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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녹비홍수는 복습할수록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감정선 연출이 좋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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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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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상, 왕약불, 소진씨 이 셋의 연출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음.

 

셋 다 가부장제안에서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얻기 위해 투쟁하거나

그 당위성이 위협받아 고통받는 존재들임.

 

특히 임금상은 그냥 그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캐릭터임.

실제 임금상이 사랑한 건 자기도 첩, 자기가 낳은 자녀들도 서자녀에 불과하지만

그 첩과 서자녀의 지위를 적어도 성가에서는 정처와 비등한 지위로 격상시킬만큼의 성굉의 비호였지, 성굉자체는 아니었지.

 

그 비호를 유지하기 위해 성굉 자체를 사랑한 거라 속였지만,

묵란이의 혼사를 두고 그 거짓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고.

자기는 첩으로 살았지만, 묵란이가 정처가 되는 것은 자신의 또다른 실존적 당위성을 주는 거지.

근데 그걸 위험한 도박을 걸어서 쟁취하기 목전인데 성굉이 뜻을 바로 따라주지 않으니까

임금상 본연이 나왔는데, 임금상이 어리석다기보다는 누구보다 명분에 목말라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게 태초의 임금상을 이루는 성질 그 자체였기 때문에라고 봐.

그리고 그 임금상이란 여자의 본연을 성굉은 매질하는 걸로 응답함.

 

그러고 임금상이 결국 죽는데, 그 소식을 들은 왕약불의 반응이 시청자가 예상했던 그 반응이 아님.

 

왕약불은 임금상이 죽었다는 소식 들으면서

평소 캐릭터 성격 같았으면 무척 기뻐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한기에 떠는 걸 보여줌.

 

임금상을 눈엣가시로 여겼지만, 단 한번의 감정의 어긋남, 그 한끗차이로

성굉에게서 버려져서 그 손에 매질 당해 죽은 거니까

(명란이가 유도한 거지만 애초에 성굉이 그럴 사람이기에 명란이의 계책이 먹혀든 거)

거기서 오는 통쾌함이 아닌 그 한번으로 사람 목숨까지 내쳐진다는 거에 오한을 느끼는 거.

물론 그 이후에 잘 먹고 잘 살았겠지만, 이런 씬이 보는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씬인 것 같아.

 

명란이의 복수로선 통쾌하지만 그 계책을 작동시키는 그 시대의 가부장적 힘의 작동 원리를

단지 그냥 통쾌함으로 치부할 수 있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거랑 비슷하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씬이 소진씨 죽음씬이라고 생각.

고후네 사당을 불지르는 행위는 소진씨를 억압했던 가부장적 폭압들을 불사르는 것과 같음.

 

언니 대진씨가 죽은 이후로 재취도 아닌 삼취로 후처로 들여졌고,

'소진씨'로 불리면서 대진씨를 잊지 못하는 남편을 항상 의식하면서

심지어 자기가 낳지 않은 적자가 두 명이나 더 있는 후작부에서

언니의 대체품, 아니면 후작부의 세번째 후작부인으로서 그저 비었던 안주인 자리를 채우고

자기가 낳지 않은 아들들을 잘 양육할 존재... 그것 외에 진짜 자신이 존재하는 당위성을 찾고 싶었겠지.

 

형제를 이간질시키고, 고정엽의 평판을 나락에 처박고, 그 외의 각종 모략들이 악한 것이긴 하지만

그저 현모양처가 아니라 스스로 욕망하는 자기자신으로 남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해

 

소진씨가 사당을 다 불사르지며, 이 모든 가부장적 적폐들이 나를 나로서 살게 하지 못했으니,

이 행위로서 '진정한 나로 살거야'란 대사를 던지며 울면서 웃는 씬은 진짜 이 드라마에게 제일 중요한 씬이라고 할 수 있을듯.

 

행위의 표면은 분신자살이지만 행위의 이면은 진정한 나를 찾는 것.

역으로 말하면 그러지 않고서는 가부장제의 시대에서 진정한 나로 살 수 없다는 말.

그래서 명란이가 그걸 지켜보고 눈물짓고 있는 거고... 명란이도 당대 가부장제의 희생양 중 하나니까.

 

원래라면 그냥 악에 받친 악역의 말로이니, 시청자들의 반응도 으이그 결국... 이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연출이 유도하는 게 전혀 그렇지가 않잖아? 여기서도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죽어가며 이제 나 자신으로 살겠다는 소진씨나, 그걸 보며 우는 명란이를 봐라,

소진씨의 말로가 그저 악역의 말로, 권선징악인가? 그게 끝인가?

진짜 불태워져야 하는 건 소진씨가 맞는가? 저 가부장제의 모순과 적폐들이 아니라?

 

소진씨가 죽고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황실,

화목해 보이는 후작부부+성가의 사람들 연출도 의미심장했어.

 

자, 우리는 모든 할 얘기를 마쳤고 1100년대의 송나라, 그 시절의 사람으로 돌아간다.

 

'진정한 나를 찾고자 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그 시대다운 행복을 누릴 것이다.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삼아진 이들의 고통 위에서 이 체계를 공고히 하면서.

 

진짜 머리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은 마무리였어. 

원래도 재밌게 봤는데 이 결말과 중간중간의 인상적인 감정선 연출때문에 더 특별한 드라마가 된듯.

요새 다시 복습 중인데, 복습할 때마다 느끼지만 너무 잘쓴 극이라 생각해서 감상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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