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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에이티식스 1기 전체 정주행 후기(스포짱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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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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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2쿨을 안 올려준 왓챠를 원망하는 글을 쓴 적 있었는데, 결국 못 기다리고 라프텔로 달려갔어. 

멤버십 정기결제해야 해서 잠깐 망설였지만, 라프텔 초고화질 개쩔어. 자본주의 최고.


결제는 어젯밤에 했는데 지금 후기를 쓴다는 건 뭐다? 밤 샜다는 말이다ㅎ.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자기 싫은 그런 기분이라, 

여운이 가장 진하게 남은 지금 독방에 후기를 남겨. 


(어마어마하게 긴 글이니 짧게 볼 덬들은 바로 7번으로ㄱㄱ)




1. 작중 상황

1쿨 1화, 2화가 지루하다고 쓴 글을 지나가다 본 것 같은데, 지루하다기보다는...뭔가 이상한 느낌이었어. 

이 상황은 절대 정상이 아니다. 무언가 매우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확 오는. 쉽게 말해 위화감이 많이 느껴지는 장면들? 

전쟁이 매일 승전보만 울릴 수 있는 게 아닌데, 매일 전광판은 사망자0, 오늘도 승리라 말하고. 식재료가 부족해서 뭘 먹을 때 이거 합성인지 아닌지부터 물어보는데 장교들은 술담배에 쩔어 있어. 

겨우 16살 밖에 안된 여자애들에게 계속 맞선 요청이 들어와. 상대의 나이는 전혀 상관 안하고.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생산하라 강요하는 느낌...?


나중에 작중 공화국 군인들이 하라는 전투는 안하고, 타민족이라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내몰려 죽어가는 청소년들의 시체를 짓밟고 기름마냥 둥둥 떠다니며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게 나오지. 끊임없이 사람들을 안전하다고 세뇌하면서. 최대한 오래 정점에 앉아 저들 뱃속을 가득 채우려고. 


환경의 안전성을 기준으로 두 공간을 나누었을 때, 분명 안전하고 안락해야 할 새하얀 수도는 시퍼런 레기온들처럼 인간미가 하나도 없고.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주인공의 부대는 수도보다 더 안온하고, 자연 한가운데 있으면서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와. 정말 이질적이야. 


하얀 지배층들과 전장의 타민족들은 서로를 돼지라 부르며 모욕하는 게 일상이고, 

나중에는 본인들의 죄업이 드러날까 봐 제대를 앞둔 군인들을 위험한 사지로 내쫓지. 그렇게 11년을 보냈지. 

수명제한이 있는 레기온들이 대책을 찾을 거란 생각은 전혀 안하고. 다가오는 위협에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더라. 

레나가 각성하기 전까지는.


2. 레기온. 망령. 그리고 저승사자. 

작중 설정상 레기온들은 짧은 수명을 늘리고 지적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방에 널린 시체들의 머리. 정확히는 뇌를 이용하지.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목소리들은 레기온에서 반복재생되고, 작중에선 그 비명들을 '망령' 이라고 불러. 

그리고 동료가 그런 망령이 되지 않게, 주인공 신이 직접 총을 쏴서 동료의 뇌를 파괴해주고. 그런 신에게 붙은 별명이 '저승사자' 지. 


(나중에 2쿨 막바지, 키리야와의 전투 직전에, 신의 기체에 있는 목 없는 사신 무늬가 노우젠 가문의 문장.(정확히는 시조의 문장) 이라고 하더라. 신은 죽은 레이의 마크를 본따 정한 마크였지만, 동생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레이가 생전에 부모님께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을 걸 감안하면 레이는 그 해골 문장의 뜻을 '알고'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럼 결국 문장이 돌고 돌아 그걸 사용할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왔다고 볼 수도 있지.)


신은 맨날 무표정에 만사에 무심하고, 그나마 싸울 때 아주 약간 생기가 돌아. 

별생각이 없어 보이면서 동시에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생각을 '안'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매일 한시도 쉬지 않고 망령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상시 긴장 상태라 의도적으로 생각을 많이 안하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 

약 500여명의 동료들의 죽음을 보고, 그중 대다수를 제 손으로 보내주면서 생긴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본인에겐 엄청 부담이었겠지. 

안락사를 살인으로 보는 시각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신이 동료들을 편하게 해주는 그 행위는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살인이야. 빼도박도 못하는 살인. 다만 어쩔 수 없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살인자라 생각하고 있는 신이 꿈과 환상에서 본 동료들은, 망령이라기보단 신의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3. 연방정부와 살아남은 청소년들.

