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스트 스포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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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 정말 사랑스러움
챕터 1. 사랑을 몰랐던 우리들 (다이 SIDE)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수 있는지 그 답을 찾고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저는 스스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새삼 돌이켜 볼일도 그다지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남에게만 신경쓰는 아이였다고 생각해요
친구들과 놀때도 모두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싶은데도, 여러가지 너무 생각이 많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랬더니 '넌 왜 그렇게 신경 써? 재미없어'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아직 어린애여서 악의가 있는 말은 아니었을거예요. 그래도 그게 너무나 저에게 크게 와닿았어요. 나도 신경 쓰고 싶어서 신경 쓰는건 아니라고!
여러 사람들의 안색을 살펴가면서 '여기서 내가 이걸 하면 폐를 끼치는게 아닐까' 라든가 '이렇게 말하면 기뻐해주지 않을까' 같은, 결국은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걸까, 그 방법을 계속 찾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어째서 그렇게 되어버린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의 일과 관계가 있는걸까 생각해요. 유소년기에 마음 붙일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기때문인걸까 하고..
저희 부모님은 굉장히 사이가 안좋았어요. 보육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친구들 엄마, 아빠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면 항상 부럽다고 생각했거든요. 부모님이 절 귀여워해주시기는 했지만, '외롭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받았어요
부모님은 정말로 계속 사이가 안좋았고, 싸우지 않을때도 사이는 안좋았어요
엄마는 첫 결혼상대와 사별하셨어요. 암으로 돌아가셨고, 그 다음에 만난게 저희 아빠. 엄마는 늘 '첫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하곤했어요. 하지만 그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라고 지금이라면 생각할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하면 엄마가 날 좋아해줄까?' 라고 생각했어요.
가족에게조차 사랑받으려고 노력해야하는데,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건 더 힘들겠지. 어떻게 하면 남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수 있을지 그런것만 생각하면서 살다보니 저 자신은 아무래도 좋았어요
지금에 와서야 그 당시의 난 뭐였을까?하고 생각해보게 돼요
내가 태어나버렸기때문에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문득 생각하게 돼요. 왜 아빠랑 결혼한걸까...하고.
첫남편은 엄마가 셋째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사망했다고. 하지만 사업적으로 성공했던 사람이라 많은 유산을 남겨줬다고 들었어요.
엄마도 힘드셨을거라고 생각해요. 여자 혼자서 아이 셋을 키워야 하니까. 아마 그 괴로운 마음을 돈을 쓰는걸로 달래셨을거예요. 하지만 돈이란건 쓰면 언젠가는 없어지는 법. '잘도 그 많은 돈을 다 써버렸네'라고 할 정도로.
엄마는 일도 계속 하셨지만, 여러가지로 외롭기도 했을거고, 그럴때 저희 아빠가 되는 사람과 만났대요. 이런저런것들이 부족했을때 어쩌다 그때 쏘옥 하고 아빠가 들어가버린걸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그를 불러들인 결과,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서로 맞지 않았고, 그런데 아이는 덜컥 생겨버려서 바로 헤어지지도 못하고.........
