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꼬깃해서 짤이 안 깨끗하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챙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역도 많고 서툴러!!!!! 피드백 해준다면 고마워 ♡
단체 포토북 인터뷰 가끔 번역해서 올렸는데 일곱명 다 끝내게 되어서 부끄럽지만 올려 보게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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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이치 씨는 굉장히 샤이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어릴 때부터 그랬나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무엇이든 일등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는 아이였어요.
적당히 운동 신경이 좋았던 것도 있고, 단거리도 장거리 달리기도 빨랐고, 별로 연습을 하지 않아도 1등이 될 수 있으니까, 그 이하의 순위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기분이 강했어요.
오기였네요.
피아노나 수영 등, 몇 가지 배우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원래 유치원 선생님이기도 하고, 피아노를 좋아했던 것도 있고, 형과 여동생도 배우고 있었는데요, 저 자신은 피아노에 흥미 없어서.
하지만, 어린 마음에 남자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게 멋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던 걸 기억하고 있어요 (웃음)
여자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아이가 많지만, 남자는 드문 편이니까, 피아노를 친다면 멋있고, 주목되고, 인기가 있지 않을까 착각했었어요 (웃음)
뭐든지 일등이 되고 싶었던 것은, 지는 건 분하다는 것도 있었지만, 인기 있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웃음)
공부는 자신 없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 스포츠 만능의 아웃도어계 소년이라고 생각했더니, 집에서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네요.
제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열중할 수 있었어요.
- 실제로, 초등학교 때는 인기가 많았나요?
그 시기가 가장 인기 절정이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웃음)
발렌타인 초콜릿을 여러 개 받고 있었으니까, 그 시기의 저는 인기 있었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웃음)
그렇다고 해도, 지기 싫으니까, 친구끼리 초콜릿의 개수를 겨룰 때는, 허세를 부려서 부모님이나 친척에게 받은 것까지 개수에 넣고 있었어요 (웃음)
다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샤이한 성격이 되어 버리고, 여자와 별로 얘기하지 않게 되었어요.
남자끼리라면 전혀 아무렇지 않았지만.
분명 사춘기의 시작이었겠죠.
- 과묵하고 샤이한 남자는, 여자가 보면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가 있어서, 반대로 인기 있었을 거 같아요.
저는 절대 그런 느낌은 아니고, 아무튼, 여자와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어찌할 수 없었어요.
어쨌든 긴장해버리니까, 여자에 서툴렀어요.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분명 그것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서 온 건지도 모릅니다만.
제 선입견일지도 모른다고 느낀 건, 최근이에요 (웃음)
- 형과 여동생의 사이인 삼 형제의 중앙이라는 것이, 자신의 인격 형성에 영향이 있었나요?
초등학교 시절은 2살 위인 형을 좋아해서,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고, 정말 사이가 좋았어요.
형이 배우 비슷한 일을 조금 하고 있었으니까, 연예 분야에 흥미가 생기기도 하고, 형이 듣는 음악을 듣고.
다만, 형과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중 3의 형과 비교되는 일이 많아지게 되어서.
이 시기부터 형과 조금 거리를 두게 되고, 별로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어요.
- 선생님이나 선배로부터 "이마이치 군의 동생"이라고 불리는 것이 싫었나요?
형은 활발하고, 꽤 인기가 있어서, 비교당하는 그때의 저는 분한 거였죠.
누군가에게 "형이랑 전혀 안 닮았네"라고 들으면, "별로 닮지 않아도 되잖아"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 사이는 좋은데, 제대로 소통이 안 되어서, 서먹서먹하게 되어 버린 거죠?
네, 사이는 괜찮았는데, 용건이 없다면 말하지 않게 되었어요.
2살 차이는 미묘한 나이 차이이고, 나이 차이가 적은 남자 형제만의 독특한 관계가 있는 거죠.
5살 아래의 여동생은 피아노 레슨에 갈 때도 자전거로 같이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았고, 어릴 때는 엄청 귀여워했어요.
여동생과 저는 얼굴이 닮았다고 자주 듣네요.
지금, 여동생은 22살인데, 좀 건방진 말도 하게 되었어요 (웃음)
그런데, 요즘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형이나 부모님과 저의 중개 역할이 되어 줘요.