(대체 세간에 풀린 정보에 뭐라고 쓰여 있어야 십대 중후반 애들한테 어린이 장난감이 위문품으로 올까...?)

2쿨에서 주인공 일행을 구출한 연방정부는 에이티식스 '생존자'들에게 만반의 지원을 다 해줘. 전쟁 이외의 삶을 살아보라고. 너희가 원래 누렸어야 할 삶을 겪어보라고. 근데 대통령 관저에서 지낸 한 달간 애들 표정이 영 좋지 않더라. 좋은 옷, 좋은 음식, 넘치는 책들을 봐도 다들 수심에 가득 차 있어.

결국 다들 전쟁터로 돌아오게 되고. 차별하는 시선은 여기나 거기나 똑같다며 동정하지 말라 외치지. 

왜 다시 전쟁터로 돌아왔냐 하면 이유야 많지. 우선 자신들이 레기온에 대항할 수 있는 최정예들이니 뒤에 빠져만 있으면 앞에 선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뒤에 숨어 있으면 그 하얀 돼지들과 자신들이 다를 바 없다 여겨지고(살짝 트라우마 같기도...).


그리고 어른 군인들은 애들한테 차별적인 말이나 시선을 보내면서도 엄청 걱정해. 흑막일까 걱정한 게 미안할 정도로 엄청 생각하고 걱정해줘. 

애들을 사지에 보내놓고 팔자 좋게 뒤에 뻗어 있을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다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잠깐 의심하다가도 결국 믿어주고,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그리고 그 지원 덕분에 마지막화에 최후5인이 또다시 전원 생존할 수 있었지. 


그런 지원이 공화국에 있을 때 들어왔으면 더 많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애들의 양부 역을 자진한 대통령도 그래. 

제국이 무너진 자리에 세워진 민주 정부의 대통령이면 여러 모로 정치 수완이 장난 아닐 텐데. 

동시에 애들을 지켜야 한다는 인간의 도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면 살짝 미친 사람 같으면서도 애들 앞에선 그냥 순박한 아저씨야. 

그냥 추측인데, 이 아저씨도 원래 가정이 있었지만 전쟁에 휘말려 잃은 게 아닐까 싶어. 그래서 애들한테 매우 잘해주는 거고. 애들도 그걸 알아서 귀가할 때 인사 받아주고 함께 식사하고 그런 거겠지. 

개인적으로 오래 살아줬으면 좋겠네. 애들에게는 싸움이 끝나면 돌아올 집이 필요하니까.


4. 주인공의 동료들

1쿨 오프닝 후반부에 붉은 꽃밭에 하나 둘 죽은 사람이 늘어나는 걸 보고 아, 많이 죽겠구나 싶었어. 

쟤는 지금 살아 있지만 10분 뒤에 죽겠구나. 얘는 이번 화에 살아 있지만 다음 화에 죽겠구나. 

불꽃놀이하면서 행복하게 잘 노는 장면이랑 레이저 맞아 죽는 장면을 함께 보여주면 어떡해 못된 노ㅁ..여튼.

그래서 신을 제외한 조연 전부에게 되도록 정을 주지 않았는데, 갈수록 꽃밭에 사람이 빽빽하게 차는 걸 보니 되게 착잡했어. 

마지막에 하루토? 그 인물이 중앙에서 다른 동료들에게 걸어가는데, 그 위치가 꼭 자리 다 찼음. 더 이상 새 사람 안 받아요. 라고 말하는 듯한 위치더라. 

이제 더는 죽는 사람 없다고. 남은 동료들 죽을 일 없다고. 딱 잘라 말해주는 듯 해서 안심했어. 

그래도 걔는 살 줄 알았는데. 


수가 많이 줄었지만 항상 동료들이 곁에 있는 신과 다르게, 레나는 뜻을 같이 하는 동료가...없지.

1쿨 끝날 때 아네트의 협조를 얻어 일을 진행하지만. 그것도 아네트의 자의라기보단 반 협박이었지. 


이때 연출이 많이 인상깊었는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레나는 아네트의 죄책감을 이용해 회유하고, 넘어간 아네트가 레나를 붙잡으며 비를 맞아. 

아네트가 서 있는 현관을 진실을 외면한 안정적인 삶, 레나가 맞는 비를 진실을 직시하고 겪는 시련이라 생각하면 비를 맞았다는 건 더이상 아네트는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장면 아니었을까.