부모님이 이혼한건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계기는 연말에 연하장에 쓸 사진 고르기였어요. 또 늘 하던 싸움인가? 했는데 조금 평소와 다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더니 아빠가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땐 정말 연말연시를 최악의 기분으로 보내야했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분이 같이 살지 않으니 오히려 부모로서의 역할 분담이 되어서, 전보다 스무스하게 일들이 진행되더라구요. 그때까지는 함께 있었어서 필요 이상으로 부딪혔었나봐요. 따로따로 살게 되니까 서로가 자신의 인생을 메인으로 살수 있게 된건지도 모르죠. 엄마는 저희들을 생활면에서, 아빠는 교육이나 학비면에서 서포트해주셨어요
아빠는 한마디로 말하면 굉장히 특이한 사람. 꿈을 갖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지만, 아빠 자신은 무언가를 끝까지 해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엄마랑 만났을때는 배달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고하는데, 아이가 있는 엄마와 사귀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들의 연속이라 힘들었던건지, 만나고 얼마 안돼서 일을 그만뒀다고해요. 그때부터 별거할때까지 수년간 계속 새 일을 구하고 그만두고를 반복해서, 충분한 급여를 받지 못했고. 엄마가 말하길, 가족에게 돈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다고
그래도 아빠는 처음엔, 저의 이부남매인 형과 누나에게 굉장히 의지가 되는 존재였어요. 당시에 형누나들은 중학생이었고, 집에 의지할수 있는 성인 남자가 있다는게 굉장히 든든했대요. 하지만 제가 태어나버려서, 아빠의 애정이 저한테 쏠려버렸죠
형과 누나는 저와 제 동생을 굉장히 신경써줬어요. 오히려 아빠보다 더 잘 돌봤을 정도로. 예를들면, 아빠는 무서워서 아기 목욕도 못시키는데 대신 형들이 씻겨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하지만 형들도 점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결국, 충돌이 이어져서 모두 차례차례 독립해서 집을 떠나버렸어요. 엄마도 아빠와 자기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힘들었을거라고 지금은 생각해요.
가치관을 바꿔준 사람의 존재
어릴때부터, 가족 안에서도 여러가지 일들에 신경을 썼기때문에, 중고등학교때는 그런식으로 남에게 신경 쓰지 않고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줄곧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중학생이 되어서도 사람과 사귀는게 서툴고, 그 당시에는 놀림 당하는 역할. 놀림 받고, 장난치면서 바보 취급받아도, 그래도 모두가 주변에 있어주면 그걸로 족했어요. 그거 말고는 모두와 사이좋게 즐겁게 노는 방법을 몰랐고요.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그렇게 지낼수밖에 없는 매일이었어요
학교에 가라니까 가고, 부활동도 하는게 좋을거래서 하고, 성적도 좋은 편이 낫겠지라고 생각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어쨌든 '나쁜 아이' 란 소릴 안듣는 자신을 계속 만드는 느낌. 그 당시의 저는 빛날수 있는 분야가 없었기때문에, '나쁜 아이만 아니면 되는거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의식이 바뀌게 된건 한 여자애와의 만남이었어요. 당시 좋아했던 여자애. 그녀는 내 머릿속에 있던 남녀의 관념을 부숴주었어요.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뭘해도 평등
그애는 아리아나 그란데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애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수 있도록 저도 노래를 계속 들었어요. 그때 알게 된게 '샘&캣'. 아리아나가 유명해지기 전에 출연했던 코미디 드라마인데요. 그게 굉장히 재밌었고, 일본에서는 듣기 힘든 유머같은것도 배웠던 것 같아요. 그 드라마도 그 여자애가 가르쳐줘서 보게 됐는데, 어느새 그애보다 제가 더 해외나 영어에 몰두해있었어요
참고로, 그애에게는 고백했다가 차였습니다. 그랬는데 하필이면 제 친구랑 사귀기 시작하더라구요. 하지만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 올곧은 아이였기때문에, 스위치 온오프 전환도 빠르고, 굉장히 좋은 의미로 평소와 다름없이 계속 친구로 대해주었어요. 저는 정리가 아직 안됐었지만(웃음) 반짝반짝했고, 동경했어요. 여러가지를 가르쳐주었고, 그애와 만난 덕분에 영어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해외에도 나가보고 싶어서 진학할 고등학교도 정했어요. 돌이켜보면 저의 인생을 상당히 좌우하게했던 여자애였는지도 몰라요
이런 나라도 반짝반짝 빛날수 있다
그애에게서 인간대 인간으로 마주하는것의 중요성을 어린 나이에 배우고, 조금 제 의식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끝날무렵부터 2학년 끝날때까지 1년간, 뉴질랜드에서의 유학으로 더욱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건 그야말로 자극투성이의 1년!
그리고 홈스테이를 했던것도 저에게 있어선 큰사건이었어요. 그도 그럴것이 남에게 지나치게 신경쓰는 제가 남의 집에서 살다니!
