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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펌)향수-계절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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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7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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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계절 내내 괜찮은 향수는 거의 없다

특히 한국은 사계절이 지랄 맞게 뚜렷해서 더욱 그렇다.
대구의 여름은 아프리카 초원지대보다 더 덥고
철원의 겨울은 시베리아 툰드라지대보다 더 춥다.

날씨 변화가 시1벌 너무 하드코어해서
다른 나라 살다 오면 귀국 첫 해에 온갖 질병을 다 겪는다.
단군 할배는 왜 하필 이 땅에 터를 잡았는가...


2. 모든 향료 물질은 기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더울 때 잘 작동하는 향료 물질이 따로 있다.
IFF사의 베르가말은 높은 온도에서 상큼, 쾌적하다.
아주 낮은 온도에선 변기 세정제 또는 오줌 지린내가 난다.
베르가말 뿐 아니라 대체로 시트러스 계열이 그렇다.

추울 때 잘 작동하는 향료 물질도 따로 있다.
지보당사의 초코반 TEC는 낮은 온도에서 달콤 부드럽다.
아주 높은 온도에선 토사물 냄새, 상한 음식 냄새가 난다.
초코반 TEC 뿐 아니라 대체로 구르망 계열이 그렇다.

향수 제작자들도 그걸 잘 알기에
여름철 향수는 높은 온도에 좋은 향료를 쓰고
겨울철 향수는 낮은 온도에 좋은 향료를 쓴다.
예를 들어 여름 향수의 단맛은 구르망 대신 과일을 쓴다.
겨울 향수의 신선함은 향신료나 꽃으로 표현한다.

이게 향수를 계절마다 다른 걸 쓰는 이유다.
단지 겨울이라 겨울 분위기 내려고,
여름이라 여름 분위기 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알맞은 계절이 지나면 그 향수의 냄새 자체가 달라진다.
블라인드 구매했다가 실패한 향수가 있다면 기다려봐라.
다른 계절에 뿌리면 전혀 다른 향이 나올 거다.


3. 모든 향료 물질은 습도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냄새 변화는 크지 않지만 분자의 활동성이 달라진다.
향료 물질들은 습한 날씨, 정확히는 공기압이 낮을 때에
활동성이 위축된다. 잘 안 퍼져나간다는 얘기다.
반대로 쾌청한 날씨엔 더 멀리까지 강하게 퍼져나간다.

그런데 활동성의 변화 폭은 향료마다 차이가 있다.
향수는 많게는 백 수십 가지 향료 물질의 조합이다.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두드러지는 향료가 다르다.
다시 말해 향수의 향기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매일마다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네 기분 탓에 그리 느껴지는 게 아니다.

이건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향수를 좀 써본 사람이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이 향수는 비오는 날 써야겠다”라든가
“이 향수는 맑고 화사한 날 써야겠다” 등등,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자연스레 알게 된다.


4. 그런데 한국의 기후 조건은 유럽과 다르다

이게 지금 쓰는 글의 핵심이다.
향수를 주로 생산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그 향수를 소비하는 한국의 기후 조건은
위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꽤 다르다.

그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은 여름이 저기압이고 겨울이 고기압인데
유럽은 반대로 여름이 고기압, 겨울이 저기압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여름이 습하고 겨울이 건조한데
걔네는 반대란 얘기다.
우리가 겪는 평균습도 70%의 장마철이 유럽엔 없다.

그래서 걔들은 대체로
여름 향수는 약하게, 겨울 향수는 강하게 만든다.
물론 겨울 향수에 무거운 분자가 더 많아서 그런 거지만
여름 향수를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되게끔 만들 수도 있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름은 약하고 겨울은 강하게 만드는 건
걔들은 여름에 향기 분자가 매우 활발하기 때문이고
겨울에는 향기 분자가 잘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걔네가 여름 향수를 강하게 만들면 민폐가 된다.
우리랑 정 반대다. 그래서 외국에서 향수를 사면
거기서 맡았던 냄새가 한국에선 상당히 다른 느낌이 된다.


5. 겨울 향수는 오히려 3월, 9월 말, 10월에 잘 작동한다

이 때가 프랑스, 이탈리아의 겨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걔들은 우리처럼 최저 영하 15도를 찍는 날이 거의 없다.
겨울이래봤자 최저 영하 2도~최고 영상 10도 쯤이다.
걔들의 겨울 기온은 한국의 3월 정도다.
습도도 얼추 비슷해진다. 대기질은 차이가 많지만.


6. 여름 향수는 5월에 가장 잘 작동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5월이 유럽의 여름과 비슷해서다.
맑고 쾌청한 날씨, 적당히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단 하나 차이가 있다면 유럽의 여름은 해가 훨씬 길다는 것쯤.
최근 몇 년간 유럽에 엄청난 폭염이 쏟아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한국의 5월이 걔들의 7, 8월이라고 보면 된다.


