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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영화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장동건 김희애 수현 바자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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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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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하퍼스 바자 시나리오를 받으면 출연을 빨리 결정하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이번에는 얼마간 고민의 시간을 가졌나요?

김희애 한 1분 정도 고민했나?(웃음) 원래 허진호 감독님과 작업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선 배우들이 감정선이나 변화를 어떻게 그리냐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더더기 없고 말간 느낌의 이야기였죠. 

하퍼스 바자 허진호 감독과의 만남은 처음이었죠. 어떤 경험이었나요? 
김희애 감독님 작품은 거칠지 않고 섬세하면서 부드럽게 만져주는 그런 느낌이잖아요. 그런 분명한 색을 지닌 감독은 드무니까 한번쯤 꼭 같이 촬영해보고 싶었죠. 감독님은 편견이 없으세요. 좀 소년 같은 느낌이 있죠. 연기엔 정답이 없고, 창작자로서 감독과 배우가 무궁무진하게 창조해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하퍼스 바자 배우 김희애는 대본 숙지를 완벽하게 하는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개인적으로 그 점이 극대화된 건, 전작 <퀸메이커>에서 애드리브가 넘치는 문소리 배우의 오경숙 역과 반하는 절제된 황도희 역이었다고 생각해요. 
김희애 지금도 현장에 가면 여전히 떨려서 대본을 완벽히 숙지하지 않으면 못 가겠어요.(웃음) 어떨 때는 촬영 직전까지 대본을 놓지 않을 때도 있어요. 자신감 있게 연기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테이크가 시작되면 또 다른 시작이죠. 막상 슛이 들어가면 본능적으로 자유롭게 임하는 편이에요. 

하퍼스 바자 재규의 아내이자 아들 시호의 살인죄를 덮어주려는 엄마, 연경 역을 맡았죠. <돌풍> 등 최근 작품들에선 정치인처럼 강단 있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는데, 그 모습과는 반대 지점에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영화 <윤희에게> 등에서 보인 배우 김희애의 피곤에 지친 파리한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되고요. 
김희애 연경은 보통의 여자예요. 엄마이자 아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보필하는 며느리, 그리고 커리어 우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성향 때문에 약간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가다가 자식 문제 앞에서는 앞뒤 재지 않고 자기 감정을 날것으로 보여주게 되죠. 확확 달라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배우로서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우리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물이지만 어떻게 색을 입힐지가 과제였죠. 대사의 양이나 캐릭터의 성향이 어떻든 쉬운 캐릭터는 하나도 없어요.(웃음) 

하퍼스 바자 부모로서 자식에 대해 갖는 기대나 현실의 괴리 같은 화두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했나요? 
김희애 물론 자식의 범죄가 담긴 CCTV를 보면서 사건이 시작되지만, 저는 그건 단순한 외피일 뿐 결국 누구에게나 자신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였어요. 부모에게 자식은 그런 존재이죠. 인간이 가장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그 주제에 대해 고민했어요. 

하퍼스 바자 네 캐릭터가 각자의 딜레마 안에서 고뇌하고, 테이블 위에서 본심을 때론 숨기다가 종국엔 드러내죠. 배우는 습관처럼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수행할 텐데요. 김희애에게도 이렇듯 늘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질문이나 궁금증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해요. 
김희애 배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아무래도 더듬이가 발달하게 되죠.(웃음) 인생은 이런 거구나, 인간은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달을 때도 많고요. 요즘은 ‘편견’을 갖지 말자고 되뇌고 있어요. 배우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걸 창조해야 하니까, 외모적으로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역할에 대한 생각이든 특정한 생각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죠. 일상에서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해 쉽게 구분 짓지 않으려 해요. 나에게는 선인이 누군가에겐 악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역시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서로의 케미스트리가 잘 맞을 뿐이다, 라고 생각하곤 하죠. 

