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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경험담 복숭아나무와 방울소리, 키 큰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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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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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 때 겪었던 일인데 무섭지는 않아...그래도 살면서 겪었던 일 중 제일 이상했던 일이라 가입한 김에 적어 본다.(가입한 지는 좀 지났지만ㅎㅎ)



내가 다녔던 학교는 시골에 있었는데 차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었고 학생 수도 적었어. 그리고 나는 자주 지각하는 학생이라 주로 홀로 등교했고.


그리고 등교길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어. 사실 과수원이라기에는 그다지 규모는 크지 않았어. 복숭아밭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과수원은 만들어진 지 아주 오래된 편은 아니었어. 중학생 때 어느 날 비어 있던 땅에 복숭아나무가 심겨 있었지. 중학생 때는 그 길로 자주 다니지 않았어서 그냥 과수원이 생겼구나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리고 일이 벌어진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봄이었고 한참 날씨가 풀려서 따뜻할 때였어. 등교길이었는지 하교길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한창 복숭아꽃이 만발했을 때였어.


매화꽃잎이 날리는 풍경 알아? 복숭아꽃도 비슷해. 따뜻한 봄바람에 분홍색 꽃잎이 몇 장 날아오면 들뜬단 말이야. 봄이라서 몸도 나른하고.


그날도 복숭아밭 옆 길을 지나고 있었어. 몽롱한 기분으로 느릿하게 혼자 걸어가는데 어떤 소리가 들리더라.


방울 소리였어. 약간 높고 느릿한. 복숭아밭을 지나는 내내 들렸어. 그렇게 그 봄 내내 복숭아꽃이 피어 있는 동안 방울소리를 들었어.


그리고 꽃이 지고 여름에 친구들이랑 과수원 옆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방울소리가 생각나는 거야. 그래서 친구에게 봄에는 방울소리가 들렸었는데 요즘에는 안 들린다, 방울을 떼었나 보다라고 얘기했어.


그런데 걔들이 자기는 방울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는 거야. 그 대답에 갑자기 꿈에서 깬 사람처럼 머리가 돌아갔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진짜 이상한 거야.

1. 왜 방울을 달아 놓았는지

2. 달아 놓았다면 왜 내 친구들은 듣지 못했는지

3. 왜 나만 들었던 것인지

4. 바람이 끊임없이 부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방울소리가 들리는 것이 가능한지

5. 왜 나는 방울소리가 들리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는지

순간 내가 미쳤나 싶었어. 엄청 무서웠지만 착각했나 봐 하면서 얼버무리고 하교했고. 다음날 등교하려는데 혼자 그 길을 지나가기가 찝찝한 거야. 그래도 지각하기는 싫어서;;;그 길을 그냥 지나갔지.


그런데 복숭아밭을 반쯤 지났을 때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어. 초록 잎이랑 복숭아를 싼 봉투 은색 지지대 같은 것들이 몽땅 사라지고 어린 복숭아나무 대신 꽃이 핀 굵은 가지의 커다란 복숭아나무들이 보이는 거야.


그리고 그 중앙 제일 커다란 복숭아나무 그늘 아래 키 큰 남자가 서 있었어.


꽤 거리가 멀었는데도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 하얀 윗옷이랑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잘 안 보였어. 그리고 남자가 입술을 움직였는데 뭐라고 말했는지는 몰라. 바로 도망갔거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달렸고 왜 이렇게 급하게 왔냐고 친구들이 물어봤는데 대답은 안 했어. 그냥 내가 그 남자를 본 게 친구들에게 방울소리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후로는 그 길 대신 더 먼 길로 빙 돌아가거나 친구들과 지나갔고...다시 환각과 그 남자를 보는 일도, 방울소리를 듣는 일도 없었고.


나이를 먹고는 그 일을 잊고 지냈어. 처음 친구에게 이야기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도 없고. 도시로 올라오고 나서는 바쁘기도 하고 과수원도 보기 힘드니까 자연스럽게 잊히더라고.


그런데 대학 졸업하고, 이사하면서 어릴 때 일기장을 정리했거든? 그 초등학생들이 쓰는 얇은 일기장 있잖아, 그 사이에서 빳빳하고 손바닥만한 노란 종이가 끼워져 있었어.


뒤집어 보니까 분홍색 꽃이 핀 나무와 한 남자, 한 여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더라. 만년필로 그린 그림 같았는데 초등학생인 내가 그런 수준의 그림을 그렸을 리도 없고, 딱히 그런 걸 내게 줄 사람도 없었단 말이야? 어디서 섞여들어왔나 싶어서 그냥 대충 구석에 밀어두고 정리하다 잤어.


그리고 그날 밤에 꿈에 그 키 큰 남자가 나왔어. 여전히 똑같은 옷이었고 얼굴은 눈이랑 코는 흐릿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고 창백한 입술만 보였어. 꿈이라 그런지 도망가지 않고 남자를 천천히 뜯어봤거든? 남자가 살짝 웃더니 나한테 말하는 거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슬프다고.


내가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지? 어쨌든 남자에게 짧게 뭐라고 얘기했고. 남자가 소리내서 웃더니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목에 손을 뻗고 뭔가를 잡아당겼어. 그러자 목가가 시원해져서 문지르고 있는데 남자가 웃는 걸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잘 가라고 인사했어. 그리고 등을 돌려 사라졌어.


별 거 없지? ㅎㅎ그냥 이게 다야. 그 남자는 다시 꿈에 안 나왔고, 어쩌다 들른 복숭아밭에는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었고, 내가 다시 방울소리를 듣는 일도 없었고, 그리고 내가 청소하다 내던진 그 종이는 못 찾았고...


괜히 친구들에게 말하면 뭐라도 볼까 싶었는데 아니더라. 어쨌든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 우리 집은 천주교고, 무당 쪽과는 연이 없는 걸로 알거든. 그래서 점집을 찾아가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좀 궁금하긴 해. 대체 그게 뭐였는지.

복숭아 먹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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