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부터 엔딩까지. 어떤 논란이나 시청자 불만 없이 깔끔하게 막을 내렸다. ‘비밀은 없어’는 시청자들 사이에 ‘용두용미’ 드라마로 자리잡았다.
5월 첫 방송한 JTBC ‘비밀은 없어’는 아나운서 송기백(고경표)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더 이상 거짓말을 못 하게 되고 예능 작가 온우주(강한나)를 만나 변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거짓말을 못하게 돼 막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드라마의 주요 셀링 포인트였고 예고편 등도 송기백의 ‘터진 입’에 중점을 뒀다. 주인공의 말폭탄이 주는 사이다와 코미디 요소로 시청자에게 다가간 것.
그러나 3화 이후 송기백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차츰 적응해 나가면서 돌발 상황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대신 주인공 송기백, 온우주의 성장을 통한 힐링 로맨스가 주요 서사를 이뤘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기대와 부담을 짊어져야 했던 송기백은 어느새 자신을 거짓말로 포장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나운서로서 뉴스 앵커 자리에 집착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못하게 되고 온우주를 만나게 되면서 점차 바뀌게 된다. 거짓말을 할수록 본인은 외로워진다는 걸 깨닫게 됐고 온우주는 송기백 본연의 모습을 꺼내주는 ‘우주 그자체’였다.
온우주 또한 송기백 덕분에 바뀌게 됐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엄마를 위해 오로지 “괜찮다”고만 했던 그녀지만 송기백은 “안 괜찮으면 안 괜찮다고 말해도 된다”며 우주가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게끔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몸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호심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것. 송기백과 온우주는 서로를 구원하며 성장한 것은 물론 점차 서로에게 이끌려 갔다. 단순히 원초적인 코미디를 기대했던 시청자에게 ‘비밀은 없어’는 뜻밖의 따뜻한 위로와 힐링, 설렘을 안겨줬다.
주인공의 서사뿐 아니라 등장인물 간 관계성 또한 흥미진진했다. 최고 주가를 달리는 예능인이자 트로트 가수 김정헌(주종혁)은 온우주의 구 남친으로 그녀를 아직 잊지 못해 송기백과 경쟁 구도를 이뤘다. 그러나 드라마는 김정헌을 악역으로 묘사하기보다 그 또한 상처의 회복이 필요한 결핍의 존재로 묘사했다. 과거 송기백과 절친한 사이였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멀어졌던 김정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과정은 결코 자극적이지 않고 시청자에게 따뜻함을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송기백이 보태주는 용돈으로 생활을 꾸려왔던 송기백의 가족, 친모녀 관계가 아니었던 온우주와 복자(백주희), 메인작가 온우주의 자리를 위태롭게 했지만 실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작가 이하영(이봄소리), 촬영장에서 만나 깨알 로맨스를 선보인 기백의 동생 송운백(황성빈)과 채연 PD(김새벽), 그리고 채연PD와 아들 구원이까지. 누구 하나 모난 사람 없이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 간 관계는 촘촘했고, 서사는 진득했으며, 마무리까지 깔끔했다.
특히 최종회에서 그려진 학예회에서 어린이들이 꾸민 연극 무대는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을 불렀다. 무대 위 사자, 토끼로 분한 어린이들을 통해 12회간 쌓아왔던 주인공의 서사를 압축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마지막 회 연출이하는 호평이 쏟아진 이유다. 극 후반부 송기백 가족의 교통사고와 같은 다소 뜬금없는 전개도 있었지만 최경선 작가는 잘 짜여진 대본으로 입봉부터 시청자 눈도장을 찍은 셈이다.
고경표·강한나 활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당초 ‘희극지왕’, ‘입금 전 입금 후’와 같은 코믹 이미지가 강했던 고경표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로맨스 연기도 이렇게 잘했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전 면모를 선보였다, 온우주만을 바라보는 사랑에 빠진 눈빛과 다정한 말투, 상대방을 녹이는 명대사까지. 그 어느 때보다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한 고경표다.
강한나는 온우주 캐릭터에 완벽하게 빙의했다. 전작들에선 비교적 차가운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지만 그는 ‘비밀은 없어’를 통해 러블리함을 마음껏 뿜어냈다. 온우주만의 사랑스러움과 발랄함, 대사의 말맛 등은 강한나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게 시청자 반응이다. 특히 송기백을 향한 마음을 점차 깨달아가는 온우주의 눈빛과 표정 묘사는 시청자를 금세 극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강한나의 섬세한 연기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본과 배우들의 연기를 살리는 센스 있는 연출 또한 돋보였다. ‘비밀은 없어’는 각 회차마다 내용에 맞는 부제가 있는데 모두 노래제목에서 따왔다. 회차마다 부제가 소개되는 신선한 연출은 보는 재미를 더했다. 여기에 더해 송기백과 온우주가 연애를 시작하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메신저로 표현하는 등 ‘비밀은 없어’만의 독특하면서 재밌는 연출은 매 회차마다 빛을 발했다.
마지막 화 엔딩 시퀀스에선 특별출연을 포함한 ‘비밀은 없어’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자막을 넣어주면서 제작진 또한 드라마에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6일 종영한 ‘비밀은 없어’는 방송 내내 시청률 1%대를 보이며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자극적인 설정과 소재가 쏟아지는 드라마 시장에서 ‘비밀은 없어’만의 힐링·성장 서사는 비교적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드라마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낮은 시청률에 의아해하며 “언젠가는 역주행 할 작품”이라고 호평하고 있다. 온기커플(송기백+온우주)의 로맨스에 설레고, 그들이 남긴 대사에 울컥하며 위로 받는다. 높은 시청률을 보인 건 아니지만 ‘비밀은 없어’는 이미 누군가에게 ‘인생 드라마’로 남은 것. 지난해 뜨거웠던 여름,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비밀은 없어’ 배우들과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남긴 ‘온기’가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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