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꽤 많은 시간, 관성으로 굴러간다.

태어났으니 살고,
살아 있으니 또 사는 것일 때가 많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위안하며 삶을 견디다 보면

누구나에게 한번쯤은 아주 특별한 순간이 찾아 온다.

혼자 끌어안고 있던 내밀한 고통을 모른 척,

그러나 넌지시 위로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내 불면의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으면 하는 사람을 조우하는 순간.

그 바람을 자각하는 순간.
그럴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관성적이고 따분하지만 그렇기에 평화롭기는 했던 내 삶에
새로운 우주를 들일 것인가.

아니면 단조로운 평화를 지킬 것인가.

그 선택을 용기라 부르는 건

그것이 내 삶을 완전히 뒤흔드는 일인 탓이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당장의 벅찬 행복보다 먼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한 번 사라지고 나면 내 삶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아주 큰 상흔을 남길 이 미지의 우주.

그것이 영영 두려워지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비로소 시작된다.

깊은 사랑은 때로 그렇게
두려움과 상실 속에 자라나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랑은 외따로 각각 완성될 수는 없다.

미완의 사랑은 깊어질수록 내 세상을 좀먹는다.

그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누군가는 진짜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것이 설사 서로를 상처내고 부수는 일일지라도,
용기를 내 전해야 한다.


오랜 시간 창조된 두 개의 우주가 오롯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상처가 날 수도 있는 법이라고.

상처를 보듬어 안을 누군가가 있다면 상처는 그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사랑은 언제나 지난한 투쟁 속에 완성되고

인간은 그 사랑으로 비로소, 삶을 산다.
사랑의 완성이 삶의 엔딩을 정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삶이란 그 후에도 계속 흘러가는 탓에.

그렇지만 사랑과 용기를 배운 누군가에게
그 연속 되는 삶은 분명 기회일 것이다.

나의 다른 우주가 휘청일 때 단단히 붙들어줄 수 있는 기회.
우리의 우주가 마침내 하나로 완성되도록 노력할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