의 일이고
6학년때 집이 다 서울로 이사가기 전까지,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이 되시는 상주 할머니가 돌아 가시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주가 될것이고,
당신이 돌아 가신 후의 이야기가 나오면 글쓴이가 글이 다 떨어져 가는구나!! 하고 생각 해 주시면 됩니다.
마지막은 할머니가 돌아가신후 겪는 얘기까지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하는 처지라 매일 올리거나 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다보면 갑자기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건데
그럼 쓴데 까지 한편을 두번 정도에 나누어 올려도 될런지요?
글 중간에 끊어지면 저도 짜증 나거든요.
싫으시면 저장 해두고 완전히 한편 다 써서 완결지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같은 졸필에 뭔 그런 호사를 누리겠습니까만,
현기증 난단 말이예요나 글 내 놓아라 그러심 안됩니다. 데헷! 데헷!!
얘기는 지금으로 부터 거의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이제 30초반이니 제가 기억하는 거의 최초의 일입니다.
그때 저희 집은 서울에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인해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가구 공장과 기타 재산, 그리고 우리 가족의 유일한 부동산 이었던 집까지
팔아 빚 잔치를 하고는 아버지께선 남의 공장에 공장장으로 취직을 하셨고
방 한칸 마련할 돈 조차 없었던 어머니와 저와 두살 터울인 제 동생은
경북 상주에 있던 외가집에 얹혀 살수 밖엔 없었습니다.
아버진 명절이나 연휴때나 간혹 시간을 내시어 우리 가족을 보러 오셨고
그 외엔 공장에 딸린 작은 집에서 다른 공장 식구들과 합숙을 하시며 생활 하셨죠.
집에 오셔서도 장인 장모님인 외 할아버지, 외 할머니께 죄송 하시여
고개도 제대로 못들곤 하루 겨우 묵으시곤 얼마간의 돈이 든 봉투를
할머니와 어머니께 쥐어 드리곤 도망치듯 떠나셨죠.
아버지가 떠나시면 외 할아버진 애궂은 담배만 태우셨고,
외 할머니의 긴 한숨이어졌고.
어머닌 우리가 볼새라 서둘러 부엌으로 가셔선
부뚜막 구석에 쭈구리고 앉으셔서 소리 없이 우셨고...
.
전,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께 말 걸면 안되겠구나 하고 마루에 나와 시무룩하게 앉아
괜히 발로 맨땅을 차며 앉아 있었어요.
그럼 항상 어찌 아셨는지 오늘부터 해 드릴 얘기의 주인공 이신 상주 할머니가 오셔선
대문에 서서 소리 안내시고 손짓으로 제게 어서 나오라는 동작을 취하셨고,
시무룩하게 고개 숙이고 나오는 제 손을 꼭 잡으시곤 바로 옆집인 할머니네 집으로
데리고 가셔선 떡이며 약과며 사탕이나 홍시등의 주전부리를 주셨고,
전 맛난 간식을 먹으며 애답게 금방 기분이 좋아져 기운을 차리곤 했습니다.
상주 할머니는 저완 아무런 혈연이 없는 분 이십니다.
그러나 제겐 혈연 이상인 분 이시기도 하시죠.
할머니 살아 생전에 절 보시곤 할머니께선 자주 너와 난 아주 많은 인연으로
얽혀 있는 사이라고 종종 얘길 하셨는데,
의미를 여쭈면 항상 뜻 모를 미소로만 화답을 하셨답니다.
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우리 가족이 상주 외가댁에 더부살이를 하려고 용달 트럭에 간단한 짐을 싣고
가던 첫날 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세간살이를 아버지가 다니시는 공장 창고 한 귀퉁이를 빌려 쌓아 놓고는
정말 필요한 단촐한 짐만 가지곤 외가집으로 향했습니다.
외가집에 몇번 가보긴 했겠지만,
그땐 저도 3세 이전의 유아기 인지라 딱히 기억 나는건 없고,
그때 기억이 외가집에 관한 최초의 기억 이었습니다.
나름 변두리긴 하지만 서울에 살던 나는 처음 가보는 시골 산길이 신기 하기만 했죠.
지금은 안가본지 오래 됩니다.
외 조부모님도 두분 다 돌아 가신지 오래 되었고,
상주 할머니는 외 할머니 보다도 더 일찍 돌아 가셨고
딱히 다른 친척도 없는 그곳은 인젠 제겐 어린 시절 추억이나 좀 있는 외지 이니까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 어린 시절의 상주는 정말 산간 오지였습니다.