- 부모님은 어떤 분이세요?
어머니는 아주 꼼꼼하고 섬세하고, 아버지는 한 가지에 집중해서 자신이 납득이 갈 때까지 해내는 성격으로, 저는 두분의 성격을 물려 받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신용을 잃으니까, 거짓말은 절대로 안 돼" "상식적으로,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은 하지 마라"라고 말했었어요.
교육에 열심이라, 가르침이 엄했으니까,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방에 불려가서 무릎을 꿇고 있었고, 어떤 때는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은 적도 있어요.
-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몹시 화낼만한 일을 했을 텐데, 그때 제가 도대체 뭘 했는지 생각이 안나요....
하지만,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는 것이 굉장히 아팠던 건 잘 기억하고 있어요.
어머니도 그럴 때는 아주 엄했기 때문에, "반성해라"라며, 집 밖으로 쫓아내고, 현관을 잠그고 있었어요.
하지만, 몇 차례 혼나면, 바깥에 나오는 것도 익숙해지죠.
잠시 동안은 현관 앞에서 울고 있습니다만, 문득 정신을 차리거나, 우는 것이 싫증나기 시작하면, 눈치채지 못하게 밖에서 살며시 문구멍을 들여다보면서 집 안을 보다가, 문 너머로 부모님의 발소리가 들리면, 곧 문이 열릴 거라 생각해서, 반성하는 척을 했어요.
아이가 한 것이니까, 분명 부모님에게는 들켰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웃음)
- "이마이치"라는 이름은 드물죠?
지금까지 친척 이외에 "이미이치 씨"를 만난 적이 없어요.
토사카도 희귀한 성씨여서, 어떤 라디오에서 이마이치와 토사카의 어느 쪽이 인원이 적은 성인지를 조사했더니, 이마이치는 일본에 1,000명 정도, 토사카는 5,000명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일본에 1,000명 밖에 없다면, 전원의 뿌리가 어딘가에서 연결 돼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今市 (이마이치)
각지에서 이마이치 마을을 흔히 볼 수 있다.
현 후쿠오카 현의 일부와 오이타 현 북부에 있는 부젠 국 우사 군의 *호족으로 보인다.
최근, 일본 열도의 서쪽에 다수 보인다.
*어떤 지방에 토착한 돈 많고 큰 세력이 있는 일족
성씨 순위 - 8,407 위
약 970명
登坂 (토사카)
요네자와 번, 현 니가타 현인 에치고 등에 보인다.
좁은 언덕이나 사이에 끼워진 비탈길 등이 어원.
성씨 순위 - 2,652위
약 5,300명
(각 20151106 / 20160818 기준)
- 이마이치 가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거슬러 올라가면, 아무래도 가고시마 쪽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미수(88세) 축하 행사가 교토에서 있어서, 중학생 때 이래 만났었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우리 부모님도 없고, 지금의 나도 없을 거라 생각했더니, 제 뿌리가 굉장히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어요.
요즘 계속 제 조상이 궁금하네요.
- 노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쯤인가요?
처음 친구들끼리 노래방에 간 중학교 1학년 때네요.
친구랑 노는 것이 즐겁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노래방에 가고 있었는데요.
노래란 즐겁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쯤이었어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EXILE의 데뷔곡 "Your eyes only~뚜렷지 못한 나의 모습~"(Your eyes only〜曖昧なぼくの輪郭〜)을 듣고, ATSUSHI 씨의 노랫소리에 넋을 잃었어요.
EXILE가 데뷔한 후로는, 노래방에서도 EXILE의 노래 외에는 부르지 않게 되었고, 저는 ATSUSHI 씨의 파트밖에 부르지 않았어요.
- 누구도 부를 수 없게 했어요?
친구들도 EXILE을 좋아했는데요, 제가 ATUSHI 씨를 동경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건 내가 부를 거야! 라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으니까, 모두 그걸 감지하지 않았을까요 (웃음)
- 이마이치 씨가 가장 제일의 EXILE 팬, ATSUSHI 씨의 팬이라고, 친구들도 알아주고 있었군요.
아마, 그랬다고 생각해요.
