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빛이 내는 소리가 있다. 탄야는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귓가에서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깰 수 있다. 탄야가 아주 오랜 꿈에서 깨어났던 그 날처럼.
고개를 돌리자 깊게 잠들어있는 은섬이 보인다. 탄야는 제 어깨 위 이불 위로 얹어진 은섬의 손을 조심히 내리고 아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돌아누웠다. 분명 고단할텐데 그 고단함을 깨끗하게 가린 얼굴이다. 은섬은 분명 같았지만 또 그래서 달라졌다. 탄야는 문득 그것이 슬펐다.
너도, 나도 겁이 많아졌어.
너는 여전히 내가 깨어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나는 아직도 네가 깨어나지 못한 나를 볼까봐 무서워.
비취산의 해독제는 분명 유효했지만 탄야를 감싼 잠의 기운은 생각처럼 말끔히 걷히지 않았다. 그 기운이 점점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탄야는 불쑥불쑥 잠들었다. 자신을 보러 온 모아에게 주고 싶은 머리장식을 찾으러 방에 들어갔다가도, 채은이 약을 데워오길 기다리다가도, 은섬의 어깨에 기대고 앉아 어떤 날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그렇게 제가 먼저 잠든 날이면 은섬이 편히 잠들지 못하는 걸 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달아난 잠에서 깬 저를 눈치채지 못하고 내내 다독거리던 은섬의 손. 부러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자 벅차게도 환히 웃던 얼굴.
- 나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매번 반가워하면 어떡해.
- 매번 반가운걸 어떡해.
그 말이 꼭, 내가 잠들어있는 내내 네가 울었다는 말 같아서. 기나긴 꿈을 꾸는 나를 내도록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날을 지샜을지 가늠할 수도 없어서. 도로 은섬의 품에 고개를 묻고 오래도록 울었던 어느 날. 그 즈음부터 탄야는 은섬보다 일찍 일어나려 애썼다. 다섯 번 중 세 번은 성공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그 세 번에 속한 아침이었다.
은섬의 볼을 살며시 쓰다듬자 눈꺼풀이 떨리더니 곧 열린다. 탄야는 있는 힘껏 미소지었다. 제 귓가에서 세상이 열리듯 은섬의 세상도 이제 깨어날테니. 내가 너의 세상이니 나는 눈을 뜨고 있어야지. 탄야가 손끝으로 장난스레 은섬의 눈가를 문지르자 팟- 하고 웃음이 터지더니 그대로 탄야를 당겨와 끌어안는다. 코 끝이 닿고, 자연스레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졌다.
안녕, 나의 꿈.
안녕, 나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