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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직을 맡기까지의 여정은 2001년 그가 지휘봉을 잡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1998년 월드컵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예기치 못한 전화 통화, 대담한 대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네덜란드인이 태극전사들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나가게 될 혁신적인 업무 방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의 시작이었다.
히딩크는 결국 대한민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되었고, 2002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준결승까지 이끌었다.
베테랑 네덜란드 감독은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제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이었고, 한국은 우리 조에 속해 있었죠."
"마르세유에서 열리는 경기 하루 전날, 우리는 스타드 벨로드롬 경기장에서 1시간 동안 훈련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고, 그 다음에는 한국 대표팀이 훈련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훈련하고 있었기에, 저는 '조금만 더 하게 두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사이드라인에 깔끔하게 일렬로 서 있었죠."
"우리가 할당된 훈련 시간을 15분 초과하자 FIFA 관계자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아, 5분만 더 합시다' 라고 말했죠. 그리고 그게 10분이 되고, 15분이 되었습니다. 우리 같았으면 경기장으로 밀고 들어왔을 텐데, 한국 대표팀 매니저는 그저 거기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것이 그들 문화의 일부 였다는 것을 말이죠."
"그로부터 1년이 조금 지난 후, 제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모르는 번호였죠. 수화기 너머로 '아, 안녕하세요 히딩크 씨' 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르세유에서 뵈었던, 1998년 당시 대표팀 매니저 중 한 명이었던 가삼현입니다. 지금 암스테르담의 암스텔 호텔에 머물고 있는데, 감독님 집 맞은편입니다.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사람이 내 집 주소를 어떻게 알지?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관련해서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제게 설명했습니다. 당시가 2000년 11월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서 호텔로 걸어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현대 CEO의 오른팔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최소 16강에는 진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체면을 크게 구기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죠"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16강이라고? 당신들 지금 FIFA 랭킹이 몇 위지, 70위 즈음 아닌가?' 한국은 이전에도 월드컵에 출전한 적은 있었지만 단 한 경기도 이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아 유로 96과 1998년 월드컵을 경험한 후라,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저는 두 가지 조언, 즉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말했죠. '당신들이 진심으로 그런 목표를 원한다면, 월드컵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
"저는 대표팀을 클럽팀처럼 훈련시키고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한국에서 뛰고 있는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은 1년에서 18개월 동안 함께 훈련하며 발을 맞추기 위해 소속 구단으로부터 휴가(차출 허락)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제안은 그 선수단과 스태프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축구 강국들과 평가전을 치를 수 있도록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한국은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과 경기를 하며 월드컵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들이 그런 경기에서 이기면 사람들은 모두 '오, 팀 폼이 좋아 보이네' 라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상대와 맞붙게 됩니다. 선수들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다른 문화도 배우며, 새로운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대차게 참패를 당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지대(컴포트 존)에서, 안온한 환경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주제는 선수단의 쇄신, 세대교체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34세 이상의 고참 선수들에게 상당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팀 내부에 새로운 바람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실제로 내가 한 제안들을 실행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습니다. 당시에는 '오, 내가 정말 한국 대표팀을 맡게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 제안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눴고, 한 10일쯤 지나 제 전화기가 다시 울렸습니다. 그였습니다. 그가 '네, 저는 다시 호텔로 와 있습니다. 잠시 들러주실 수 있나요?' 라고 물었죠. 제가 걸어갔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 포인트: 국가대표 선수들은 계속 함께 모여 훈련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포인트: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평가전을 치를 예산도 마련되었습니다. 세 번째 포인트: 여기 감독님 계약서가 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사람들이 진짜로 이렇게 다 추진을 했다고?'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결단력과 무언가를 이뤄내려는 열망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곧 이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서울로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