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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약한영웅 삼탕까지 끝냈는데 과몰입해제는 커녕 심장이 더 박박 찢어져서 상플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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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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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ㅍ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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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내내, 나는 수호의 병실에 가 있었다. 

수호의 할머니가 계시면 같이 밥을 먹거나 사과를 깎아먹거나 했고, 의사나 간호사의 부탁이 있으면 잠든 수호를 일으켜세워 몸을 닦아주기도 했다.

수호는 아주 잘 잤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못 잔 잠을 이제야 몰아서 잔다는 듯이. 

할머니가 울어도 내가 울어도 못 들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걱정하고 사랑한다면서. 할머니의 표정이 흐려진 날이면 나는 수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불효자놈아, 얼른 일어나. 할머니가 너때문에 십년은 더 빨리 늙겠다.

그래서 그 여름 내내 수호의 병실은 나의 집이고 독서실이고 학원이고 교실이었다. 수호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이어폰은 절대 끼지 않았다. 병실 밖에서 들리는 매미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고 국어 기출을 풀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의 마지막날, 안수호가 눈을 떴다.

병실엔 나 혼자였다. 

선행 수학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자 수호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꿈인가. 왜 수호 눈이 떠져있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여전히 수호가 나를 보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우는 줄도 몰랐다. 병실 밖을 달려 나가서 뭐라고 소리를 친 것 같은데 그것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수호가 눈을 떴다고 했을까? 수호를 살려달라고 했을까?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병실을 향해 달려갔고, 그제야 나는 벽에 기대 무너져서 울었다.


나는 새로운 학교를 다녀야했고 수호는 재활을 해야했다. 등교할 때마다 짧게 통화를 했다. 야, 학교 잘 다녀와라. 안수호가 그렇게 얘기하면 좀 웃겼다. 그래, 재활 잘 해라. 내 대답은 늘 같았다.

학교는 여전히 재미 없었다. 공부는 해야하니까 했다. 잘 할 수 있는 게 공부니까,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가끔 어떻게 안수호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눈을 떴을까, 생각이 들었다. 의사마저 어찌나 놀랐던지. 안수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거의 맹수들의 회복력 아니냐. 그런 소리를 하면서 밖에서 사온 도가니탕을 후루룩 잘도 마셨다. 걸리면 얘나 나나 할머니한테 등짝 맞을 게 뻔했다.


금요일 밤엔 병원에 가서 잤다. 할머니는 내가 가야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도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애틋해했다. 

깨고 나서도 안수호는 잠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매일 두번씩 여러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겨워. 나가면 다 뒤졌어. 안수호의 입버릇이었다. 빤히 쳐다보면 수호는 이말저말을 황급히 덧붙였다. 치즈 피자 졸라 조진다 순대국밥도 특으로 먹을 거야 야 나 진짜 퉁퉁 불은 라면 왜 이렇게 먹고 싶냐 꼬들한 거 말고 진짜 완전 면발 다 불어서 국물 하나도 없는 거. 나가자마자 다섯봉지 때린다 시발.

어떻게 얘는 이런 상황에서도 밥 얘기만 할까. 한심해서 좀 웃었다. 그리고 나가면 라면 다섯봉지를 사다가 한번에 왕창, 미역국을 끓이듯이 푹 끓여줘야지, 라고 생각했다. 


병실에 있는 보호자용 간이침대는 좁고 불편했지만 집에서 자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그냥 내가 수호야, 부르면 언제든 뭐,라고 대답이 돌아올 걸 아니까. 나는 늘 그런 게 필요했다. 부르면 무심하고 심상하게 돌아오는 평범한 대답.

약에 취한 수호는 자다 깨다 했다. 그리고 깼을 때 한번씩 꼭 내 미래 이야기를 했다. 

야 너 서울대 가면 학교 앞에서 자취해야 되냐? 지금 집에서 다니기는 좀 멀지 않냐? 그럼 니네집 맨날 가야지. 아예 가면 할머니 외로우니까 그건 안되고. 야 너 의대는 가지 마라. 의사들 존나 바빠 보이지 않냐? 맨날 뛰어다니던데. 차라리 약사 되는 게 어때. 근데 너 싸가지 없어서 손님 다 떨어질 거 아냐. 그러면 형이 손님 상대할 테니까 넌 약만 만드는 거야. 와. 시발 나 지금 존나 똑똑했다. 어때.

안수호의 말들 속에서 나는 의사가 됐다가 약사가 됐다가 삼성전자 직원이 됐다가 변호사가 됐다가 검사도 됐다.

일요일 저녁,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한참을 자다 일어난 수호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방을 정리하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수호야. 너 퇴원하면 우리 아빠랑 얘기해봐. 뭘? 그냥 너 격투기 말고 운동.. 프로로 할 수 있는 종목 있을지.

지금의 수호 상태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란 걸 알았다. 그런데 안수호의 말들 속에 내 미래만 있고, 안수호의 미래가 없어서, 그게 좀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지금 걷지도 못하는데 무슨 운동을 하냐는 둥 하는 말 안수호는 안 할 줄 알았다. 수호는 그저 몽롱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형이 뭐든 시작하면 또 바로 진천으로 들어가지, 또. 그 거들먹거리는 말투가 고마웠다.


가방의 지퍼를 닫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낸다. 이제 금요일이면 다시 볼 수 있으니까, 슬픈 표정 같은 것은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 이렇게 눈 떠 있는 안수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일이니까.

여상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려고 침을 삼킨다. 눈을 감았다 뜬다.


그러면 병실 밖,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 나무가 보인다. 매미소리는 더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면, 잠들어 있는 수호의 얼굴이 보인다.


사실 수호는 단 한 번도 눈을 뜬 적이 없다.

나는 그게 이상해서 자꾸 현실 같은 꿈을 꾼다.


https://gfycat.com/ObedientDistortedBetafish


ㅡ그러니까 안수호, 이제 그만 일어나. 네가 멈춰선 곳은 너무 더웠던 한여름의 날. 우리에겐 남은 날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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