하퍼스 바자 42년 차 배우로 살아오며 대중이 김희애에 관해 갖는 편견 중 해명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김희애 받아들여야죠. 어쩌겠어요?(웃음) 저는 얼굴을 내비치는 사람이니 그것까지 바로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말은 달콤하지만, 너무 좋은 말은 또 민망하고. 나쁜 말을 보면 내가 어떻게 백 명을 다 만족시키겠어, 3분의 1만 만족시켜도 성공이다,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최근 몇 년 사이 다작을 소화하며 쉴 틈 없이 활약해오고 있죠. 스스로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이따금 ‘점 하나씩 잘 찍고 있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보통의 가족>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요? 
김희애 한 번도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으려고 맡은 역할은 없어요. 요리에 비유하면, 저에게 주어진 냉장고 속 재료가 ‘오늘은 두부랑 애호박이랑 양파랑 감자 있으니까 된장찌개 해서 밥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임했달까요. 자연스레 제 책상 위에 놓인 대본 중에 가장 좋은 책을 골랐는데 결과가 꽤 좋아 행운이었죠. <보통의 가족>은 ‘보통의 삶’을 사는 게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한 인간으로서 아내이자 엄마, 직업인으로 사는 건 분주하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꽤 보람 있는 일이에요. 소소한 행복만 누릴 수 있다면 보통의 삶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또 할 일이 없어 봐요. 외롭겠죠. 일이 있어야 머리도 맑아요.(웃음)


수현
하퍼스 바자 <보통의 가족>은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통해 데뷔한 이후 당신의 첫 한국 영화 데뷔작이죠. 할리우드 영화와 국내외 시리즈물에서 줄곧 연기해왔지만 한국 영화는 처음이라니, 의외예요.

수현 저도 신기해요. 그간 너무 바라왔지만 제게 맞는 옷을 찾기 어려웠어요. 허진호 감독님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오랜 시간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느꼈죠. 뭐든 할 수 있다고 했어요.(웃음) 

하퍼스 바자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나서 어떤 점에 이끌렸나요? 
수현 제가 연기할 지수 캐릭터의 매력적인 부분도 좋았지만, 주인공 네 명이 정적인 공간에서 대화만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점에 매료되었어요. 어떤 심리전이 일어날까 상상하며 이야기의 깊이를 헤아렸던 것 같아요. 감정의 텐션이 쉴 틈 없는 영화죠. 

하퍼스 바자 당신이 맡은 ‘지수’ 역은 재완의 와이프이자 재혼을 통해 가족의 새로운 일원이 되는 인물이죠. 원작 소설의 호방하고 영악한 캐릭터인 ‘바베테’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수현 원작을 아는 이들이 그 캐릭터를 잊을 만큼, 현실적으로 가닿을 수 있는 지점을 감독님과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영화가 전반적으로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특히나 제 캐릭터는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유일하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인물이거든요. 색에 비유하면 지수의 메인 컬러가 화이트였고 그걸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지면서 말할 수 있을까, 그게 가장 어려웠어요. 그 경계에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죠. 

하퍼스 바자 지수는 가족 안에서 섬처럼 고립된 존재이기에 오히려 제3자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진심 어린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수현 맞아요. 상당히 중립적이죠. “당신들 각자에게 가장 옳은 게 뭐예요?”라고 질문하죠. 무시도 많이 당하는데 꿋꿋하게 행동하는 여자예요. 가족의 대화에 정작 끼지는 못하는 듯하면서 조용히 듣다가 한번씩 질문을 툭 던져요. 그게 뜬금없지만 뭔가 정곡을 찌르는 듯한 예리함도 있죠. 

하퍼스 바자 기억에 남는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 
수현 영화 트레일러에서 공개된 대사인데, “누구를 위한 거냐?” 하는 도덕적인 질문을 던져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질문인데 가볍게 툭 던져서 여운을 남기고 싶었죠. 또 김희애 선배가 연기한 연경에게 “저기요!” 하고 덤비는 대사가 있는데, 선배님의 에너지에 반응하다 보니 시나리오보다 더 날것의 표현을 살릴 수 있던 장면이에요. 