당시에 EXILE의 CD를 전부 샀었고, 매일 EXILE의 노래를 불렀고, EXILE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EXILE 마니아였어요.
EXILE과 ATSUSHI 씨의 노래를 너무 좋아했는데, 제 노래가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뒤늦게 안 것인데, 제 고향의 중학교의, 옆 중학교에 MAKIDAI 씨, 또 그 옆에 있는 중학교에 MATSU 씨가 다녔어요.
USA 씨의 아버지가 근처 고등학교 졸업생이고, 고향 시민관의 내부가 잘 보이는 곳에서 EXILE이 연습하고 있었다는 걸 듣고서, TV 속에 있는 EXILE은, 당시의 저에게 있어서 정말 먼 존재인데, 사실은 나와 가까운 거리에 모두가 오신 걸 알았을 때는, 묘한 인연을 느꼈어요.
- 게다가, 여자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샤이했던 소년 이마이치가, 스테이지에 서서 몇만 명 앞에서 노래하게 됐으니까, 인생, 뭐가 일어날지 모르는 거네요.
네, 데뷔했을 때, 고향 친구는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저를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수줍어하고, 긴장했었는데, 인생은 모르네"라며, 놀랐어요.
다른 사람 앞에 나서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노래 부르고 있을 때는 제게 자신이 생기면서, 또 다른 제가 되었으니까.
제가 계속 어렵다고 느꼈던 것들 보다,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3 때, EXILE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절대로 여기 없었을 거라고 새삼 생각해요.
- 그런데, 이마이치 씨가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요?
제가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17~18살 때에요.
원래 수염이 적고, 자라지 않았었는데, 처음 계기는 수줍은 저를 감추기 위한 수염이라기보다는, 주위에서 수염을 기르는 것이 유행하고 있어서, 나도 길러보자고 한 거죠.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장인(職人,기술자)이 되어 있었으니까, 주위에 어른이 많은 것도 있어서, 나이보다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특별히 버틴 것은 아니었는데요, 반들반들하기 싫다는 기분도 있었고, 남자답게 보이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동급생들보다 빠르게 사회에 나온 것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가요?
그런 멋진 이유는 아니에요.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아니지만, 그때의 저는 대학에 가는 사람들을 부정하고 있었어요.
제대로 목표를 갖고 공부하고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대부분 학생은 공부도 하지 않고 그저 껄렁껄렁 놀러 가고 있을 뿐 아닌가, 라고.
너무 치우친 이미지를 갖고 있었네요.
그렇다면 나는 대학에 가지 말고 내 몸을 쓰는 육체노동을 하자고 결정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그만두는 것에는 아무런 저항도 없었어요.
샐러리맨보다도 장인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어딘가에 있었고, 자유롭게 쓸 돈도 필요했어요.
그 나이에 다른 직종보다 급료가 좋았던 용접공이 되었어요.
- 고등학교를 그만둘 때는, 부모님께서 반대하셨겠네요?
그때의 저는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고, 허세를 부리면서 부모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않았으니까, 폐를 끼치기만 했죠.
그 시절의 저를 만난다면, "똑바로 해!"라고 말하고 싶어요 (웃음)
하지만, 그때의 제가 있으니까,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특히 데뷔하고부터는, 최대한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옛날 일이 아닌데, 사람이 이렇게 바뀌다니 자신도 놀라고 있어요.
- TAKAHIRO 씨가 보컬로 결정된 2006년 보컬 배틀 오디션에서는, 2차 심사에서 낙선했어요.
오디션에 응모했던 이유는, 좋아하는 EXILE의 오디션이었다는 것도 큰 이유였는데요, 그저 저의 기량을 시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 친구에게는 오디션을 받는 것을 이야기했었나요?
아뇨, 저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오디션을 보는 나"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주위에는 전혀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1차 심사에 합격했을 때는 기세를 타서, 일하는 현장에서 "어쩌면, EXILE에 들어갈지도 몰라"라고 말하기 시작해서요 (쓴웃음)
그 쪽이 부끄럽네요 (웃음)
2차 심사 합격자는 모바일로 이름이 발표되게 되어 있었는데, 전혀 제 이름은 보이지 않았고, 집에도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왜 EXILE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말한 걸까, 떨어지니까, 상당히 멋이 없었죠 (쓴웃음)
- 좌절했네요.