산골 깊이 있는 도시였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산속에 도시가 있단것도 신기할 정도로요.
그나마 외가집은 그 산골 도시인 상주서도 도심이 아닌
한참을 더 들어가던 두메산골 마을 이었습니다.
그렇게 외가집에 도착을 하였고,
짐을 내리곤 정리는 엄마에게 맡기고는
꼬마 좋아는 앞으로 나의 놀터가 될 동네 탐사에 나섰지요.
마을 여기 저기를 구경하고 만나는 어른 마다 첨 보는 아이를 보시곤 제 정체를 물으셨고
전 열심히 마을 어른들께 재롱을 떨면서 제 피알을 했지요.
제 생존 본능이 여기서 이쁨 받으며 살려면 어른들께 잘 보여야 한단걸 알려 주더군요.
마을에 하나 있던 정말 조그만 구멍가게(점방이라고 불렀는데......)앞에
막걸리를 마시고 계시던 마을 어른 분들이
이것 저것 물으시고는 귀엽다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제 소중이도 한번 만지시곤 장군감이라고 웃기도 하셨는데.......
요즘 같으면 징역 몇년이나 받으실라나?
그리곤,
과자 한봉지 사주셔서 먹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다 달았을 무렵,
옆집 담장으로 누군가 저를 부르는 겁니다.
바로 상주 할머니 셨습니다.
이 정도쯤 분량이 더 남았는데 할 일이 있어 이 까지만 올립니다.
보기 정 불편 하시면 다음 편 부터는 완결 지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상주할머니 1편 - 하
부르는 소리에 소리 나는 방향을 쳐다보니 정말 무섭게 생기신 할머니 한분이
얕은 담 넘어로 저를 내려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처음 상주 할머니를 본 소감은 한 마디로 무섭다 였지요.
어린 기억에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신 할머니 한분이
표정 하나 없는 잔뜩 주름 진 무서운 얼굴로 절 내려다 보고 계셨습니다.
전 얼어서 그 자리에 굳었죠.
잠시 절 쳐다 보시던 할머니는 언제 내가 그리 무서운 표정을 지었냐는 듯 주름진 얼굴 한가득 환하게
웃음을 머금으시곤,
제게 니가 옆집 손자 좋아구나? 하셨습니다.
얼결에 인사를 하는 제게 할머니는 니 얘기 너희 할머니 한테 많이 들었다시며
시골로 와서 불편하고 고생이 많겠구나 하시면서 심심하면 맛난거 많이 줄테니 할미 한테
자주 놀러 오라 하셨지요.
어린 마음에 보기보다 안 무서운 좋은 할머니라고 생각을 하곤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외 조부모님과 엄마랑 둘러 앉아 저녁을 먹을 때 얘길 하다가
그 할머니 얘길 했어요.
옆집 할머니 봤다고.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는데 지금은 안무섭다고 친해졌다며 아이답게 얘길했고,
외 할머니와 엄마는 살짝 놀라시며 별일이네 라고 얘길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주 할머니는 동네서도 소문난 호랑이 할머니 였죠.
저도 살면서 여러차례 목격 했지만,
몇 안되는 동네 꼬마들은 할머니집을 빙 둘러 피해가기 바빴고,
할머니의 호통에 눈물,콧물 쏙 뺀 이가 하나 둘이 아니였습니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감히 할머니께 맞서는 이가 없었지요.
조금이라도 이치에 거슬리거나 불의를 보시면 애 어른,남녀노소 가릴거 없이 거침없이 호통이 이어졌고,
그 동네에서 상주 할머니랑 잘 지내시는 분은 우리 외 할머니 뿐이셨답니다.
상주 할머니나 우리 외조부모님도 다 그 동네 토박이가 아니셨어요.
상주 시내에 제법 사셨던 외가 집은 어머니의 차이 많이 지는 큰 오빠인 큰 외삼촌이 결혼 하실 때
집을 파시고는 그 돈으로 큰 외삼촌 집을 사주셨고,
큰 도시에 살던 외삼촌이 같이 사시자 했으나 고향 땅 떠나기 싫으시다고 남은 얼마간의 돈으로
그때 사셨던 두메산골 집을 매입 하시고 얼마간의 땅을 사시어 자급 자족 하며 사셨어요.
상주 할머니는 외가집과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그 마을로 흘러 들어 오셔선 외가집 옆집을 사시어
자리를 잡으신거죠.
그게 우리 엄마가 여중생 일때 였다고 하더군요.