하퍼스 바자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수현 나는 나야!(웃음) 저는 제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강단은 좀 있나 봐요. 선배님들과 감독님 덕분에 의논을 정말 많이 하고 배울 수 있던 현장이었어요. 첫 모임 날 감독님, 설경구 배우님과 물만 마시며 7시간을 내리 대사의 뉘앙스를 논했죠. 

하퍼스 바자 이번 영화 이외에도 <경성크리처>의 마에다 유키코,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복동희까지 최근 드라마에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러 작품을 거치며 배우로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수현 비슷한 시기에 촬영이 겹쳤는데 모두 다른 성향의 캐릭터라 성취감도 느꼈지만, 심리적으로는 무척 복잡했어요. 마에다는 감정을 압축해 절제하는 인물인 반면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는 애드리브 대잔치였죠.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해냈다는 것에 배우로서 성장을 느껴요. 차갑고 딱딱한 역할을 자주 맡아왔는데, 이번에 맡은 지수처럼 저를 풀어줄 수 있는 역할을 좀 더 도전해보고 싶어요. 장르는 로맨스를 해보고 싶네요.(웃음) 

하퍼스 바자 지수와 수현 사이에 닮은 점은 무엇인가요? 
수현 지수가 솔직해서 웃긴 포인트가 있는데, 저에게도 꽤 직설적인 부분이 있어요. 촬영 전 의논을 할 때 숨 막히는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궁금증이 생기면 “근데요” 하고 궁금한 걸 물을 때도 있는데, 제 스스로도 놀라곤 해요.(웃음) 

하퍼스 바자 <보통의 가족>은 결국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구성원인지 묻는 영화죠. 영화의 엔딩 이후 앞으로 지수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수현 정말 다 괜찮은 가족이 있을까요? 모두 생각이 다르고 부딪치기도 하고, 다 기준이 다르지만 그런 것이 바로 보통의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수는 어쩌면 인간이 무섭다는 것을 깨닫고 이 가족과 멀어질 수도 있겠죠. 희망이 있다고 느끼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찾으려고 애쓸 것 같습니다.


장동건
하퍼스 바자 <창궐>(2018) 이후 6년 만의 영화 복귀작입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든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장동건 보자마자 바로 빠져들었어요.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하고 질문을 계속 던지는데, 멱살 잡혀 끌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저도 자식을 키우다 보니까 주인공의 심정이 너무 이해가 갔죠. 그게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느낌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의사로서 소명을 지키는 소아과 의사이자 아들 시호의 범죄 사실을 알고 고민하는 아버지 재규 역을 맡았습니다. 재규가 되기 위해 노력한 점은 무엇인가요? 
장동건 돌이켜보면 제가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를 연기해본 적이 많지 않아요. 장르 영화를 많이 해서 킬러나 좀비에 익숙하죠. 신념 있고 자상하고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와 책임감이 있는 소아과 의사. 그 이면에는 보통 인간처럼 가식이 있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내 연경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죠. 저의 성격이나 모습을 솔직히 보여주면서 캐릭터와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캐릭터가 있는 반면에 이번 경우는 철저히 제 안에서 찾으려고 했어요. 영화 속에서 완성된 재규는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에서 저랑 가장 많이 닮아 있어요. 

하퍼스 바자 재규는 형 재완과 애증 관계죠. 재완 역을 맡은 설경구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장동건 형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죠. 재규는 본인이 형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프라이드가 있지만 한편에는 씁쓸함이 있어요. 형에 대한 감정이 복잡한데 자식 문제가 개입하니까 더 미묘하죠. 경구 형과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처음으로 같은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경구 형의 유연함에 놀랐고 많이 배웠어요. 같은 신에서 연기를 할 때 제 나름대로 준비하고 그리는 것이 있는데 경구 형과 연기하면서는 바뀌게 돼요. 그런 경험이 나쁘지 않고 좋았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인데, 좋은 의미에서 뻔하지 않은 시너지가 일어났죠. 

