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말간 얼굴의 인기가수 최윤 역을 맡아 눈도장을 찍었던 배우 정경호. KBS 20기 공채 탤런트 출신인 그는 아버지 정을영 PD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앙대 연극과에 진학해 배우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수많은 팬들을 양산하면서 정경호가 이후 시도한 다양한 변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꽤나 있다. 안정적인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줬지만 대중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정경호는 본격적으로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출연하면서 다시 한번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됐다.
특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흉부외과 교수 김준완은 정경호에게 적역이었다. 능력 있고 까칠하지만 여자친구 앞에서는 팔불출 순정남이 되는 김준완 캐릭터는 정경호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인물이 됐다.
그랬던 정경호가 2023년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았다.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1타 수학 강사 최치열 역을 맡으며 물 만난 고기처럼 안방극장을 누비고 있는 것. 방송 초반부터 각종 SNS에서는 최치열이 강의하는 모습과 판서가 "진짜 강사같다"는 평들이 쏟아졌다. 배우의 남다른 노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앞서 '일타 스캔들' 제작보고회에서 정경호는 "수학 문제를 너무 오랜만에 봤다. 잠시나마 수학을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헛수고였다"며 "제일 어려웠던 게 판서인데 칠판에 쓰는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열심히 연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상대역 전도연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사실 '전도연 선배님과 같이 하면 어때?'라는 질문을 제 지인과 부모님뿐만 아니라 모든 분이 저한테 질문해서 500번째 듣는 거 같아요. 그래서 '왜 이렇게 좋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어렸을 때부터 선배님이 하는 드라마도 보고 연기도 보면서 변하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거 같습니다."
'일타 스캔들'은 '고교처세왕' '오 나의 귀신님' 이후 8년 만에 의기투합한 유제원 감독과 양희승 작가의 신작이다. 4%대의 무난하지만 다소 아쉬운 시청률로 출발했던 이 드라마는 5주 만에 시청률이 3배 이상 상승하는 놀라운 결과를 냈다.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과 강사 최치열의 로맨스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깊어지고 있다. 두 배우의 열연을 통해 2월 2주 차 TV-OTT 통합 드라마 화제성 부문 1위, 출연자 화제성에서도 나란히 1, 2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제공)를 차지하는 등 높아지는 인기를 만끽하는 중이다.
지난해 말 영화 '압꾸정' 개봉을 앞두고 본지와 만난 정경호는 "20대 때는 많이 들어오는 대본들과 수없이 좋은 기회들이 있었는데 내가 잘난 멋에 연기를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30~40대가 되다 보니까 좀 더 제가 책임감 있고 집중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배우 일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막중한 책임의식이 들더라고요."
그는 작품 선택 이유 중의 하나가 '사람'이라고 말했다. "결국 남는 건 사람 같아요. 저도 보다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도 있고, 많은 사랑을 못 받은 작품도 있지만 남는 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신중하게 집중해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좀 더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기회가 있으면 그걸 선택해요."
정경호는 유일하게 일을 쉰 시기가 군대에 있을 때였다며 그때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제대로 알려준 작업은 하정우가 연출한 '롤러코스터'에 출연할 때였다고 회상했다. "정우형이나 학교를 같이 다닌 형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알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 하면서 5년 동안은 감독님을 포함해 같은 스태프들과 일을 했어요. 같은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까 너무나도 행복한 5년이었죠."
작품에서 까칠하면서도 하찮은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내가 그렇게 하찮은 편이다. 허당이라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약간 실제로도 그렇다"며 크게 웃었다. "완벽하지 않을 때가 제일 사람답지 않을까요? 연기를 할 때는 '저 사람이 내 앞에 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며 표정들을 몇 단계로 나눠서 포인트를 줬던 거 같아요."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욕심 부리지 않기'라는 정경호는 "드라마나 영화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작품을 만드는 건데, 내가 욕심 내는 순간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단 생각이 들더라. 음악에 기대고 상대 배우에 기대고 '나 연기 못하니까 보완 좀 해줘'라는 마음으로 한다. 점점 욕심을 많이 안 낸다"고 털어놨다.
"제 복이라고 생각하는 게, 옆에 선배들도 좋은 사람들이랑만 일하다 보니까 덕을 봐요. 이번에도 '일타 스캔들'에서 전도연 선배와 일하며 느꼈어요. 제가 가만히만 있어도 돋보이게끔 해주는 거 같아서 너무 좋더라고요."
슬림한 몸을 유지 중인 정경호는 "일부러 살을 뺀 게 아니라 계속 까칠한 역할을 10년 동안 우연치 않게 하다 보니까 유지하게 됐다"며 "'일타 스캔들'에서 맡은 역도 까칠하고 섭식장애도 있어서 이거만 끝나면 살을 좀 찌우고 싶다"면서 웃었다.
까칠하고 예민한 캐릭터가 굳혀질까 봐 우려도 했었다는 정경호는 지금은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부분을 어떻게 차이를 둬야 할지를 고민하는 거 같아요. 마흔 살이 되다 보니 그 안에서 다르게 연기를 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 것을 잘 만들어줄 대본들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요. 전에는 이미지에 갇히는 게 무서웠다면 지금은 즐기는 편입니다. 실제로는 화가 많이 없는데 작품에서 소리 지르고 할 때 신나고 대리만족도 해요. 하하."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469/0000723786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수많은 팬들을 양산하면서 정경호가 이후 시도한 다양한 변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꽤나 있다. 안정적인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줬지만 대중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정경호는 본격적으로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출연하면서 다시 한번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됐다.