그나마 2쿨에서 레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다행이야. 그들 모두가 에이티식스에게 우호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폐허가 된 수도에 저거노트가 버려진 걸 보면 그 때 다들 인종 신분 상관 안하고 레나의 지휘 아래 목숨 걸고 싸웠다는 뜻이겠지. 


5. 레나

누가 뭐래도 1쿨 주인공은 레나. 1쿨 전체가 레나의 성장기라 볼 수 있지. 

레나는 아버지와 레이의 영향을 받고 에이티식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정예부대(?)인 스피어헤드의 핸들러가 된 후로 매일 밤 연락해 안부를 묻고 이전 전투 기록을 복습, 연구하는 등. 전문용어로 라포 형성(?)을 하지.

그러다 어느 날 전사자가 나오고, 울컥한 세오가 막말을 퍼붓고(아마 3화 막바지였는데, 전사자가 나온 충격과 갑작스런 막말에 안절부절못하는 레나가 인상적.),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정리한 레나가 다시 연락해서 부대원들의 이름을 묻고, 좀 더 부대원들과 가까워지고. 

신의 능력의 영향으로 망령들의 목소리를 들은 날에는 매우 힘들어하지만 피하지 않고 함께 맞서 싸우기로 맹세하고,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레나는 바쁘게 움직여. 


그리고 레나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신이 엄청 큰 역할을 하지.

전대장과 직속 핸들러라는 위치 때문도 있지만, 부대원들이 경계하느라 비협조적이고, 레나 본인도 아직은 에이티식스의 실상에 대해 잘 모르고, 근데 신이 대화할 때 공적, 사적으로 예의를 지키며 조곤조곤 잘 말해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는 신이 더 대화하기 편했을 거야. 

막말 사건 이후 이름을 물을 때, 레나의 사과를 받아주고, 대원들과 소통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고, 심지어 여러모로 힘들었을 날에는 신이 먼저 연락해줬지. 


근데...군대에서 레나 편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아빠 친구분은 그릇된 일인 걸 알면서 제대로 도와주는 건 없고. 아네트도 어쩔 수 없다면서 도와주지 않고. 

어머니는 나오진 않았지만 안 도와줄 게 뻔하고.

흰돼지들의 비웃음은 그렇다 쳐도 주변에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동료 하나 없이 전장의 에이티식스들을 위해 분투하는 게...

되게 외로워 보이더라. 


국경 지대 레기온 접전지도 전장이지만, 레나가 근무하는 수도도 전장이었어. 

레기온 접전지는 인류를 위한 전장, 수도는 에이티식스들을 위한 전장. 


아무도 레나를 위해 움직여주지 않는데, 그런 레나의 편이 되어준 사람들은 목소리만 알고 얼굴은 모르는 핍박받는 에이티식스들이고. 

게다가 시한부이고. 1쿨 막판에 불이익을 감안하고 포격을 해서 그들을 살렸지만, 결국 한 사람도 남김없이 떠나버렸지. 

그 때 레나가 무작정 수도를 달리면서, 모자고 구두 굽이고 신경 쓰지 않고 자기도 데려가라 외치는 게, 

사실 엄청 외로웠다고, 너네마저 가버리면 나 진짜 혼자 남는다고, 제발 가지 말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프더라. 

주변은 허연 돌덩어리들인데 무전기 속 풍경은 붉은 가을꽃밭이고, 결국 무전이 끊어지기 직전에 신이 먼저 가겠다 말을 남기고.


나중에 그들이 떠난 흔적을 둘러보면서, 레나는 그들을 따라잡겠다 다짐해. (멈춰서서 발을 못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금방 털고 일어났으니 가산점.)


2쿨에서 이야기 중심이 레나에서 신으로 넘어가면서 레나의 행적이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고, 다가오는 위험에 대비하면서 

1화 대비 레나가 엄청 성장했다는 게 확실히 보이더라. 

공화국의 (정신이 제대로 박힌)남은 군인들과 에이티식스들이 레나를 중심으로 뭉치고, 블러디 레지나라 불리며 연방의 도움이 닿을 때까지 지옥이 된 공화국에서 잘 버텼지. 정말 장하지. 덕분에 그 대형 나비 잡을 때 도와줄 저력이 되었지. 


손 안에 먼저 떠난 동료들의 얼굴 그림을 손에 쥐고, (아마 끝까지 죽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을 거야. 그래서 끝까지 유리상자에 그 얼굴들을 넣지 않았고.) 