아, 완전히 (웃음)
하지만, 낙선은 제가 크게 바뀌는 계기를 준 것 같아요.
굉장히 아쉬웠지만, 그 분함 덕분에, 꿈을 이루자고 진지해졌고,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내 꿈에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무엇이 있어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힘도 얻었어요.
그것이 저의 새로운 스타트가 되었으니까, 낙선해서 다행이었죠.
그렇다고 해도, 절대로 그때의 내 노래로는 합격하지 않았겠지만 (쓴 웃음)
인생에서 처음 본 오디션이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마치 갓 태어난 어린 사슴처럼 다리를 떨면서 "Lovers Again"을 불렀어요 (웃음)
- 다음의 보컬 배틀 오디션이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동기를 유지하고 있었나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그저 그 마음만 강했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때마침 옆 중학교의 한 살 위 선배가 EXILE 보컬 배틀 오디션을 받았어요.
그 선배가 나중에 저도 받았던 걸 알고 연락을 줬죠.
"함께 노력하자"라며 격려를 받거나, 보이스 트레이닝에 가는 게 좋다고 조언해줘서 함께 다니거나, 매일 연락을 하고, 노래방이나 밥 먹으러 가자고 권해주고.
저를 정말 아껴줬어요.
선배의 집에서는 EXILE의 라이브 DVD를 보면서, "언젠가 이런 큰 회장에서 노래하고 싶어"라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아무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의 등을 밀어줬으니까, 그 선배가 없었다면 도중에 마음이 약해졌을지도 몰라요.
- 그 선배와는 지금도 교류가 있나요?
네, 고향에 갈 때는 연락을 해서, 가능하면 만나고 있어요.
지금은 결혼해서, 곧 3번째 아이가 태어나요.
회사의 사장님이 되어서, 가족을 확실히 지키고 있는 아버지네요.
- 2010년 보컬 배틀 오디션에서는 파이널까지 가는, 최종 심사를 통화해서, 이마이치 씨는 토사카 씨와 함께 산다이메 J Soul Brothers의 보컬이 되었어요.
합격했을 때는, 꾸준히 계속해나가는 것은 힘이 된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음날에는 녹음했으니까, 즐거워하는 것도 순간이었네요.
아무튼, 제가 모르는 것투성이, 할 수 없는 것투성이라, 어느 현장에 가도 처참하게 당하고 있었어요.
특히 데뷔한 시절은, 눈앞에 있는 것을, 그저 미친 듯이 힘껏 할 뿐.
지금까지도 잘 기억하는 것은, 데뷔 전에 토요타 스타디움에서 피로연을 한 날이에요.
처음에 퍼포머가 춤을 추고, 그 후에 보컬 두 사람이 팝업으로 등장한다는 흐름이었는데, 스테이지에 등장 후, 음악에 맞춰서 앞으로 몇 발자국 나아가다 멈춘다는 그런 단순한 동작도 저는 좀처럼 할 수 없었어요.
퍼포머는 카운트에 맞춰서 춤추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 정도의 것은 연습하지 않고도 간단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카운트를 타지 못했어요.
몇번 이나 조언을 주신 NAOTO 씨는, 굉장히 안타까웠을 거로 생각해요.
피로연의 전날 밤은, 호텔 방에서 혼자 카운트를 맞추면서 수차례 연습하고 실전에 임했는데요, 딱딱하게 긴장해서, 제대로 했는지 어쨌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웃음)
- 분명 NAOTO 씨 본인도 처음 리더를 맡아서, 리더로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시기라고 생각해요.
네, 특히 오른쪽도 왼쪽도 모르는 보컬 두 사람에 대해서는, 굳이 엄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전에, NAOTO 씨에게 "데뷔 당시는 NAOTO 씨가 무서웠어요"라고 말했더니, "나도 리더로서, 굳이 그런 태도를 만들어서, 모두에게 그렇게 보였을지도 몰라"라고 말했어요.
- 데뷔 당시, 이마이치 씨와 토사카 씨는 둘이서만 얘기할 기회를 만들거나 했나요?