특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흉부외과 교수 김준완은 정경호에게 적역이었다. 능력 있고 까칠하지만 여자친구 앞에서는 팔불출 순정남이 되는 김준완 캐릭터는 정경호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인물이 됐다.
그랬던 정경호가 2023년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았다.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1타 수학 강사 최치열 역을 맡으며 물 만난 고기처럼 안방극장을 누비고 있는 것. 방송 초반부터 각종 SNS에서는 최치열이 강의하는 모습과 판서가 "진짜 강사같다"는 평들이 쏟아졌다. 배우의 남다른 노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앞서 '일타 스캔들' 제작보고회에서 정경호는 "수학 문제를 너무 오랜만에 봤다. 잠시나마 수학을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헛수고였다"며 "제일 어려웠던 게 판서인데 칠판에 쓰는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열심히 연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상대역 전도연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사실 '전도연 선배님과 같이 하면 어때?'라는 질문을 제 지인과 부모님뿐만 아니라 모든 분이 저한테 질문해서 500번째 듣는 거 같아요. 그래서 '왜 이렇게 좋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어렸을 때부터 선배님이 하는 드라마도 보고 연기도 보면서 변하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거 같습니다."
'일타 스캔들'은 '고교처세왕' '오 나의 귀신님' 이후 8년 만에 의기투합한 유제원 감독과 양희승 작가의 신작이다. 4%대의 무난하지만 다소 아쉬운 시청률로 출발했던 이 드라마는 5주 만에 시청률이 3배 이상 상승하는 놀라운 결과를 냈다.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과 강사 최치열의 로맨스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깊어지고 있다. 두 배우의 열연을 통해 2월 2주 차 TV-OTT 통합 드라마 화제성 부문 1위, 출연자 화제성에서도 나란히 1, 2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제공)를 차지하는 등 높아지는 인기를 만끽하는 중이다.
지난해 말 영화 '압꾸정' 개봉을 앞두고 본지와 만난 정경호는 "20대 때는 많이 들어오는 대본들과 수없이 좋은 기회들이 있었는데 내가 잘난 멋에 연기를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30~40대가 되다 보니까 좀 더 제가 책임감 있고 집중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배우 일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막중한 책임의식이 들더라고요."
그는 작품 선택 이유 중의 하나가 '사람'이라고 말했다. "결국 남는 건 사람 같아요. 저도 보다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도 있고, 많은 사랑을 못 받은 작품도 있지만 남는 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신중하게 집중해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좀 더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기회가 있으면 그걸 선택해요."
정경호는 유일하게 일을 쉰 시기가 군대에 있을 때였다며 그때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제대로 알려준 작업은 하정우가 연출한 '롤러코스터'에 출연할 때였다고 회상했다. "정우형이나 학교를 같이 다닌 형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알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 하면서 5년 동안은 감독님을 포함해 같은 스태프들과 일을 했어요. 같은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까 너무나도 행복한 5년이었죠."
작품에서 까칠하면서도 하찮은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내가 그렇게 하찮은 편이다. 허당이라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약간 실제로도 그렇다"며 크게 웃었다. "완벽하지 않을 때가 제일 사람답지 않을까요? 연기를 할 때는 '저 사람이 내 앞에 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며 표정들을 몇 단계로 나눠서 포인트를 줬던 거 같아요."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욕심 부리지 않기'라는 정경호는 "드라마나 영화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작품을 만드는 건데, 내가 욕심 내는 순간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단 생각이 들더라. 음악에 기대고 상대 배우에 기대고 '나 연기 못하니까 보완 좀 해줘'라는 마음으로 한다. 점점 욕심을 많이 안 낸다"고 털어놨다.
"제 복이라고 생각하는 게, 옆에 선배들도 좋은 사람들이랑만 일하다 보니까 덕을 봐요. 이번에도 '일타 스캔들'에서 전도연 선배와 일하며 느꼈어요. 제가 가만히만 있어도 돋보이게끔 해주는 거 같아서 너무 좋더라고요."
슬림한 몸을 유지 중인 정경호는 "일부러 살을 뺀 게 아니라 계속 까칠한 역할을 10년 동안 우연치 않게 하다 보니까 유지하게 됐다"며 "'일타 스캔들'에서 맡은 역도 까칠하고 섭식장애도 있어서 이거만 끝나면 살을 좀 찌우고 싶다"면서 웃었다.
까칠하고 예민한 캐릭터가 굳혀질까 봐 우려도 했었다는 정경호는 지금은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부분을 어떻게 차이를 둬야 할지를 고민하는 거 같아요. 마흔 살이 되다 보니 그 안에서 다르게 연기를 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 것을 잘 만들어줄 대본들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요. 전에는 이미지에 갇히는 게 무서웠다면 지금은 즐기는 편입니다. 실제로는 화가 많이 없는데 작품에서 소리 지르고 할 때 신나고 대리만족도 해요. 하하."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469/0000723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