추모공원에서 그들이 살아 당도했음을 확인하고.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렇게 홀로 애쓴 레나에게 깜짝 선물이 찾아왔지.

끝까지 살아 남은 동료들이. 오래도록 그리워한 신이.


6. 신

1쿨 주인공이 레나라면, 2쿨 주인공은 신에이. 누가 뭐래도 당연히 신이지. 

1쿨 후반부에 레이와 결판을 지을 때, 신은 평소에 짓던 무표정이나 옅은 미소는 흔적도 없이 아주 사악하게 웃어. 

(정말 사악해. 누가 빌런인지 모르겠어. 겁나 사악하게 웃어.)

별 생각이 다 들었겠지. 날 증오하는 형이 날 죽이러 왔구나. 이판사판이다. 기왕 죽는 거 너 죽고 나 죽자. 그런 심정이었겠지. 

근데 자신을 증오하는 줄 알았던 형이 사실은 자신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고, 심지어 미안하다 말하고 떠나고. 


이것만 해도 매우 멘붕인데, 어찌저찌 형을 성불시키고 나니 삶의 목표가 없어...! 


이대로 흘러가다 죽을 생각이었는데 강제로 삶이 연장됬어...! 더욱 삶의 목표가 없어!! 


익숙한 전장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어!!


가족은 다 죽었고, 동료들은 이전 동료 새로 사귄 동료 모두, 다들 자신보다 먼저 떠나고, 

그 동료들 떠나는 길을 자신이 직접 닦아줘야 하고. 

연방에서 만난 프레데리카가 자신을 키리야와 겹쳐 볼 때 장단에 맞춰 삶의 의미를 찾아볼까 잠깐 생각했다 관두고, 

심지어 죽은 친구의 가족은 자신을 원망하고. 


소식이 끊긴 레나는 사망으로 추정되고.


신은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탓에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있었을 거야. 

예전엔 형을 성불시키겠다는 목표 하나로 겨우 살았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고. 

다시 제국의 전장을 헤메고, 초거대 병기를 부수는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면서, 신은 아마 죽지 못해 살았겠지. 

동료들 중 가장 오래 함께한 라이덴은 얘가 아슬아슬한 게 불안해서 계속 잔소리하고, 다른 동료들도 어떻게든 해보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지. 


2쿨 후반, 키리야를 치는 임무에서 신은 그래도 이번엔 동료들의 염려를 듣고 혼자 돌격하지 않아. 

(주변 상황 안보고 덤빈다거나 혼자 적진에 뛰어들기처럼 위험한 전적이 있었으니 동료들이 엄청 걱정이 많았지.)


하지만 하나 둘 낙오하고 결국 혼자 키리야를 상대하게 돼. 그때 신이...(이전에 다른 화들에서 가끔 나온 표정이었지만), 완전 광기에 찬 얼굴이었어. 

더는 물러날 곳 없다. 또 동료들을 전부 잃었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 뭐 그런 표정? 

차라리 형을 만났을 때 지은 미친 미소가 더 생기 넘쳤지. 


그러다 겨우 살아남았을 때, 레이의 이름표를 어떻게든 잡으려고 애쓰는 장면은 신이 여전히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뜻하지. (벨트를 풀어 임마!!)

이전에 항상 이름표를 지니고 다니는 건 그냥 가족의 유품을 몸에 지니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걸 어떻게든 잡으려 하는 걸 보니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안타깝더라. 


그랬으면서 정작 레기온한테 진짜 죽을 뻔했을 땐 살려고 발악하며 제 목을 쥐는데, 거기서 신이 진짜로 바랐던 게 나오지. 

사실 엄청 외로웠던 거야. 가족들 동료들 친구들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떠나는데, 나만 두고 떠나지 말라고. 

더는 혼자 남겨지기 싫다고. 자신을 기억해주겠다 약속한 레나도 이젠 없는데, 혼자 버티기 너무 힘들다고. 혼자 살고 싶지 않다고. 

그게 신의 진짜 소망이었던 거지. 


그러다 공화국의 어느 여성 장교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줄 때, 지칠 대로 지친 신은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말을 하며 살짝 날을 세워. 

하지만 우연히 통신 장치의 주파수가 맞으며 들려온 목소리는...


7. 구원(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으면서 다시 구원이라 부르고 또 사랑이라 읽는)

이 후기글을 쓰게 된 이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서사.