처음엔 해외에서 고등학교에 다닌다, 영어를 배운다!라는 걸로 머릿속이 가득해서, 막상 공항에 도착하고나서야 깨달았어요. 오늘부터 타인과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걸. 처음엔 정말 말도 안될 정도로 조심했어요
예를들면, 홈스테이를 하고 있던 집에서, 냉장고를 여는것조차 굉장히 큰일이었는데. 왜냐면 여긴 어디까지나 남의 집이니까, 화장실은 어쩔수 없다고 하더라도 냉장고는 2주 지나도록 '열어도 되나요?'라고 물어보고 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같죠(웃음) 하지만 계속 물어봤더니 '넌 이미 이 집 식구니까 일일이 물어보지마!'라고 해서. 분명 1년내내 거기에 매일 답해줘야하면 저쪽도 고생이겠지만요, 이렇게 날 받아들여주는구나..하고 처음으로 컬쳐쇼크를 받았어요
그리고 현지의 고등학교에서 친해진 남자애의 영향도 있어요. 그애는 항상 누구보다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어요. 아직까지도 처음 만났을때의 일을 기억해요. 넓은 잔디 위에서 그애가 럭비를 하고 있었고, 제가 교실에서 밖으로 나올때 럭비공이 날아왔어요. 그 공을 집어 건네주자 '고마워' 하고.
이사람은 어쩜 이렇게 빛나는걸까..하고 생각했어요. 같은 반이었는데, 거기서도 남녀 구분없이, 연령도, 그야말로 인종도 관계없이, 사람대사람. 그런식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게 멋지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는 굉장히 서툰 사람이기도했어요. 하지만 모든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요. 잘하진 못해도 도전하는. 그건 제가 알지 못하는 '멋짐'이었어요. 일본에 있으면 뭐든 잘해야 멋지다고 여겨지는데, 잘하지 못하는 일에도 자기가 할수 있는 전력으로 부딪혀서 노력하는 멋짐을 그애에게서 배웠어요.
실패하면 그냥 다시 하면 될뿐
초보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그건 저에게 있어서 커다란 배움이었어요. '잘하지 못하는 나라도 반짝반짝 빛날수 있지않을까?'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뉴질랜드에서 알게된 가족의 형태
저의 호스트패밀리는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고, 힘든 일은 일절 없었어요. 그들이 당연하다는듯 저를 가족으로서 받아들여준 덕분에, 다른 일들에 모든 집중력과 에너지를 쏟을수 있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만, 피가 이어진것도 아니고, 고작 1년 같이 지내는 그저 꼬맹이인 저를 친자식처럼 귀여워해주고, 걱정해주고, 뭐 하나라도 잘하면 칭찬해줬어요
언젠가부터 '피가 이어진 가족이니까 이유불문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돼'라는 의식이 제 안에 강하게 있었지만, 그 갭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호스트패밀리가 피가 이어지지않은 저를 가족으로 받아주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에 돌아오고 나서는, 혈연관계만을 의식하는 가족들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꼈어요.
귀국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만둬야 했고. 재수해서 지금의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엄마와의 관계는 계속 삐걱거렸어요.
엄마가 있는 본가는 기본적으로 늘 지저분하고. 어째서 이상태로 지내는게 스트레스가 아닌거지?하고 엄마한테 한소리 하고 싶어질 정도. 시간이 있을때는 제가 치우고나서 잠들지만, 다음날 돌아와보면 언제나의 그 상태로 되돌아가있고. 그게 정말로 힘들었어요
엄마는 엄마대로 금전적인 면에서도 여유가 없어져 있었고, 저도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서로가 한계에 다다랐을거예요. 같이 살면서 저도 나이를 먹을수록 여러가지 생각할 일들도 많아져서, 충돌의 연속이었어요.