상주 할머니는 포항인가 어느 바닷가가 고향 이시라고 하셨는데
어찌 다 버리고 상주까지 흘러 들어 오신건지 그 자세한 내막은 몰라요.
다만 할머니는 단신으로 그 마을로 들어 오셔서는 좀 젊으셨을 땐 농사도 좀 지으시곤 하셨다는데
제가 갔던 무렵엔 나이가 많이 드셔서 농사는 남에게 붙이시고 할머닌 겨우 조그만 텃밭 정도만 가꾸셨죠.
그 정도만 해도 혼자 먹고 사시긴 충분 하셨겠지요.
상주 할머니께도 가족이 있다곤 얘길 들었는데 제가 그곳에
사는 동안 누군가 찾아 온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간혹 중년 부인들이 찾아 오곤 하였었는데 그 분들이 무녀란건 나중에 알게 되었죠.
나중에 어머니께 커서 듣기론 자식들도 있으셨는데 할머니 성격이 너무 강하시어
사사건건 자식들과 마찰을 일으켜서 거의 의절하고 사는 거라더군요.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바로 옆집 이웃 사촌이 되신 외 할머니랑 상주 할머니는 곧 베프가 되셨어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시골이 좀 남을 꺼려 하잖아요?
이사를 오신 두분은 마을의 다른 어른들과 아직 서먹 서먹 하시고 특히,
상주 할머니 성격상 남과 친해지기 쉽지 않르셨을꺼니 두분이 더 의지가 되셨겠죠.
그렇게 이어진 인연은 상주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속되고
돌아 가시고도 한참동안 제게 특별한 인연이 되어 주셨죠.
그 마을로 처음 이사간게 우리 어머니 중학생때 였다던데 거기서 학교 다니시려면 정말 고생 하셨을 듯.
저희 어머니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상주를 떠나실 때까지 상주 할머니께 엄청 야단 많이 맞으셨다며
간혹 추억에 잠기실땐 그 호랑이 아줌마....하시며 치를 떠시더군요. 흐~~~
그래도 할머니가 무척 든든하고 고마웠다고 해요.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 하실때 까지 통학을 하셨는데,
처녀 티가 완연해진 고등학생이 되시고 나선 일부러 일을 만드셔서
느낌이 좋치 않으신 날엔 어김없이 어머니를 데리러
학교까지 찾아 오셨답니다.
그럼 그날은 어김 없이 안 좋은 일이 생길뻔한 날이었다고 해요.
시골이고 어두운 곳도 많고 그러다보니 꼭 그런 곳에 서식하는 동네 양아치나 불량배들 있지요?
괜히 여자들 지나가면 시비 걸고 그러는,
우리 어머니도 그런 놈들에게 시비 걸릴 뻔한 적이 몇번 있었는데
할머니 호통 한번에 고양이 앞에 쥐처럼 꽁무니를 뺐다고 합니다.
상주 할머니는 우리 외 할머니 보다 한 다섯 살쯤 위였다고 하시는데
두분 얘기 하는걸 들으면 아주 친한 동무 였어요.
상주 할머니가 돌아 가신후 저희 외 할머니도 몇해후에 돌아 가셨는데 항상 그리워 하시더군요.
그렇게 그 마을에서 외가집에서 살게 되고는 이상하게 할머니와 친하게 되었어요.
물론,
제가 사람을 안 가리고 잘 사귀기도 하지만 할머니께서 절 엄청 챙기고 귀여워 해주셨거든요.
항상 할머니 집엔 뭔가 맛난 간식이 있었고,
할머니는 그걸 챙겨 주시고 제가 먹는 걸 참 기뻐 하셨어요.
전 할머니가 제게 화 내시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고
항상 얼굴 가득 주름진 함박웃음만 기억이 나는군요.
읽으시는 분은 제가 어린애라 그런거 아니냐 하실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였어요.
동네 애들에게 대하는 것도 그러셨고,
제 동생은 저랑 2살 터울인 그땐 더 귀여웠을 아이 인데도 별로 예뻐 하시질 않으셨죠.
그냥 소 닭 보듯 데면데면.
그렇게 몇 개월 친분을 쌓고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할머니랑 같이 다니게 됩니다.
마실이라고 하나요?
어디 나들이 가시는 걸 무척 즐기셨던 할머니는 시내 장에 가실 때 본격적으로 절 데리고 다니시기 시작 했어요.
그렇게 장 구경을 간날 공교롭게도 장 한 구석에선 꾕가리 소리가 막 나고 굿이 벌어지고 있었죠.