하퍼스 바자 재규는 가족에게 닥친 사건 이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 점을 표현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면요? 
장동건 저 역시 부모라는 입장에서 출발했어요. 이렇게 좋지 않은 상상을 많이 하면서 촬영한 영화는 처음인 것 같아요. 아들 역의 시호를 연기한 김정철 배우를 보고 자연스럽게 제 아들을 떠올리곤 했는데, 연기엔 분명 도움이 되나 너무 괴로운 일이었죠. 

하퍼스 바자 허진호 감독님은 배우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하다죠. 함께 리얼리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배우에게는 어떤 경험인지 궁금합니다. 
장동건 감독님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을 믿으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에서 두 사람이 만나서 한강 둔치에 간다고 한다면, 왜 가는지 납득하지 않으면 못 넘어가는 분이에요. 이런저런 감정은 무엇인지 항상 같이 생각하시죠. 그래서 뻔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조차 다시 고민하게 돼요. 영화에 그런 것들이 묻어나고요. 2012년 영화 <위험한 관계>에 출연했을 때 시간 엄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반나절을 이야기만 한 적이 있어요. 그럼에도 영화의 분량을 다 소화해냈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면 때로는 콘티가 무색해질 때도 있어요. 

하퍼스 바자 이상적인 가족에 관한 상을 그려본다면? 
장동건 요즘 가족의 범위나 내적인 개념도 점점 줄어들고 있죠. 하지만 가족은 같이 있을 때 가장 편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성장해 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미묘한 마음이 들어요. 어제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쾌청한 날씨에 운전하면서 음악을 틀었는데, 김광진의 ‘유치원에 간 사나이’가 나오더라고요. 듣는데 갑자기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게 뭐지? 너무 신기하게 뭔가 해소되는 느낌도 들었고요. 집에 돌아와서 와이프한테 얘기했더니 “갱년기야!”라고 하더군요. 아, 그런가.(웃음) 가사가 “정이야 일어나 오늘도 유치원 가야지”인데, 유치원 데려다주는 아빠 이야기죠. “자 모두 덤벼라, 욕심 없이 행복한 맘 언제까지”라는 가사도 귀에 들어오고요. 가족, 아이들의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감성적으로 대하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보통의 가족> 이후 차기작으로 하드보일드 액션물 <열대야>를 준비 중이죠. 
장동건 선호하는 장르예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태국 올 로케이션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여름만 8개월째라서 꽤 힘드네요.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채널이 너무 많죠. 제가 신인 시절에는 채널이 많지 않아서 좋은 작품만 찍으면 배우로서 주목받기는 쉬웠어요. 요즘은 관객이 자기가 원하는 취향에 따라 골라 보시는 것 같아요. 만드는 입장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도전하면 될 것 같아요. 일단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 해보지 못한 것들도 하고 싶고, 최대한 작품을 즐기고 싶습니다.


허진호 
하퍼스 바자 <보통의 가족>은 국내 출간된 바 있는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수차례 영화화되기도 한 작품임에도 분명 감독님께서 매료된 특별한 지점이 있겠다고 짐작해요.

허진호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유럽에서 1백만 부 이상 팔렸던 소설이죠. 저 역시 인간 본성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지점이 담겨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다만 우리나라로 이야기를 가지고 왔을 때, 지금 이 사회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퍼스 바자 원작과 큰 차이를 꼽아보면 의미심장한 제목이 돋보여요. <보통의 가족>은 서로 다른 신념을 지닌 재규, 재완 두 형제가 자녀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신념이 흔들리고 파국으로 향하는 이야기죠. 토론토국제영화제 GV 당시, 관객들이 제목처럼 ‘보통의 의미’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허진호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들 가족이 결말까지 겪는 상황이 결코 ‘보통’의 상황이라고 볼 수 없는데, 달리 보면 어느 가족도 저런 상황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부딪힘이 좋았어요. ‘8월’과 ‘겨울’처럼, 제 취향이 양쪽이 부딪히는 걸 좋아해요. 콕 집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 순간순간 변화해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단선적인 것보다는 항상 좀 더 떨어져서 생각하게 되고 질문하게 되고 그런 것들요. 

