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 시작 전엔 한국무용에 대한 관심이 가장 덜했습니다. 낯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었더니 가장 호응이 높은 장르가 됐어요. 이 흐름을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예상했습니다. 막연하게 한국무용이라고 했을 때 '다소 지루하고 느린 춤' 혹은 '한복입고 추는 춤'이라는 대중들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무용은 오래전부터 진화되고 변모돼 왔었고 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춤의 소재나 움직임적 측면 그리고 춤의 철학을 통해 지켜내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반응하는 한국춤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어요. 지금의 시대에서 대중들이 다시 한국춤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춤을 지켜주신 선생님들과 선배들의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춤은 다소 낯선 장르일 뿐이지 그 안에 담긴 정서와 미감은 우리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스테파'를 통해 관객들에게 한국무용의 다채로운 매력과 감동을 경험하게 한 점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흐름은 대중과 장르가 만날 접점을 잘 만들어준 결과라고 봅니다."
-코치님이 '스테파' 제작발표회에서 강조하셨던 '멋' '맛' '흥'이 정말 보여졌습니다. 한국 무용을 코치하시면서 참가자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참가자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은 몸짓 안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표현력'과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흥'을 이끌어내는 감각이었습니다. 한국무용은 단순히 기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춤의 맥락과 감정을 몸으로 전달하는 예술입니다. 그걸 놓치지 않도록 강조했습니다."
-계급 전쟁은 어떻게 보면 수석무용수, 주역무용수 등이 있는 무용단 계급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계급이라는 소재가 자칫 대중에게 반감을 불러올 수 있는데 '스테파'에선 건강한 동기 부여 요소가 되고 있어요.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일각에선 드라마 '정년이'의 여성국극에서 '촛대'에서 주역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비교하기도 하더라고요.
"계급이라는 개념은 예민할 수 있지만 '스테파'에서는 이를 경쟁보다는 성장을 위한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동력이 됐고 이는 무용수들에게도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드라마 '정년이'와의 비교도 흥미롭네요. 각자의 위치에서 성장하며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가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대중적으로 한국무용 중 약점으로 지목된 부분이 스타 플레이어 부재였는데 최호종, 기무간 등 걸출한 스타들이 발굴한 것도 스테파의 공로입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스타의 존재는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스테파는 최호종, 기무간 뿐만 아니라 많은 무용수들의 스타성을 찾아줬습니다. 이들은 실력은 물론 대중적인 매력까지 겸비해 본 프로그램을 통해 그 가치를 재발견했습니다. 이 과정은 한국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무용수들을 향한 대중들의 행보를 보며 스테파 제작진에게 가슴깊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두 무용수 포함 '선비 춤꾼'들이 멋있다는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한국무용의 스펙터클을 보여준 부분도 '스테파'의 장점인데 코치님이 보시기에 한국무용의 멋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십니까?
"한국무용의 멋은 절제된 몸짓 속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내면의 에너지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또한 선과 곡선의 조화, 그리고 순간적인 호흡에서 오는 긴장감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한국춤은 호흡을 통해 발현되는 것들이 가장 큰 매력인데 무용수들이 그 지점을 끌어냈을 때 대중들에게 특별함으로 다가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용어를 설명해준다거나 장르에 대한 해설도 '스테파'의 장점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 코치님이 가장 코치를 해주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해설의 핵심은 관객과의 '소통'입니다. 용어를 단순히 풀어내는 것을 넘어서 '왜 이 춤이 지금 중요한지, 무엇을 표현하려는지'에 대한 맥락을 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한국무용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 이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한국무용 댄스 필름 '왕의 기원: 태평성대'에 K팝(피원하모니(P1Harmony) 'R.O.P(Reign of Peace)(Prod. Czaer)')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다는지 음악 선정도 다채로운데요. 한국무용이라고 해서 꼭 전통 음악에 맞출 필요는 없는 거죠?
"전통음악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춤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매개체일 뿐 꼭 전통 음악만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한국무용의 확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 요소와의 조화는 오히려 한국무용의 가능성을 더욱 넓혀준다고 봅니다."
-지난 17일 서울무용제 폐막식에 스테파 출연진들이 출연했습니다. 대중매체를 통한 시너지가 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한국무용을 더 알리려면 대중매체 등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스테파'는 새삼 환기시켜 줍니다. 코치님은 한국무용을 이미 널리 알려오신 분 중 한분이지만 이번 '스테파'를 통해 그 방법과 수단에 대해 또 다른 고민이 생겼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대중매체의 힘은 강력합니다. '스테파'는 대중매체가 한국무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콘텐츠를 통해 한국무용이 대중 속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스테파'에서 또 톺아볼 지점 중 하나는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의 융합입니다. 코치님은 세 장르의 융합이 필연적이라고 보십니까? 세 장르의 이상적 공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융합은 필연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장르가 가진 각자의 색깔과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조화롭게 결합하면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열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공존은 서로의 본질을 존중하면서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있다고 봅니다. 춤은 결국 하나입니다. 세분화된 장르 이전에 춤이 무엇인지 정의하면 '몸을 통해 전달하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이야기'입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몸짓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컨테포러리의 정신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익숙하지 않은 융합 과정이나 많은 스케줄로 인해 한편에선 부상도 우려합니다. 이럴 때 코치님의 현명한 조언이 더 필요할 거 같은데 어떤 말씀들을 해주시나요?
"부상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기본기와 자기 몸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또한 충분한 스트레칭과 휴식은 필수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실로 현장에서도 무용수들의 컨디션과 부상예방을 위해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 가장 우선으로 두고 있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무용수들의 피로도가 높아져 몇 주 간 촬영을 쉬는 결정을 한 적도 있습니다. 몸이 가장 큰 재산이기에 절대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용의 대중화' '대중화의 예술' 등 순수예술에 대한 대중화를 놓고 갑론을박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스테파'가 또 다른 시각으로 관련 논쟁에 쟁점을 안겨주는 거 같은데요. 순수예술의 대중화 영역 혹은 경계에 대해 코치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대중화는 순수예술의 본질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예술은 원래 대중 속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스테파'처럼 대중과의 접점을 잘 만들어간다면 순수예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도 대중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선 코치님의 다른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박자 강박이 심해서 제자들이 보경의 BK가 '비트 킬링(Beat Killing)'의 약자가 아니냐는 농을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는데요. 한국무용의 박자는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한국무용에서 박자는 단순한 리듬이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호흡'입니다. 춤의 흐름과 맥락에 따라 박자가 달라지며, 이는 무용수의 내면 표현과도 연결됩니다. 정확함보다 자연스러운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본인을 노력형 인간으로 정의하셨더라고요. 이번 '스테파'에 참여하신 무용수들을 보면서도 노력과 재능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셨을 거 같습니다. 둘은 당연히 긴밀한 관계가 있지만 노력이 천부적인 재능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재능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노력은 그 재능을 빛나게 하고 한계를 넘어서게 만듭니다. 노력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뛰어넘는 사례를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자주 목격합니다. 결국 꾸준함과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스테파'가 한국무용계에, 코치님에게 각각 어떤 전환점이 됐나요? 어떤 의미로 남을 거 같습니까?
"스테파는 한국무용을 대중에게 더 친숙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저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었습니다. 대중과 소통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고, 한국무용의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 발판을 계기로 우리 순수무용이 세장르 모두 대중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무용만이 갖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책임감이 뒤따라야겠죠. 보다 성장하고 나아가는 무용계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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