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격이 높은 집안은 당나라를 기준으로
농서이씨(隴西李氏) 돈황선공파(敦煌宣公派)[3],
태원왕씨(太原王氏) 장군공파(將軍公派)[4],
형양정씨(滎陽鄭氏) 첨사공파(詹事公派)[5],
범양노씨(范陽盧氏) 고안혜후파(固安惠侯派)[6]·별가공파(別駕公派)[7]·사군파(使君派)[8],
청하최씨(淸河崔氏) 부군파(府君派)[9]·탁지랑공파(度支郞公派)[10],
박릉최씨(博陵崔氏) 합하파(閤下派)[11],
조군이씨(趙郡李氏) 시어사공파(侍御史公派)[12]
이며 이들은 칠성십가(七姓十家)라 하여 조정에서 지정한 최고 귀족이다.
이씨, 최씨, 노씨, 범씨, 왕씨 5개 성과 농서, 조군, 청하, 박릉, 범양, 형양, 태원 7개의 본관을 오성칠망(五姓七望)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들끼리만 결혼했고 외부 귀족가문과 결혼할 때는 막대한 '빙재(聘財)' 를 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명망은 최고 수준이고 배타성도 높아서 당나라 황실도 이들보다 격이 낮은 벼락 출세자 가문으로 여겼다.[13] 이들은 5대 10국 시절까지도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았으나, 후손들의 유학 실력이 형편없음이 드러나면서 그 후광도 빛이 바랐고, 과거제가 확대 실시되면서 서서히 묻혀갔다. 하지만 위에서 기술했듯이 이들 중에서 물려받은 가산을 후손들의 교육에 투자해서 과거제도에 적응한 집안들은 관료 가문으로서 생존해서 명문으로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인공이 범양 노씨이고
직급이 낮아도 이 성씨들은 특별 취급 받았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