아빠는 너무 싫었지만, 아빠만 나쁜것도 아니었던걸까. 어린 시절 아빠는 만악의 근원이고, 아빠가 전부 잘못한거라고 엄마는 말했지만, 아빠가 집에서 없어졌어도 집의 환경이 변하지 않았어요. 그때쯤엔 어떤 일에 대해 여러 각도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걸 깨달았어요
남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사람을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건지. 나를 바꿔보자. 내가 하자. 살기 편한 방식으로 함께 지내자. 그런식으로 마음가짐을 바꾸고나니까 엄마에 대한 불만은 조금씩 옅어져갔어요.
물론 충돌은 있었지만, 말해도 못알아듣는 사람에게 열을 내봐도, 악의도 없이 괴롭게 만들 뿐이니까요. 그런 일들을 반복해 가는 동안 점점 충돌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하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든 하면 돼. 바라는걸 그만두었다는것이 어쩌면 가장 클 수도 있구요
아빠 그리고 형과 누나
아빠를 싫어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제일 맞을거예요
아빠는 그사람밖에 없고, '누가 부친인지' 알고 있다는게 당연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좋아한다고는 못하겠고.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돕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그리고 아빠가 해준 말은 저의 심지를 강하게 해주었거든요. 초등학교때 제가 시험에서 미묘한 점수를 받았을때의 일인데, 변명하듯이 '나보다 점수 낮은 사람들 잔뜩 있다구'라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아빠가 '아래만 보고 있으면 끝이 없어' 라고.
지금도 제가 타협을 허락해버릴것 같을때 그말을 떠올려요. 그래서 뭔가를 해내기 위해서 노력을 마다하지 않게됐어요. 하지만 그런 제가 주위에서 보면 '완벽주의자'로 보이나봐요. 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너무 엄격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그래서 가끔씩 슌과 싸우기도 합니다(웃음)
형 누나들도 저에게 깨달음을 준 사람들. 그들도 많은 고민을 해왔기때문에 생각이 굉장히 깊어요. 10살정도였을때 모르는 남자가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고, 남동생이 태어났구나 했더니, 그 남자는 새로 태어난 자기 자식들만 예뻐하고. 그런데 정작 그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건 자기들이라니. 분명 갈등의 연속이었을거예요
그런 형과 누나였기때문에 어떨땐 저를 놀라게 하기도 해요. 제가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일도 못하고, 본가에서 독립도 못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당연한듯이 본가에서 지낼수 생각하다니 너 참 안일하다' 라고. 저로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대학에 다니는건데, 거기서 안일하다는 소릴 들으니 그럼 대학을 그만두라는건가? 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게 되면 그때 가족에게 돌려줄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전면 부정당해버린거예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확실히 안일했을수도 있어요.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고,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가 들어오고, 목욕하고 싶으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욕조에 따뜻한 물이 채워지고. 그게 당연한것이 아니다라고 형누나들이 깨닫게 해준것도 엄마와의 관계 개선에 중요했을지도요
비참한 기분이 나를 바꿨다
형과 누나가 해준 말들이, 반대로 제가 아직 사회인이 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그때쯤 합격했던 대학도 그만둬야 했고... 사실은 그 이유, 제가 들떠있었기때문이에요. 대학에 붙었다는 그 자체에 들떠 있어서, 학교에 가긴 했지만, 새로운 친구들이 보여주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 즐거웠어요. 즐거워! 재밌어!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더니, 단위를 전혀 못땄어요. 고등학교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걸 깨달았을때는 이미 늦었버렸구요. 유급하면, 아빠도 학비를 내줄수 없고, 부모님 모두 성적표를 볼테니까 이런 성적이면 대학에 다닐 필요없지?라고. 열심히 노력해서 손에 넣은 대학입학이라는 권리였는데, 그땐 정말 분했어요.
대학을 그만두고 취직한다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럴 각오까지는 아직 없었고. 그래서 재수하기로 결정. 돈이 없으니까 계속 알바해서 돈을 모으고, 모은 돈으로 학원에 등록하고, 학원에 다니면서도 알바하고. 돈은 여전히 없으니까 매일 도시락 싸고.