아마 어떤 집에서 굿을 했나봐요.
어린 전 첨 보는 구경거리에 신이나서 구경 가자며 할머니 손을 막 잡아 끌었는데
할머니가 단호한 목소리로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심통이난 저는 입에 바람을 잔득 집어 넣고는 왜 안되느냐고 했는데
할머니가 그러시더군요.
할머니가 거기가면 저 사람 다친다고요
.
그때 한창 무당이 신명이 올라 시퍼렇게 날이 선 큰 칼위에 있었거든요.
그게 작두 타는거란건 나중에 커서 알게 되었지만.
그리고는 굿판 근처도 안 가시곤 제 손을 잡고 삥 둘러 가시는거였어요.
제가 시무룩 하게 따라가자 할머니는 안되어 보이셨던지
우리 좋아 배 안고프냐며 우리 맛난거 먹으러 갈까? 하시는 거였어요.
애들에게 뭐가 있어요.
그저 잼있는 구경이랑 맛난거만 있음 세상서 젤 행복한 어린이 지요.
한창 먹고 클 에너지 넘치는 아이인데 배가 고팠지만 망설였어요.
어머니께 단단히 교육 받고 나왔거든요.
할머니 돈 없으니까 장에가서 뭐 사달라고 떼쓰면 안된다고.
돈 보내주는 자식도 특별한 수입원도 없으신데 할머니가 쌈지돈이 있음 얼마나 있으셨겠어요?
제가 쭈삣쭈삣하자 할머니는 왜? 할미 돈 없을까봐 라고 하셨고 전 조심히 고갤 끄덕였어요.
할머니꺼서 웃으시더니,
제 머릴 쓰다듬어 주시며 가자, 우리 좋아 고기랑 밥 먹자!라고 하시며 제 손을 잡고는 어디로 가셨고,
전 고기라는 말에 정신이 혼미해져 쫓아갔습니다.
얼마쯤 가선 몇개의 골목을 거치곤 어느 집 대문 앞에 이르렀어요.
그곳은 다른집과는 달리 이상한 깃발도 꼽혀있고 절에서 쓰는 등도 달려 있던 그런 집이었죠.
그 집앞에 도착을 했는데 할머니가 분명 부르시지도 않고 초인종도 누르지 않았는데
안에서 사람이 급하게 나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문을 열고는 깊숙히 허리 숙여 인사를 하더군요.
전 어린 맘에도 참 신기 했어요.
어떻게 알고 나왔지? 하고요.
할머니는 인사 하는 아주머니(나중에 알고보니 그 집 주인이신 무녀 아줌마 였어요)를 본체 만체 하시곤 흡사 자기 집 들어가시듯,
너무 자연스럽게 그 집을 들어 가셨어요.
그리고는 밥 좀 차려봐. 애기 먹을거니 신경 써서 이것 저것 좀 차려오게 하시는거였죠.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랫 사람 부리듯 하셨고
아주머니는 당연 하다는 듯 공손히 대답하시고는 우릴 안방으로 안내 하셨어요.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는 정말 푸짐한 밥상이 들어왔어요.
그리고는 아주머니는 같이 밥을 드시지 않고 할머니 옆에 앉아 꼭 사극을 보면
중전 마마나 대비마마에게 하듯 반찬도 올려 드리는 등 수발을 들어 주시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전 오랜만에 보는 고기 반찬에 온통 신경이 팔려 있었어요.
집에선 매일 된장찌게나 두부찌게에 김치랑 나물 몇가지 간혹 계란 후라이 하나 먹다가
집에서 먹던 반찬의 3배는 되는거 같은, 거기다 고기도 소고기랑 닭고기까지 있는 완벽한 밥상에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죠.
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란 할머니 말씀은 콧등으로 듣고 열심히 고기를 흡입하고 있는데
간간히 할머니랑 아주머니가 도란 도란
얘길 나누시는게 들렸어요.
할머니가 그래서? 음....등 아주머니 말씀에 추임새를 넣으시며 들으시다가 뭐라고 얘길 하시는 소리가 들렸고
아주머니는 네...감사 합니다등의 말로 공손히 화답을 하시더군요.
그렇게 식사가 끝나군 할머니께서 제가 다 먹길 기다리시더니 다 먹었냐? 그럼 가자! 하시며 미련 없이 자릴 털고 일어 나시더군요.
아주머니는 따라 일어서시며 언제 준비 하셨는지 하양 봉투 하나를 할머니께 공손히 건넸고 할머니는 의당 당연 하다는 듯 받아
챙기셨습니다.
