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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있었다. 한정우와 조상구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였다. 하지만 어린 상구에게 형 정우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에서 믿고 기댈 기둥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구의 아버지는 '더는 네가 이 집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형 정우를 내쫓았다. 하지만 형은 상구에게 약속했다. 데리러 오겠다고.
상구의 생일이기도 했던 1995년 6월 29일은 형이 데리러 오겠다고 한 날이었다.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던 형에게 상구는 놀이 공원에 가서 거기 있는 놀이 기구를 다 타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키 운동화가 가지고 싶다고 했다. 상구는 약속한 기차역에서 형을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상구의 세상은 그렇게 무너져 갔다.
죽어가며 동생에게 아들 그루를 맡긴 한정우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아래 무브 투 헤븐)>의 조상구(이제훈 분)는 돈을 걸고 격투기를 하며 거칠게 살아온 인물이다. 심지어 경기 중 동료 선수의 생명을 위독하게 만드는 바람에 교도소까지 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만나 거친 척을 하면서도 정을 그리워하는 이중적인 면을 가진 상구라는 캐릭터로 재해석됐다.
<무브 투 헤븐>을 이끌어 가는 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유품 정리사 한그루(탕준상 분)다. 그루의 아버지 한정우(지진희 분)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교도소에서 갓 나온 상구가 등장한다. 그는 형 한정우와 그루가 이끌어가던 '무브 투 헤븐'의 직원이자 그루의 3개월 임시 후견인이자 보호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극중 그루의 아버지 한정우는 첫 회에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해당 역할을 맡은 지진희 배우는 10회 내내 등장한다. 한정우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드라마는 그를 매개로 그루와 상구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먼 길을 돌아 만난 형제
형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상구는 세상에 대한 마음을 닫았다. 그런데 우연히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수철(이재욱 분)을 구해주면서 상구에게는 동생이 생긴다. 상구를 따르며 상구처럼 복싱을 하고 싶다는 수철을 '내 새끼'라며 가르쳐 주었던 상구. 하지만 '펀치 드렁크(뇌세포손상증)' 진단을 받은 수철은 복싱을 그만두겠다며 그를 실망시킨다.
이후 수철은 사업 자금을 구하겠단 명목으로 상구가 하는 내기 격투기 판에 나타난다. 수철을 제대로 KO 시켜야만 그을 구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때 눈 앞에 형이 나타나고, 감정이 격해진 상구는 과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에 그만 상구의 가족같던 동생 수철이 뇌사에 빠지게 된다.
상구가 그루네 집 등기문서를 가져다 맡기면서까지 살려내려 했던 수철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후 '유품 정리사'로서 수철의 마지막 이사를 해주던 상구는 거기서 그날 경기장에 형이 찾아온 이유가 동생같던 수철의 배려였음을 알고 눈물을 쏟는다.
또한 그루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고 뒤쫓아 간 상구가 뒤늦게서야 알게 된 형의 진심, 그리고 지하실 창고 캐비닛 안에 상구의 나이만큼 차곡차곡 쌓인 나이키 운동화 앞에서 상구는 끝내 오열하고 만다. 이복형제 한정우와 조상구는 1995년 발생한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하여 재회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형 한정우는 동생을 찾기 위해 절치부심했고, 매년 동생의 생일이면 동생이 원하던 걸 들어주기 위해 놀이 공원을 찾았다.
그루네 집에 오기까지 형이 자신을 버렸다며 형을 원수처럼 여기던 상구는 처음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 그루네 집을 보며 돈을 목적으로 후견인을 맡는다. 하지만 그루와 함께 일을 다니며 상구는 변해간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자기보다도 더 가여운 삶을 살다 홀로 죽어간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하며 오랜 피해의식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졸지에 맡게 된 조카 그루와 유품 정리일. 하지만 그 일을 해나가며 상구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상실과 외로움의 늪에서 한 발자국씩 빠져나왔다. 형 한정우는 아스퍼거 증후군인 그루가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상구를 후견인으로 삼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회복된 건 상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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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잃은 그루는 이제 아버지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없지만 대신 삼촌이 생겼다. 오랫동안 홀로 거칠게 살아오며 마음을 닫은 상구는 비록 형은 세상을 떠났지만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해주던 형을 되찾았다. 그리고 가족도 생겼다. 한정우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은 살아있는 이들 속에서 계속 된다.
고인의 방에 들어선 유품 정리사는 고인의 마지막 이사를 하며 고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무브 투 헤븐>은 주인공은 한그루와 조상구이지만 드라마 10회 내내 한정우란 인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복 동생을 오랫동안 그리며 찾고자 애썼던 형, 자신의 면회조차 거부하는 동생을 위해 매년 동생의 생일 선물을 마련하듯 그를 위한 직업과 가족을 마련해 주었다. 그건 홀로 남은 그루에게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물탱크에서 찾아낸 미숙아 그루를 자신의 아이로 삼아 당당한 유품 정리사로 살아갈 수 있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배려해준 아버지 한정우.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한정우라는 고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10회차의 과정은 마치 1회차에 세상을 떠난 한정우라는 인물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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