오디션의 심사에 남았던 멤버 중에서, 오미(토사카)는 유일한 동갑이었던 것도 있어서, 그때부터 자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오미의 고향은 훗산 쪽인데, 우연히 오미가 살던 선배의 집이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정도의 장소에 있어서, 오디션에서 전철로 같이 돌아와서, 그대로 술 마시러 갈 정도로, 오미와는 데뷔 전부터 사이가 좋았어요.
- 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은 라이벌이죠.
그렇지만, 저에게는 오미와 함께 그 자리에 선다는 감각이 있었고, 오미도 마찬가지로 저에게 말했어요.
그래서,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동지라는 느낌이었고, 저는 오미 이외의 사람과 짝이 될 마음은 없었어요.
- 파이널에서 두 사람이 선정된 후, 토사카 씨와 어떤 얘기를 했나요?
그날은 오미와 얘기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어수선했어요.
정말 아주 잠깐 오미와 두 사람이 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하이터치를 했어요.
그때 일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어요.
- 산다이메 J Soul Brothers에 가입하면서, 자신의 무엇이 제일 바뀌었나요?
지금까지 살아온 저의 세계에서는 통용되고 있었던 것이 통용되지 않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뒤집게 되었으니까, 저의 무력함을 알았어요.
옛날의 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학에 가는 사람들을 부정하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이 잘난 건가, 그야말로 싸움은 강해야 좋다든지, 그런 가치관을 따르고 있었어요.
어쨌든, 모든 것이 "1"부터는 커녕 "0"에서 스타트였어요.
- 주변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스스로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았던 것 아니었을까요?
충고를 받아도, 결국은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데뷔 시절엔 MC에 상당히 서툴러서.
반성하고 연습을 해도, 정말 생각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괴로웠어요.
그래도 "노래로는 지지 않아" "나는 보컬로서 산다이메 J Soul Brothers의 중심에 있어" "내 노래로 이끄는 거지" 라는 마음은 절대로 제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것은 제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무너져서는 안 되는 부분, 자신감과 책임에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 이미이치 류지와 토사카 히로오미. 이 두 보컬의 차이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선, 소리의 질과 음역이 굉장히 달라요.
저는 음역이 높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오미는 저에게는 없는 저음에 매력이 있죠.
그리고, 창법도 다르네요.
오미는 좋은 의미에서 버릇이 없는 곧은 목소리로, 말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보컬리스트.
저는 기술적인 부분에 기울기 십상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세세한 것에 마음이 가기 쉬웠죠.
오미는 시시콜콜한 것보다 자신의 마음으로 솔직하게 노래해요.
그것이 오미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성격이 정반대여서, 노래에 대해서 마주 대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네요.
그런 두 사람이니까, 제가 노래에 관해서 이것저것 고민해도, 오미는 평온하게 있어 주니까, 굉장히 밸런스가 좋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강점인 것 같아요.
- ATSUSHI 씨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지만, 데뷔 후로는 이마이치 류지의 보컬 스타일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나요?
처음엔, 앞으로 나는 이런 보컬리스트가 되고 싶다라는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어쨌든 전력으로 노래 불렀어요.
다만, 전력으로 노래해도 실패하거나,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많았던 중에, 서서히 지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 이마이치 씨는 잘 되지 않았을 때는, 주위에서 걱정할 정도로 침체하네요.
상당히 가라앉네요.
이상이 높은 것도 있습니다만, 아마, 생각이 너무 많은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사소한 실수에도, 내가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손님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생각해버려요.
- 손님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실수도 신경 쓰는 건가요?
사실은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고객들은 실수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걱정되네요.
자신도 지나치게 신경 쓴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라이브를 하고 있지만, 제 노래에서 "좋았어" "최고였어"라고 생각한 스테이지는 한 번도 없어요.
정말 매번 기분이 가라앉아요.
물론, 실수하지 않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겠지만, 실수하여 낙담하고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 다음은 이렇게 하자고 생각하는 것으로, 제가 다음 스테이지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낙담할 때는, 라이브의 뒤풀이에서도 노래를 생각하고 있나요?
