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무용과 K팝의 만남이 ‘K-춤판’의 잠재력을 일깨웠다. 엠넷 댄스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스테이지 파이터’(스테파)에서 발레·한국무용·현대무용과 K팝·힙합 등이 만난 신선한 무대가 화제를 모으면서다. 특히 ‘스트릿’ 시리즈에 이어 ‘스테파’ 음악감독을 맡은 시저(Czaer·본명 손성호·40)는 “처음 시도하는 콘셉트인 데다 참고할 음악도 마땅치 않았지만 상상을 바로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스테파 촬영 스튜디오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그는 이번 시즌 최고의 음악으로 메인 주제가이기도 한 ‘마에스트로 오브 마이 하트’를 꼽았다. 파가니니 에튀드 6번을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쨍한 음색 위에 빠른 힙합 비트, K팝 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키오프)의 보컬이 얹어졌다. 발레리노들이 기본기 테스트에 임한 배경음악이다. 시저 감독은 “많은 분이 알 법한 클래식·전통 음악을 통해 관심을 끌고자 했다”며 “잘못 쓰면 유치하거나 고루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이 곡은 처음 프로그램 기획을 들었을 때부터 떠올렸고 가창자 선정까지 아이디어 그대로 구현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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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첫방송부터 이달 26일 생방송 종영 때까지 쉼없이 미션을 수행해온 만큼, 파가니니 에튀드 외에도 베토벤 ‘월광 소나타’,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베르디 ‘레퀴엠’ 등을 샘플링한 댄스곡이 무용과 만났다. 샤이니 태민, (여자)아이들 미연,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호미즈 등 K팝·힙합 가수가 가창했다.음악 작업은 1년째 계속됐다. 녹화 중에도 멈추지 않는다. 시저 감독은 “사전에 50개 넘는 곡을 만들었고 그중 실제 쓰인 건 10여 곡”이라고 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발표된 15개 신곡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만들어놓은 걸 다 엎어버리기도 했어요. 순수예술과 예능의 중간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죠. 방송이 시작된 후에도 최정남 연출과 수시로 소통하며 요구 대로 음악을 만들거나 수정해요. 새벽 4시에도 연락이 오기 때문에 아침까지 깨어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의 첫 청자는 무용수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열의에 불타기도, ‘이 노래는 소화하기 어렵겠다’고 고개를 내젓기도 한다. 결국 무대를 완성해내는 건 그들 몫이기에, 음악감독으로서도 다른 무엇보다 고려해야 할 것도 무용수다. 앞서 ‘스트릿’ 시리즈에서 윤미래·비비의 ‘LAW’, 지코의 ‘새삥’, 다이나믹 듀오의 ‘스모크’ 등 많은 히트곡이 탄생했지만, 시저 감독은 “흥행도를 신경 쓰면 안 되더라”며 “무용수들의 합이 좋은 멋진 무대가 나왔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순수하게 접근했을 때 대중도 알아보신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댄서를 사랑하고 이 분야를 대중화하겠다는 제작진의 마음이 컸습니다. 오직 그 말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시저 감독은 힙합 디제잉이나 K팝 프로듀서로 경력을 쌓아오다 2021년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 때부터 4년째 엠넷 댄스 프로그램의 음악을 총괄하고 있다. 제작진 의도에 맞게 음악을 만들어 최종본을 넘기는 것까지가 역할이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힙합에 빠진 후로 음악을 만드는 게 내 길이란 확신이 있었다”며 “이번엔 클래식이나 전통음악까지 골고루 듣고 활용하며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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