극초반, 레나와 에이티식스 대원들이 매일 대화를 나눌 때, 레나는 특히 신과 자주 대화하지. 

신은 처음엔 좀 귀찮아하는 것 같았는데, 2화 후반에 살짝 웃더라? 

레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나쁘지 않다는 뜻이지. 어찌 보면 즐겁다는 뜻이기도 하고. 


(둘이 대화할 때, 군이나 전쟁 같은 외부 요소 전부 빼고 순수하게 바라보면, 매일 전화로 대화하는 펜팔친구 같은 느낌도 있음. 

게다가 둘 다 또래 소년소녀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이끌리겠지. 알게모르게 서로에게 감기겠지.)


레기온이 많이 몰려온 날, 망령들의 목소리에 레나가 패닉에 빠졌을 땐 신이 먼저 레나를 걱정하고. 

레나는 매일 망령에 시달리는 신을 걱정하고. 

신은 레나를 밀어내지만 레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러다 어느 날 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암시하는 말을 하고(그 대사 들었을 때 신의 표정이 궁금했는데 아쉽...)

레나 컨디션이 걱정되었던 신이 먼저 연락하는 일이 잦아지고(내가 알기론 남자가 먼저 연락하고 그러는 건 여자한테 진짜 관심이 있다는 뜻이라는데...), 

불꽃놀이 하던 날엔 서로 추억 얘기도 하고, 

마음이 풀어진 신은 자신들을 기억해달라 무심코 말해버리지.


결국 찾아온 이별하는 날, 신이 말한 '먼저 가겠다'가 '자신을 맡긴다'는 뜻이라고 작중에 나오는데. 

나는 이 말 뜻이 '먼저 길을 닦아둘테니 어서 따라오세요.' 또는 '내가 죽어도 나를 기억해줘요.' 중 후자라고 생각해. 

레나가 신에게 의지한 만큼 신 역시 레나에게 많이 의지했고, 레나가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래서 공화국이 무너졌다는 소식과 특별 임무를 동시에 듣던 날, 신은 레나가 먼저 저편으로 사라지는 환상을 본 거지. 

왜 먼저 가버렸냐고 살짝 원망하면서. 애니에서 그 장면 연출에 붉은 꽃잎이 흩날리며 신이 엄청 아린 표정을 하고, 유리창의 물방울이 눈물처럼 흐르는데, 

신이 조용히 첫사랑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 (레나 안죽었다고 이자식아)


레나 역시 영영 이별한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부단히 노력해왔지. 애써 그들이 죽지 않았다고 믿으며, 

아득바득 애써서 겨우 살아남았고, (레나는 몰랐지만)신을 구하러 올 수 있었지. 


애니에서 푸른 나비로 덮인 들판이 레나가 가는 걸음대로 붉은 꽃밭으로 변하는데, 그 꽃이 신레나가 이별할 때 피어있던 그 꽃 이더라. 

결국 이별할 때 피었던 그 꽃 벌판에서 재회한거지. 


그제야 작중 푸른 색은 레기온, 죽음이고, 붉은 색은 인간, 삶. 을 뜻하는 걸 알아챘어. 

푸른 죽음에 덮여 있던 신이 레나가 몰고 온 붉은 삶에 둘러쌓이는. 

레나는 신이 과거에 해준 말들 덕분에 성장했고, 위험에서 살아남았고, 다시 돌아와 신을 구해주는. 


신은 처음엔 레나의 목소리를 듣고 표정이 변하고, 

다음엔 레나의 이름을 듣고 나서, 어두운 주변이 순식간에 환해져. 

우선 레나가 살아있음에, 그리고 자신과 동료들이 걸어온 그 길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준 레나 덕분에 신은 다시 삶의 의지를 얻어. 

(무언가 할 말이 엄청나게 많은 느낌인데 차마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ㅠㅠ)


그리고 나중에 드디어 레나와 정식으로 재회했을 때, 신은 그 때 안 밝힌 자신의 정체를 밝혀. 

(이해는 돼. 피투성이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왔으면 꼴사나운건 둘째치고 레나가 놀랬겠지...)

신이 (첫사랑)레나를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면, 

레나는 (첫사랑)신과의 재회를 통해 외롭게 걸어온 그 여정의 보상을 얻은 셈이지. 


이게 쌍방구원이 아니면 뭔데. 

쌍방구원이지 아니면 뭔데!!!!