하퍼스 바자 앞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담고 싶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을 반영하고 싶었나요? 과거에 비해 사회 전반에 ‘아이를 월등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언급하기도 했죠. 
허진호 제가 줄곧 관심 두었던 생각 중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배경을 대치동 학원가로 둔 이유기도 하죠. 가족 내에서 아이들이 자랄 때 가장 큰 목표가 진학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어떤 기준이나 도덕적인 부분을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누구든 살면서 끝까지 믿고, 가지고 가는 신념이나 윤리 같은 기준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이 일순간 무너져버리는 상황들이 흥미로웠어요. 

하퍼스 바자 단 하나의 트리거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 말이죠. 
허진호 그런 상황을 통해 인간의 약함을 보여줌으로써 진정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그런 이야기인 거죠. 

하퍼스 바자 앞서 인터뷰한 배우들 모두 빠짐없이 감독 허진호는 엄청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허진호 현장에서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대본에 없는 것들을 찾아가는 게 되게 재미있어요. 제가 일하는 방식은 배우와 같이 질문하고 이야기하며 찾아가는 방식이에요. 촬영 전 굉장히 많은 대화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맞춰나가요. 대본이라는 베이스가 있지만, 한 인물을 현실감 있게 진짜같이 만들려면 주어진 대로만 갈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거든요. 

하퍼스 바자 김희애 배우는 감독님을 두고 “캐릭터가 어떤 인간인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면모”를 가졌다고 표현하기도 했죠. 캐릭터를 구상할 때에 MBTI로 대체하거나 한두 문장에서 출발하는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식 같아요. 
허진호 이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무엇일까, 왜 그럴까 계속 질문하죠. 직선적이거나 규격에 맞춰진 캐릭터를 제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캐릭터라는 건 정해진 게 아니라 상황에서 계속 다르게 나타나다가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비로소 ‘어떤 사람인 것 같다’ 정도가 되거든요. 어쩌면 완성되고도 우리는 그 인물을 영영 모를 수도 있는 거죠. 감독이지만 가끔씩은 왜 이런 행동을 했냐고 질문받을 때 ‘나도 모르겠는데’ 싶기도 해요.(웃음) 영화 안에서 캐릭터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고민, 배우 본연의 모습, 대본이 만들어놓은 모습, 이 세 가지가 합쳐져서 다른 어떤 것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그런 성향은 언제부터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어린 시절부터 유독 세상에 질문이 많던 조숙했던 아이였던 걸지. 
허진호 처음 영화를 시작하고 연출부 생활을 할 때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박광수 감독님께선 연출부에 자꾸 질문하셨어요. 이 손수건은 무슨 색이었으면 좋겠냐. 처음엔 왜 감독이 안 정해주지 불만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겠더라고요. 감독님은 정하기 싫었던 거라는 걸. (웃음) 정해놓으면 그걸로만 규정되니까. 연기도 마찬가지죠. 약간의 물음표를 남겨두면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게 나올 수 있거든요. 그때 배운 그 방법이 제게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8월의 크리스마스> 당시엔 저도 초보 감독이고 배우들이 저를 좀 답답해했던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한석규 배우랑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한 적 있어요. “석규 씨 한번 화낸 적 있죠. 감독님 생각이 대체 뭐냐고…” 하고.(웃음) 이제는 현장에서는 시간을 절약하는 게 감독에게 중요한 기술이란 걸 아니까 사전에 얘기를 많이 해두는 거고요. 