게다가 학원에서는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았어요. 모두들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공부를 잘해서, 비참했지만 그래도 그게 동기부여가 됐죠
나보다 어린애들보다 못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쨌든 열심히 공부를 하고, 거기서 한번 더 나이같은건 상관없다, 성별같은것도 상관없다라는 현실을 마주했어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저 자신과 마주해서 들어간 대학. 그 대학에서 저는 살면서 처음으로 공부하는것이 즐거워졌어요.
연애
첫사랑은 초등학교 6학년때 같은반이었던 여자애.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데이트도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밝고, 남녀 구분없이 대하는 아이였어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것을 가진 사람. 내가 가지고 싶었던, 내가 되고싶은 이미지의 사람이었어요. 전 항상 그런 사람들에게 끌리는것 같아요
그애는 저랑 친한 친구를 좋아해서. 왠지 항상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랑 친한 친구를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옆에서 그 사람이 연애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되고. 하지만 그사람이 누구랑 연애하든 그걸 이유로 친구를 바꿀 생각은 없었어요. 그때 제가 있어야 할 장소가 '거기'였기때문에
처음으로 여자친구가 생긴건 중학교 1학년때였어요.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었던 사람. 다니던 중학교가 굉장히 학생수가 많았는데,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굉장히 작았어서. 학교에 그다지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라는걸로 굉장히 안심이 되는 존재였어요
하지만 크리스마스 다음날 차였습니다. 어째서지?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던것이 당연했다가 중학교에서 그 세계가 넓어지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서 저로는 부족했는지도 몰라요. 저도 중학교때 만난 사람들 덕분에 사고방식이 바뀌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나서 중학교 3학년때 만나서 사귀기 시작한 여자애와는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이어졌어요. 사귀다가 헤어지고, 다시 사귀다가 헤어지고를 반복하면서 4년을 함께 했어요
하지만 그애와 사귀고 있는 동안에 계속 방황하고 있었어요. 난 남자와 여자 어느쪽을 좋아하는걸까하고. 그리고 고3 겨울에 처음으로 서로 좋아한다고 말할수 있게 된 남자와 만나게 되는데, 그 조금 전단계에서, 저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어서 그여자애와는 헤어졌어요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고, 1년뒤에 우연히 그애랑 재회했어요. 같은 노선의 타서. 평소에 저는 1호차, 그애는 7호차를 타서, 같은 노선을 타고 있어도 만날 일이 없었는데, 그날은 정말로 우연히
대학교 1학년때의 저는 정말로 인생에서 가장 기고만장해있던 시기라서, 그애를 발견하고 아무 생각없이 '오랜만이네!' 하고 말을 걸었어요. 그리고 같이 대화를 하고. 1년동안 전혀 만나지 않았기때문에 할말은 많았거든요. 그렇게 얘기를 하다보니 다시 친해지고,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어쩌면 이애는 아직도 나에게 마음이 있는것 같아'라고
'지금 나한테 적극적으로 어프로치 하는 사람은 있는데, 바쁘니까 연애는 안하고 싶어'라고 말하면서도 나랑 만날 시간을 내고, 즐거워하고.
