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당시 서른다섯 살 피아니스트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랑랑(郞朗·38)이 음악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름만큼 낭랑한 터치로 일찌감치 국제 무대에 존재를 알린 스타였기에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원인은 왼팔 부상. 피로가 겹겹이 쌓인 상태에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무리해 연습하다 손목에 건초염이 생겼다.
그 후 3년. 중국이 낳은 월드 스타 랑랑이 복귀하며 택한 건 바흐였다. 지난 4일 밤 유튜브엔 도이치 그라모폰과 녹음한 새 앨범 ‘바흐: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공개하는 랑랑의 영상이 떴다. 중국 베이징의 절 ‘동정연(東景緣)’에서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10대 때 이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앞에서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 적 있다. ‘훌륭하다’는 평을 받았음에도 그가 이 곡을 다시 선보이기까지는 20년 넘게 걸렸다. 랑랑은 “이 곡을 연주할 때면 마치 레고 블록을 갖고 노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원래 바흐는 자신을 도와준 러시아 외교관 친구에게 잠을 푹 잘 수 있는 아름다운 자장가를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그러다 하나의 선율이 돌림노래처럼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아홉 개의 카논이 떠올랐고, 바흐는 그걸 뼈와 피로 삼아 거대한 피라미드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어요. 반복되는 변주 사이엔 지그와 미뉴에트, 사라방드 등 다양한 춤곡을 집어넣어 결코 지루함을 느낄 수 없게 다이내믹을 살렸고요.”
글렌 굴드의 명반을 비롯해 이미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골트베르크 변주곡들 사이에서 랑랑이 풀어야 할 과제는 “내 안의 바흐가 정말 그 시대 음악처럼 들리게 연주하는 것”이었다.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내는 것처럼 완벽한 스타카토와 아름다운 레가토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느린 변주에서 나오는 평온한 순간과 외로움은 물론이고, 변주를 반복할 때마다 한 걸음씩 언덕을 오르는 것 같은 고단함도 공유하고 싶었죠.” 그래서 랑랑은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나이가 많은 것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고통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죠. 10대 소년에게 비슷한 변주를 서른 번씩 반복하라고 하면 고문일 거예요.”
지난해 6월 랑랑은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 웨딩마치를 올렸다. 신부는 한국인 어머니를 둔 독일계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 “결혼을 하니 전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기분이 든다”는 그는 “장모님이 항상 맛있는 불고기를 해주신다. 한국이랑도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오는 12월 13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골트베르크 변주곡으로 리사이틀도 여는 그는 “빨리 해외여행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며 “모든 게 좋아져서 한국에 있는 음악가 친구들과 팬들에게 직접 연주를 들려줄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린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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