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데뷔 햇수로만 57년. '연기 외길'을 걸어온 박인환이 '나빌레라'로 날았다.
막연히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뒤 연극으로 생계를 꾸리기 시작한지 57년이 흘렀다. 그동안 다른 길을 보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박인환은 오랜만에 미니시리즈 주연을 맡으며 세찬 날개짓을 다시 시작했다. tvN '나빌레라'(이은미 극본, 한동화 연출)는 박인환에게도, 나이 일흔의 심덕출에게도 그런 작품이다.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덕출과 스물 셋 꿈 앞에서 방황하는 발레리노 채록(송강)의 성장을 그린 '사제듀오 청춘기록' 드라마. 그 속에서 박인환은 심덕출로서 뛰어올랐다.
처음엔 발레를 해야 한단 말에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이제는 누군가 선택해주고 불러줘야만 연기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도 확실했지만, 체력적 부담감이 먼저 다가왔다. 그럼에도 '하겠다'고 한 이유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힘들 거 같아서 망설였어요. 그런데 어쩌면, 이제 나에게 찾아온 행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 작품이 너무 좋고, 힘이 들더라도 너무 좋았어요. 배역도 너무 좋았고요. 나문희 씨도 그러더라고요 '이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그래서 저도 '해야 한다'로 바뀌었어요. 체력이 딸리면 안되니까 홍삼도 먹어가면서 촬영을 했어요. 발레를 촬영 전이던 여름부터 배웠는데, 체력이 문제가 되면 안되고, 나에게 마지막으로 온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큰 장벽이라 느꼈을 정도로 발레는 그에게 체력적 고통을 선사하기도 했다. 기본기부터 배워나가 1분 50초, 2분짜리 작품을 하나 만들었을 때까지도 연습에 계속해서 매진했다. 발레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해소됐다. 박인환은 도전의식 하나로 발레를 완성했다. 그는 "노인네가 발레를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무모한 일이다. 뼈도 굳었고 근육도 말을 안 듣는 와중에 어떻게 보면 상징적인 일이었다. 도전하고 날아보고 싶은, 도전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꿈이라 해야 할까.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했던 거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직접 서서 발레 시범까지 보여줬던 박인환은 힘들게 찍은 만큼 화면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도 했다. "과정에서는 힘이 들 뿐이었어요. 촬영이라는 것이 내도록 대사 외우고 연습하고, 충청도며 경기도며 가서 촬영을 하고,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찍을 때는 '빨리 찍어. 쉽게 가자'라고 생각을 했지만, 힘들게 찍어둔 게 보고 나면 그림이 참 좋았어요. 특히 공원에서 채록이가 발레를 하며 기억을 되살린 장면은 새벽까지 여의도 공원에서 찍은 탓에 코 밑도 헐었고 입술도 텄지만, 화면을 보니 뿌듯했죠."
'나빌레라'가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은 덕분에 댓글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단다. 박인환은 "원래 댓글은 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하고는 매번 그걸 보는 게 낙이다. 댓글이 너무 좋으니 매일 보게 된다. 공통적인 것이 드라마가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하다고도 하고, 부모님도 생각이 난다고 하더라. 젊은 친구들도 몇 번을 보게 된다고 하고 위안도 받는다고 했다. 가끔 나보고 '귀엽다'고 하는 댓글도 있는데 귀여운 건 나랑 관계가 없는 건데 그래서 신기하다. 채록이에게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는 모습 덕분에 그런 건가 싶다"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연기 자체가 도전이었다는 박인환은 그럼에도 '나빌레라' 덕분에 도전의 꿈을 더 가지게 됐다고 했다.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처럼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는 인물이 되고 싶다고.
"어떤 도전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다른 일은 못하겠고, 제가 평생 연기만 해왔으니. 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게 아니고서야 작품성이 있는 작품에 계속해서 출연하고 싶어요. 저야 오래도록 연기하고 싶지만, 그건 저를 선택해주는 분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