그녀에게는 신세도 많이 졌고, 정말로 멋진 애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대로 말해야 이 아이도 앞으로 나아갈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실은 나 남자를 좋아해' 라고 말했어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하니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하지만 그녀는 제가 걱정했던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그런건 진작에 말했어야지!?'라고 했을뿐. 그 이후로는 그녀는 저의 몇 안되는 뭐든 다 말할수 있는 친구가 되었어요. 둘이 다니던 고등학교가 달랐어서 서로가 불안해하고 쓸데없는 밀당을 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여러가지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친구로서 친해지는 속도도 빨랐어요. 지금도 그녀의 남친의 험담을 제가 들어주곤 해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지?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걸지도 몰라. 확실히 자각했다기보다는 그라데이션일지도 몰라요. 그 어딘가 흔들리기도 하면서
어렸을때부터 멋진 사람을 보면 흉내내보거나, 동경하는 마음을 품었어요. 처음으로 '어라?' 라고 생각했던건 10대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자다가 몸을 만져진 일이 있었어요
그때 저는 전혀 '싫다'라는 생각이 안들었어요. 그때까지는 남성에 대해서 일절 성적인 감정을 가져보지 않았기때문에, 그때가 계기라고 생각해요. 그 친구와는 그 이후에도 놀자고 하면서 몇번 인가 만나긴 했는데, 어느샌가 전혀 연락에 답을 안주더라구요
자연스럽게 그애와는 안만나게 됐지만, 당시의 저는 남녀의 연애가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마음에 뚜껑을 닫고, 자신이 게이일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고3때 매칭앱을 가끔씩 들여다보곤 했었어요. 하지만 좀처럼 남자를 만날 용기가 안났어요. 연상들만 잔뜩 있고, 조금 무서웠다고 할까. 실제로 어떤 액션도 취하지는 않았어요. 그때까지 계속 사귀고 있던 여친도 있었고, 부활동도 하고, 친구들과 놀고, 공부도 하고. 그 이외의 일들로 적당히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있었는데, 고3때 더이상 참을수가 없어져서.... 실제로 만나보자라는 결단을 내리고, 남자와 만나서 관계를 가졌을때 '아.. 이거다' 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중학교, 고등학교때 (남자)친구들이 말하던 여자 이야기에도 전혀 흥미가 없었고, 적당히 맞장구치며 얼버무렸거든요. 하지만 매칭앱으로 남자와 만나고나서 알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역시 난 남자를 좋아하는구나..라고
앱으로 처음 만났던 그 사람과는 사귀지 않았어요. 굉장히 상냥한 사람이었지만 연애감정으로 두근거림은 느껴지지 않아서
하지만 그 사람이 특별히 상냥했던거였더라구요. 저는 당시엔 남자와 만나는 방법을 매칭앱 외에는 몰라서 다시 거기서 만남을 찾았는데,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를 받기도 하는구나라는걸,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 알게 됐어요
초등학교, 중학교때도 실연은 경험한적이 있지만,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를 입는건 또 다르더라구요. 아마도 진짜 연애감정은 그사람이 처음이었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따스했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연애할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어요
그후로 괜찮은 느낌이다...까지 간 사람이 둘 있었는데, 한명에게서 '넌 귀엽긴하지만 좋아할순 없을것 같아' 라는 말을 듣고, 제가 힘들어졌어요. 저는 좋아해서 만날때마다 두근두근했는데 상대는 저에게 그정도의 감정을 가져주지 않는다는게 괴로웠어요. 다음에 만난 사람도 완전히 똑같은 패턴이었구요. 제쪽에서 거리를 두지 않으면 마음이 힘들어지고... 그 둘과는 연애까지 가지 못했어요
인생에서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긴건 그 다음이었어요. 5살 연상으로 제가 억지를 부려도 다 들어주는 사람이었어요.
실은 그사람을 계기로 엄마에게도 커밍아웃 할수 있었어요
고3때까지 만나던 여자친구 이외에, 일절 여자친구 같은애를 집에 데려오지도 않고, 그런데 딴데서 자고 들어오고, 지금까지 그다지 말한적 없는 친구 집에서 자고 다니나? 뭔가 좀 이상하네..라고 생각했을거예요. 엄마 안에서 여러가지 퍼즐이 맞물리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일이 계속 됐을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언젠가는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엄마는 눈치채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말할수 없어' 라는 일이 18살부터 20살 사이에 자주 있었어요. 그래서 제 안에서 이미 룰을 정해놨어요
'당당하게 이 사람이 제 남자친구에요, 라고 말할수 있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엄마에게 소개해야지'
엄마에게 소개할수 있는 남자가 내 연애의 전제조건이었기때문에, 그것이 남자친구가 생기기 어려운 허들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저도 엄마가 놀라지 않도록 남자친구라고 소개하기 전에도, 친구로서 일상 대화에 이름을 입에 올리거나 집에 놀러오게 하거나 했어요. 그리고 어느날, 정식으로 사귀기로 하고나서 '제 남자친구에요'라고 소개했는데, 그때 어딘가 납득하신것 같았어요. 남자끼리 연애한다던가 그런 것 이전에, 제가 신뢰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었기때문에, 아마도 받아들이기 쉬웠을거라고 생각해요
등신대의 연애를 할수 없어서...