8.연출

(인상깊은 연출들을 되는 대로 적어보자면.)


레나가 에이티식스를 동정하나 무지하던 시기엔 화병에 백합이, 친분이 쌓이고 하나 둘 죽음을 겪을 때마다 늘어나는 각양각색 꽃들.

그리고 2쿨 오프닝에 나온 머리 없는 시체들의 머리 자리에 대신 피어난 꽃들. 아마 무덤, 묘비 대신이겠지. 


레나가 부대원들의 이름을 묻는 장소는 전사자들을 기리는 추모공원. 정작 에이티식스들은 무덤을 가질 수 없어 신이 기체 파편을 묘비 대신으로 지고 다녔는데. 

둘의 위치와 상황이 대비되어 더욱 안타까운 장면.


레나가 신을 구하기 위해 미사일을 날리고, 레이의 환상 속 따귀를 때리는 어린 레나와 동시에 날아와 박힌 불발탄. (레이는 불발탄을 날린 게 레나인 걸 모르지만 그게 그거지 뭐.)


싸우다 쓰러진 파이드의 카메라에서부터 아래로 갈라진 틈이 눈물처럼 보이는 연출.(파이드 살아서 다행이야ㅠㅠ)


에이티식스 대원들이 떠난 기찻길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레나. (그리고 아마도, 2쿨 오프닝에서 레나가 그 너머를 바라볼 때, 뒤에 서서 설마 하는 표정으로 레나를 바라보는 신. 2쿨 내용 암시라고 생각.)


연방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때, 앙쥬의 뒤로 지나가는 죽은 연인을 닮은 사람과 그의 연인. (앙쥬가 전쟁때문에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암시.)


다시 전선에 투입된 신을 연방의 군인이 말릴 때, 둘 사이에 자리잡은 큰 레긴레이브. 그만큼 둘의 심리적 거리감이 멀고 무겁다는 뜻. 


키리야를 상대하러 갈 때, 살짝 다툰 신과 라이덴의 그림자가 한 사람처럼 보이는 연출. (그만큼 둘이 서로를 많이 걱정한다는 뜻이겠지.)


레나가 하염없이 바라본 그 끝없이 이어지는 기찻길이 마침네 끊어진 자리에서 재회한 동료들. 


마지막에 손으로 만든 86 기호. (왜 뭔데 왜 니네 손 가까워지는데 손 잡으려 한거야 뭐야)


9. 남은 궁금증.

9-1.원작에서 노우젠 가문 이야기가 좀 더 나왔으면. 만약 신의 부모님이 가문을 나오지 않고 계속 제국에서 살았다면. 노우젠 가의 소년들은 제국에서 프레데리카의 가신으로 살았을까, 라는 내용의 if외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 가문의 능력에 대한 설정이 더 풀렸으면. 전쟁 다 끝나고 레기온들 전부 없어졌는데, 동시에 능력이 사라지면 (원상복구를 못했으니까.) 아쉽고, 여전히 환청이 들린다면 큰 문제니까.

근데 신은 할아버지 만날 생각 없나? 검색해보니 살아계신다는데? 기억은 없어도 예의상 한 번쯤 찾아 뵙는게 이치에 맞지 않나...?


9-2.그 고양이는 난리통에 어떻게 살아남았나. 레나가 대피할 때 데리고 갔었나?


9-3.레이의 철조각에 이름은 누가 새겼나. 신은 새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9-4.연방으로 온 공화국 출신 군인들의 거처는 어떻게 되려나...? 레나 집은??


9-5.원작 정발이 빠를까 애니 2기가 만들어지는게 빠를까. 


9-6.이거 메카물이었어...? 전쟁물인줄 알았는데???



10. 이제 약 4시간 걸린 후기글을 마무리하려고 함. 

애니 재탕하다가 더 쓸말이 생겨서 달려올 수도 있지만, 이제 이걸로 마무리하려고. 

애니방 덬들이 에이티식스 영업 안했으면 이 명작을 평생 모르고 넘어갈 뻔했네ㅎㅎㅎㅎㅎ


이거 원작 결말이 어떻게 날 지 모르겠지만, 난 주인공들이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어. 

살아서 오래오래 사랑하고, 원하면 아이도 낳고, 그동안 둘을 괴롭힌 사람들 보란 듯이 아주아주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럼 이걸로 후기글 끝!





근데 이거 사담이 너무 많아서 잡담으로 달았는데 후기로 바꿔도 되려나...?

+오케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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