하퍼스 바자 배우로서는 그만큼 자율권을 얻고 색채를 더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을 것 같습니다. <봄날은 간다> 촬영 당시, 헤어진 연인을 돌아보는 장면에서 당시 20대였던 유지태 배우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일화가 기억에 남아요. 이번 현장에서 이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허진호 네 배우가 각 배역에 맞는 정말 좋은 연기를 보여줬어요. 이 조합이 만든 연기 앙상블이라 해야 할까, 서로 부딪힐 때 에너지가 굉장히 커서 긴장감을 갖고 갈 수 있었어요. 애초에 저는 이 영화를 가족 드라마란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나서는 ‘서스펜스 스릴러’ 같은 평이 붙더라고요.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예측불허한 의외성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네 배우 각자에게 기대한 지점이 달랐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꼽아본다면요? 
허진호 설경구 배우가 맡은 재완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느낌을 가져가길 바랐어요. 하지만 정형화된 느낌에선 벗어나 편안한 모습도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선택이든, 심지어 도덕적으로 보이는 선택조차 실리적인 이유에서 행하는 복잡한 캐릭터인데, 마지막 화면에서 보니 그 지점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해냈더라고요. 장동건 배우는 <위험한 관계>라는 한중 합작 영화를 오래전 함께 했는데, 이번 영화에선 재규 역을 본인의 느낌을 가지고 연기해주길 바랐어요. 겉으로 보기엔 순한 사람들이 굉장히 강하게 변하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 모습을 점잖고 배려도 많이 하는 장동건 배우가 해주면 큰 에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죠. 또 김희애 배우는 워낙 연기를 잘하는 건 알고 있지만 이 배우가 연기하는 가장 보편적인 엄마의 모습은 어떤 걸까, 궁금했고 아이를 지키고자 할 때의 변화의 폭을 뻔하지 않게 그릴 것 같았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에서 김희애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에 굉장히 귀여운 모습이 많이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수현 배우는 첫인상부터 맑은 느낌이 있었고, 전형적인 선입견으로 보면 지수는 ‘돈 많고 나이 많은’ 남편과 결혼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가장 정확한 판단과 자기 기준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장르적으로 보나 캐릭터로 보나 감독 허진호의 전작들과는 분명 다른 결의 영화라 보입니다. 
허진호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죠. 지루하진 않은 것 같아요.(웃음) 영화 전체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을 관통하기 때문에 사건이 주는 서스펜스와 개인적으로 가지고 가는 질문이 내·외부적으로 긴장을 내내 유지한다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개인적으로는 감독 허진호의 인장은 하강하는 듯한 정서의, 오랜 여운을 남기는 툭툭 내뱉는 대사라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에서는 빠른 호흡 때문에 그 점을 못 볼 것 같아 아쉽기도 한데, 특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으세요? 
허진호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되면 교회나 절을 왜 다니겠냐” 하는 대사가 있어요.(웃음) 배우들끼리 맞부딪히는 장면에서의 불협화음 같은 것이 보이는 대사들이 재미있을 거예요. 

하퍼스 바자 2019년 <천문: 하늘에 묻는다>와 <선물> 이후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죠. 마지막으로 넓은 질문으로 마무리해보자면, 감독 허진호는 왜 영화를 계속하는지 묻고 싶어요. 
허진호 직업인데요, 뭐.(웃음) <행복>이라는 영화를 찍고 상을 받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촬영할 때 되게 힘들거든요. 스케줄 표가 쓰인 달력에 하루가 지나면 탁탁 가위표를 칠 만큼. 군대 전역날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촬영하고 있을 땐 빨리 끝났으면 싶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현장에서는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건 다 감독 잘못이거든요. 이상한 대사,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었으니까, 잘 안 풀리면 너무 힘들어요. 편집실에서는 몇 백 번 장면을 보면서 나중에 잘못 편집된 장면 보면 또 얼마나 괴로울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몇 년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 재상영을 봤는데, ‘저 빨래 내가 왜 저렇게 많이 걸어놨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막상 개봉시켜놓고 쉬고 있으면 내가 촬영할 때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 수 있거든요. 그때 진짜 행복했구나, 하고. 참 이상하죠. 아이러니예요. 왜 그럴까요?



https://www.harpersbazaar.co.kr/article/187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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