그런 장소에서의 기분 전환은 소중히 하고 있어요.
나만을 위한 장소, 시간은 아니니까.
하지만, 투어의 호텔 방에 돌아가면, 역시 생각하네요.
옛날의 저였다면, 그럴 때는 어쨌든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단순히 생각했었는데요, 산다이메에 들어오고부터는, 그저 갑자기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도 있단 걸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뭐일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스테이지에 서게 된 후로는, 보컬이란 포지션은 굉장히 어려운 위치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내가 흥이 올라서, 아자~! 를 하더라도, 어딘가에 냉정한 부분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런 밸런스가 굉장히 어렵네요.
- ON/OFF의 전환은 어떻게 하나요?
저는 ON / OFF의 전환은 서투른 편일지도 몰라요.
집에서 한 걸음 나오면 벌써 ON 상태이니까, 완전히 기분이 OFF가 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집 안일지도 몰라요.
- 집에 있을 때는 주로 뭘 하나요?
영화나 라이브의 DVD를 보면서 릴랙스하러간, 밥을 먹거나, 그냥 평범한 일상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쓴웃음)
집에 있을 때도 목 관리를 위해서 가습기를 빵빵하게 틀고 있고, 자기 전은 흡입기를 하고, 반드시 마스크를 하고 자요.
목캔디도 항상 가지고 있네요.
하지만, 이것도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데뷔 때는 신경질적이 되어서,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전철을 탈 수 없을 정도였어요, 다른 사람의 기침이 신경 쓰여서.
- 취미가 있나요?
저, 취미가 없어요.
가사를 쓰기 위해서, 의식하며 책을 읽기는 하는데요.
취미가 많은 켄짱 (야마시타)이 낚시에 데리고 간다거나, 아키하바라에 같이 무선 조종기를 사러 간 적은 있어요.
조금 비싼 무선 조종기를 사면, 역시 하게 될 거라고 샀는데, 아직 상자에서 꺼내지 않았어요 (웃음)
그것을 켄짱에게 말했더니, "만약 그대로 상자를 열지 않는다면, 내년 내 생일에 줘용" 라고 하던데요 (웃음)
레드 와인에 조금 빠진 적도 있어서, 그때도 와인 잔이나 책까지 샀지만, 취미로는 되지 않았어요.
TETSUYA 씨는 원래 커피를 못 마셨는데, 어떤 계기로 빠졌다고 말했으니까, 저도 언젠가 제가 빠져드는 무언가와의 만남을 기다려요 (웃음)
제 성격을 생각하면, 제가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면, 분명 이어지지 않으니깐요.
- 미래에, 언젠가 가정을 갖게 된다면, 어떤 아빠가 될까요.
지금은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이 있으니까, 제가 결혼할 거란 생각할 수가 없지만, 저는 아이를 완전 좋아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어요.
분명 엄청나게 아이를 아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삼 형제니까, 아이는 3명이 좋겠다든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에 저의 "류(隆)"자를 넣는다거나, 여자라면 미래의 부인 이름의 한 문자를 넣고 싶다든지, 망상만 커지고 있어요 (웃음)
*隆 류 또는 타카시
- 이상의 보컬 상은?
아마, 저는 계속 이상의 보컬리스트 상을 쫓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꿈꾸고 있는 자신에게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만약 제가 100% 수긍이 가는 노래를 불렀다고 해도, 또 다음의 이상이 보이죠.
분명 저는 계속 "더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전에, ATSUSHI 씨와 얘기를 나눌 때, "나도 그래. 지금까지 한 번도 만족한 스테이지가 없어. 우리가 하는 것은 골이 없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납득이 가지 않아서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다음의 목표가 보인다는 것이니까,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그것이 없어진다면, 성장하지 않게 되니까"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가벼워졌어요.
앞으로 몇 번 마음이 우울해질 때가 있어도, 비록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그 앞을 생각하면서, 지금 이런 일이 있는 것은, 분명 미래의 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HIRO 씨를 비롯한, 저의 주변에는 멋진 선배님들이 있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애초에, 산다이메 J Soul Brothers는 굉장히 풍족했네요.
- 굉장하게 풍족?