문밖까지 나와 깊숙히 허리 숙여 인사하시는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 돌아 오는 버스를 타러갔고,
할머니께선 차를 타기 전에 시내에 큰 슈퍼에서 제게 과자를 한아름 사주셨어요.
그리고 계산 하실 때 아까 아주머니에게 받은 하얀 봉투에서 돈을 꺼내 주셨고
전 그제야 아주머니께서 할머니께 드린 봉투가 돈 이었단걸 알았어요.
그 뒤로도 장날이면 비가 오지 않으면 꼭 할머니랑 장구경을 갔었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그 아주머니네 집 이외에도 여러군데를 다니셨는데 한번 갈땜마다 한집만 가셨지요
.
그리고 할머니가 가시는 집은 예외없이 할머니를 큰절로 맞고는
극진히 대접 했고 난 덩달아 호사를 누렸답니다.
할머니가 어떤 집은 그냥 지나치셨는데(무당집) 제가 왜 저집은 안가냐고 여쭈면
저 집은 가짜야 라고 대답 하시곤 하셨죠.
그러다 한번은 난리가 난 적이 있어요.
할머니께선 그런 가짜 무속인 집을 보셔도 그냥 눈살 한번 찌푸리시곤 지나치곤 하셨는데,
한번은 정말 한참을 서서 지켜보시더니 갑자기 화가 폭발하셔선 그집으로 뛰어 들어 가신 적이 있었죠.
그 집은 좀 젊은 우리 엄마 보다 좀 더 나이 들었을 아줌마가 점을 치시고 계셨고 손님도 몇 대기 하고 있었어요.
뛰어 들어가신 할머니는 다짜고짜 점 보는 탁자를 잡아 엎으시고는 그 아주머니께 호통을 치셨어요.
전 할머니 행동에 놀라 쫄래쫄래 마루까지 따라 들어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이런 되지도 않은 망할 X이 어디서 귀신 팔아 가지고 사람들 한테 큰돈 사기 치려곤 한다며 고래 고래 고함을 치셨어요.
그러시고는 내가 호구지책으로 그냥 밥벌이나 하려는 것들은
그냥 큰 피해 안주고 밥이나 먹고 살려고 하는 것들이라 그냥 뒀는데
넌 사기 치려고 맘 먹은 X이니 내가 그대로 보고 지나칠수 없다시며 그 아줌마를 쥐잡듯 했고
그 아줌마는 한마디 말 대꾸도 못하셨죠.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다음 번에 와서도 그냥 여기 이러고 있으면
좋게 안 끝난다는 요지로 말씀 하시곤 그집을 나오셨는데
그 다음 장날에 가보니 이미 다 정리하고 도망갔더군요.
그날 할머니가 순례하신 집에서 들으니 할머니가 난리 치신 그날 밤으로
혼이 빠져선 싹 정리해선 상주를 떠났다고 하더군요.
상주 할머니의 과거등은 저도 아는게 없어요.
젊으셔선 뭘 하신건지 어떻게 지내신 건지.
다만 이제와 생각 해보면 큰 신을 모셨던 무당이 아니셨을까?
혹은 신을 담고 계시지만 무업은 안하신 은둔 무속의 거목이 아니였을까 생각 합니다.
혹시,
상주를 갈 일이 있으면 어린 시절 할머니 손잡고 따라 다닌 무속인 집들이
아직 어렴풋이 몇 군데 기억 나니 아직 그 분들이
그곳에 살고 계시다면 다들 한 60대 정도 이실꺼니 할머니에 대해 한번 알아봐야겠습니다.
이번 편은 그저 할머니랑 에피소드 소소한거 하다보니 정작 독자들이 좋아 하시는 귀신 얘긴 없네요.
다음 편 쓸때는 본격 귀신 얘기 해 드리죠.
호응이 없으시면 쓰기 참 애매한데.....
그리고 제 기억이 어린 시절 기억이라 대화등은 단편 단편 기억 하느 것에 살을 붙여 얘길 하는 겁니다.
저런 기억을 다 할린 없죠?
그렇타고 얘길 쓰면서 이런 얘길 했던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고 쓸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혹시 댓글 달아 주시면 감사 합니다만,
질문은 하지 말아 주십시요.
전 댓글에 답은 안할껍니다.
그런거 때문에 괴담 게시판에 분란 일어나는 걸 여러번 봤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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긔냥 소소하게 읽기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