7. 한국의 여름(7, 8월)에 아쿠아계열은 아주 좋지 않다

덥지만 건조하고 쨍한 날씨에 아쿠아틱 노트는
시트러스나 풀, 푸제르와 적당히 매치만 시켜 놓으면
팡팡 터지는 수분감으로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한국의 여름, 특히 장마철에는 그저 물비린내가 난다.
심하면 땀에 섞여서 욕실 찌든 냄새나 하수구 냄새가 된다.
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경험적으로 알 거다.
다만 물 냄새 중에서 바다 냄새 계열은 조금 나은 편이다.
사람에 따라 특유의 짠내가 괜찮게 나오기도 한다.


8. 한국의 겨울에 딱히 잘 맞는 향수는 드물다

유럽의 향수 하우스들이 향수를 만들 때는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는 혹한기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추운 날에 향수 뿌리고 밖에 나갔을 때
냄새가 거의 안 느껴진 적, 다들 있을 거다.

물론 한국도 겨울 내내 엄청나게 춥지는 않다.
특히 이번 겨울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온화했다.
어지간한 향수를 어지간히 쓸 수는 있다.

그런데 고려 사항이 또 있다. 걔네는 겨울이 우기다.
겨울 향수를 강하고 멀리 퍼지도록 만든다.
한국은 겨울이 건기다. 안 그래도 강한 겨울 향수가
주변에 민폐가 될 정도로 너무 강해진다.

혹한기에 밖에 나가면 냄새가 잘 안 나는데
실내에만 들어왔다 하면 아주 시1벌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래서 겨울 향수는 어지간히 잘 만든 작품이라도
한국에 오면 느끼하거나 머리 아프다는 얘길 듣는다.
이게 겨울 향수들이 한국에서 인기 없는 이유일 거다.


9. 한국에서 인기 있는 향수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잘 팔린 향수는 전부
여름 향수인데 봄 가을을 대충 커버할 수 있는 향수,
그러면서도 물 냄새는 없거나 아주 약한 향수다.
또는 봄 가을 향수인데 여름을 대충 커버할 수 있는 향수다.
다들 잘 생각해봐라. 내 말이 맞다. 겨울 향수는 없다.

폴로 스포츠, 불가리 블루, 다비도프 쿨 워터,
CK 원, 아티산, 버버리 위크엔드, 겐조 로,
몽블랑 레전드, 돌체앤가바나 라이트 블루,
아쿠아 디 지오, 샤넬 알뤼르 스뽀르, 블루 드 샤넬,
블랙베리 앤 베이, 집시 워터, 모하비 고스트, 등등.

위에 나열한 것들은 노스페이스 잠바 마냥
거의 누구나 한번쯤 거쳐갔거나 지금도 쓰는 향수다.
그리고 이런 향수 하나로 사계절 내내 쓰거나
혹은 몇 개를 가지고 계절에 상관 없이 돌려 쓴다.
겨울은 야외활동 향기를 아예 포기한다.
어차피 겨울엔 실내에 있을 때가 더 많아지니까
한겨울에도 블루 계열 향수를 뿜뿜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모두 다 똑같은 향수를 매일 쓴다.
니치 향수라도 마찬가지다!
네가 쓰는 니치 향수 남들도 다 쓴다.
한국인이 냄비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잘 작동하면서도 적당한 품질을 갖춘 향수가
그만큼 드물어서 그럴 수 밖에 없다.

만일 2003년 봄에 태어난 향붕이가 있다면
너의 아빠가 월드컵 경기를 본 후 너를 만들 때
폴로 스포츠 아니면 불가리 블루를 입고 있었을 거다.
둘 다 외국에서 그리 좋은 취급이 아니지만
한국에선 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의 공통감각이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던
카샤렐 옴므, 머스트 옴므, 에스티로더 플래져 포맨
등등은 한국에서 도저히 먹히지가 않았다.


10. 한국의 기후 조건에서 잘 작동하는 향수

그렇다면 우리가 계속 파고 들어야 할 지점은 여기다.
앞서 언급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베스트 셀러들과
비슷한 기온, 비슷한 기압에서 최적의 성능을 내는 것.
그러면서도 공식 수입사가 없어서 아예 안 팔거나
혹은 팔더라도 아직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참고로 프래그런티카의 계절 정보는 큰 도움이 못 된다.
걔들의 계절과 우리의 계절은 어차피 다르므로
한국에 가져와서 직접 맡아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대강 봄여름가을에 적합하고
겨울 전용 향수는 확실히 아니며
아쿠아 노트가 없거나 약한 향수.
또한 평균 이상의 지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
(확산 범위는 안 봐도 된다. 어차피 다르다)
그리고 후추, 넛맥, 정향 등 향신료가 없거나 약한 것.
(향신료 노트 얘기는 다른 글에서 따로 얘기하겠다)

그런 향수를 찾아내면 거의 항상 상타를 친다.
값비싼 고급 향수들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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