산다이메는 데뷔 전부터의 경험의 정도가 일본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데뷔 전부터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 주셔서, "라조나 가와사키"에서의 이벤트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역대 1위의 동원 수 기록을 만들어 주셨어요.
하지만, 그건 EXILE 분들이 만든 레일에 우리를 태워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도 않은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이유가 없어요.
그래도, 좋은 스타트를 끊어 주었으니까, 산다이메는 빠른 성장을 기대하고 있고, 무서운 스피드로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다다르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있어요.
우리는 데뷔한 지 3년에 베스트 앨범을 낼 정도로 풍족한 환경에 있지만, 이 3년간 우리는 무서운 스피드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경치를 보고 있어요.
- 풍족하게 있기 때문에 고민도 있지요?
예를 들어, 밑바닥이라고 불리는 시대가 우리에게는 없어요.
그룹을 결성하고, 라이브 하우스에서 경험을 쌓고, 그다음에 홀 회장으로 옮겨져 동원이 늘어나면, 무도관으로 이어지는 듯한 길...그것을 걷지 않았죠.
우리는 아레나 회장이 스타트, 즉 그것이 저희의 밑바닥(下積み)이 되나요.
다만, 제 생각은, 분명히 회장의 규모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무대 위에 서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똑같잖아, 라고.
아무리 리허설을 거듭하며 준비를 해도, 실전이 제일의 경험이 되죠.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밑바닥 시절이 없어....라는 결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2013년은 EXILE LIVE TOUR 2013 "EXILE PRIDE"에서 EXILE 분들과 함께 돔의 스테이지에 선 것도, 자신에 연결되었어요.
큰 회장에 올랐으니까 할 수 있는 것, 배운 것이 많이 있으므로, 우리의 이 3년간의 성장 스피드는 굉장히 빠른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2014년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HIRO 씨를 비롯하여, EXILE 분들에게 보은하기 위해서도, 언제나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도, 더욱더 위를 목표로 하고 싶어요.
- 앨범 "BLUE IMPACT"에는, 이마이치 씨가 처음 가사를 쓴 'PRIDE'가 수록되었어요.
산다이메에게 있어서 "BLUE IMPACT"는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다리가 되는 중요한 앨범이고, 무엇보다도 EXILE 분들에게는 "EXILE PRIDE~이런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가 있고, THE SECOND from EXILE 분들에게는 "pride"가 있다는 흐름 속에서, 제가 산다이메 J Soul Brothers의 "PRIDE" 가사를 쓰게 된 것은 굉장히 기뻤고, 자신에 연결 되었어요.
HIRO 씨가 "효도하자" "거짓말은 하지 마" "초심을 잊지 않는다"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라고 항상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분이니까, 그 모습을 보면 자연히 우리도 그러자고 생각하는데, 그 행동이나 마음은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오죠.
그것을 수단으로 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마음을 담아서 행동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HIRO 씨나 EXILE 멤버들에게 향한 마음과 산다이메의 마음, 산다이메의 Pride를 쓰게 되었어요.
- 니다이메가 산다이메로 계승된 것처럼, 이후 요다이메 J Soul Brothers가 생길 가능성도 많이 있어요.
그렇죠. 지금의 저는 산다이메의 보컬인데, 그 후의 저는 확실히 보여요.
저에게는 노래밖에 없고, 계속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EXILE TRIBE의 안에서 노래만으로 LDH를 짊어지고 가는 듯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제 인생은 EXILE이 데뷔한 것으로 많이 바뀌었으므로, 언젠가 제가 할 수 있는 것으로 EXILE에 보답하고 싶어요.
이것은 여러 장송에서 말하는 것인데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은, 산다이메의 데뷔 10주년이기도 하니까, 장래의 목표로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서 산다이메 J Soul Brothers는 노래한다"라고.
말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으니까, 계속 말하면 절대로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되고 싶어"가 아닌 "된다!"라는 강한 마음으로 있어요.
- 그럼, 마지막으로. 이마이치 씨에게 있어서, 산다이메 J Soul Brothers란?
지금의 저를 빛내고 있는 곳이자,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니까, 산다이메는 저의 인생, 그리고 저의 그 자체.
산다이메 J Soul Brothers와 저는, 일심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