당시 남자친구와는 반년정도 사귀었어요
한번은 엄마랑 싸우고 나서, 그 사람이 살고 있던 집에 2주정도 얹혀살았는데, 전기세라던가, 식비라던가, 생활비가 신경쓰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막상 저에게 내달라고 하면 좀 힘들어서, 결국 2주만에 단념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헤어진 원인은, 저에게 그가 전혀 연애대상으로 보이지 않게 됐기때문에. 그때까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고작 2주여도 함께 살기 시작하니까 서로 보이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보여버리게 된거죠. 그사람도 제가 제멋대로 구는것에 지쳤는지도. 일단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때는 굉장히 쇼크였어요. 게다가 그때가 연말이어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버렸거든요. 전 진짜 연말연시를 엄청 울면서 보냈어요. 이렇게 된거 이제 그사람을 안좋아하면 맘이 편해질거야..하면서 그를 안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 2주를 지냈어요. 그랬더니 의외로 이젠 괜찮을지도?라는 상태가 되더라구요
해가 바뀌고, 13일에 만날 약속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만나고 싶다고 지금 바로 만나자고 해서, 결국 13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만났는데, 그때 이미 그의 반짝임이 사라져 있었어요. 연애를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에도 차이가 나기 시작해서, 제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아마 저는 자기암시가 강한 타입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스스로가 그렇다고 생각한 가설을 세우면, 그 가설을 긍정할수 있는 사실만을 픽업하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어요. 예를들면, '자신은 좋은 환경을 타고났다'라고 생각하면 '좋은 환경을 타고났다'라는 것을 서포트 할수 있는 사실을 많이 찾아내기 시작한다는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죠. 제 경우가 그랬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슌과 만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귄사람은 여자였어요. 대학에 들어가서,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여러 새로운 만남이 있었던 가운데, 한명의 여자애에게 굉장히 마음이 끌렸어요
만나서 바로 친해진 친구들중에 한명이었고, 그 친구들에게는 제가 게이라는 이야기는 했었어요. 어떨땐 만나던 남자 이야기도 했을 정도. 여성과 그다지 연애하고 싶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여자와 연애한다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었어요. 하지만 함께 어울리면서 그애에게 점점 마음이 가고 좋아하게 됐는데, 어쩌지?라고.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 상처도 많이 받았었고, 설령 좋아하고 사귀게 돼도, 금방 맘이 식어버리면 상대에게 실례일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3개월 정도를 보냈어요. 하지만 점점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갔고, 억누르려고 하면 할수록 좋아졌거든요. 그렇다면 사귀어도 되지 않을까?
대학생이 되고, 동년배와 연애한건 처음이었어요. 지금까지는 연상의 남자들만 좋아했기때문에, 기본적으로 저를 리드해주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내가 연상이고, 게다가 상대는 여자. 모든게 다른 연애가 시작됐어요
굉장히 여유가 있는 집의 아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여러가지 자유도에서의 갭을 채우려고 필사적이었어요(웃음) 정말로 그애를 좋아했고, 그애도 저를 많이 좋아해줬어요. 여자와 관계를 갖는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하나하나 알아가야 하고, 부끄럽고,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고. 하지만 그애는 상냥했기때문에 제 옆에 있어줬어요
점점 여러모로 잘해가나 싶었지만, 제 안에서 금전면에서의 벽이 있었고... 그애는 분명 1밀리도 신경 안썼을거예요. 같이 있을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하지만 제가 좋은 남친으로 있고 싶다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부담감에 져버렸다고 생각해요
결국 여러가지 부분들에서 너무 한계가 와버려서, 그애와 연애는 끝났습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연애를 하려고 해도 상처받고, 누군가를 상처 입히게 되어버리고, 그렇다면...
그때부턴 연애에 중심을 두지 않는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살아가다가, 저는 슌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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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