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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개혁을 꿈꾸는 홍명보, 달라지지 않은 정몽규(6년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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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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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홍명보(49)는 유독 적극적이었다.


5일 오전 축구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대한축구협회 출입언론사 기자간담회. 48개 언론사의 팀장급 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대한축구협회는 정몽규 회장과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홍명보 전무이사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대화의 장을 열자고 있다.


같은 날 오후 감독선임위원회 회의 및 브리핑을 앞둔 김 위원장은 신중했고, 정몽규 회장은 책임론을 외면하며 회피성 발언에 급급했다. 기대했던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적극적으로 발언한 쪽은 홍 전무다. 홍 전무는 지난해 11월 협회에 들어온 이후 반 년 가까이 한국 축구 개혁안을 준비했고, 이날 간담회 개최에도 적극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 마디도 속시원히 꺼내지 않은 정몽규 회장 ⓒ대한축구협회이미지 크게 보기

▲ 한 마디도 속시원히 꺼내지 않은 정몽규 회장 ⓒ대한축구협회

◆ 정몽규 회장은 책임을 회피했고, 홍명보 전무는 위기를 인정했다


대부분 질문이 정 회장에 집중됐지만, 속시원한 대답,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자 홍 전무가 부연하고 추가 발언하는 상황이 여러 번 나왔다. 홍 전무는 한국 축구의 실패를 인정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유산 상당수를 잃고 첫 승의 벽이 높던 1990년대로 돌아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저는 이번 월드컵이 7번째 맞는 월드컵이었다. 하지만 지난 월드컵과는 다른 상황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봤다. 제가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제 느낌은 딱 두 가지였다. 참 많이 힘들었고, 또 하나는 많이 안타까웠다. 그 힘들고 안타까웠던 가장 큰 이유는, 제가 2002년 월드컵에 나가기 전, 1986년, 1990년, 1994년, 1998년의 상황이 많이 오버랩 됐다. 저도 그 당시 느낀걸 지금 우리 선수들도 아직도 느끼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는 저도 예전엔 뭔가 이걸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뭔가 벽에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도 밖에서 경기 봤을 때 저는 매 순간 상황, 선수들의 표정, 이런걸 봤을 때 예전과 너무 같다는 생각 들었다.”


“우리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전후로 나뉘지만 내 생각에 안타까움 많이 들었다. 과연 어떤 식으로 앞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또 우리 선수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지난 7개월 간 여러 일을 배웠고, 부딪혔다. 하지만 이것들이 지금 우리 축구협회에서만 할 수 이는 일이 많지 않은 것도 느꼈다. 우리가 어느 정도 환경이 모든 것들이 토대 위에 있어야 하는 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앞으로 축구협회뿐 아니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같이 고민할 문제다. 그래서 오면서 든 생각은, 정말 축구를 축구인들과 축구 사랑하는 분들께 돌려드릴 수 있는 행정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갖고 돌아왔다. 특히 이번에 많은 분들 고생했고 대표팀 위해 많이 노력해주셔서 감사 드린다. 오늘 이 자리가 아마 여러분도 저희들 이상으로 많은 것 느끼고 뭔가 생각 많이 가졌을 것이다. 협회에서 여러분들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 그런 것들 알려주시면 반영해서 정말 발전된 모습, 축구가 발전된 모습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좋은 의견 말해주시면 좋겠다.”


협회의 재정 운영 총괄은 정 회장, 대표 팀 지원은 김 위원장이 답했고, 홍 전무는 유소년 육성 단계에 집중해 발언했다. 한국 축구는 대표 팀이 현 전력으로 최대 성적을 거두는 단기 목표, 장차 세계적인 선수를 꾸준히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장기 목표를 갖고 있다. 홍 전무는 협회의 행정을 총괄하는 자리에서, 후자에 주력하고 있다. 홍 전무는 지난 반 년간 유소년 축구 현장의 고충을 듣고, 정부부처와 협의해 손 볼 수 있는 제도 문제 개선에 주력해왔다. 홍 전무는 지금이 한국 축구의 위기가 맞고, 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월드컵이 이렇게 됐다고 이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3개월 전부터 현장에 있는 모든 걸 파악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것들이 반영되지 않고 정책이 되지 않으면 4년 아니라 8년, 12년 후에도 똑같다. 여러분 다 가고 다른 분 와도 다 같은 얘기할거다. 구조적인 게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어서 발전된다면 바꾸는 건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발전되지 않고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유소년 단계에서 신체적으로 좋은 선수, 기술적으로 좋은 선수를 별도 운영해 서로 장단점을 보완한 뒤 20세가 넘어서 활용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 축구의 유소년 부분에 대해 단편적인 예를 말씀드리겠다. 예를 들면 우리가 13세부터 19세, 이때가 축구선수로서 중요한 시기다. 그런 우리 축구 현실이 어떤가. 제가 지난 겨울에도 중고교 시합을 다닐 때, 기본적으로 14세 15세 16세에선 강도가 다른 형태 경기를 계속 이어가야 17 18 19세 가서 조금 더 국제적으로 성인에 가까운 레벨의 축구 할 수 읶는데, 우리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가면 1학년 쉬고, 중2때도 반은 쉰다. 중3 가서 경기하면 8월에 끝난다. 고1로 가면 또 쉰다. 6년 간 거의 3년은 경기력 없이 선수들이 이어간다. 그리고 고1에 가서 잘하는 선수가 있는데, 충분히 할 수 있는 선수인데 전반전에 경기를 못나간다. 고3이 대학 가기 위한 시간 맞추기 위해, 고1 선수가 못나간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후반전 20분만 뛴다거나 25분을 뛴다. 결과적으로 이 선수가 골을 넣고 경기를 결정한다. 이런 구조가 문제다. 프랑스의 음바페 이제 20살이다. 모든 주변 국가가 연령별 대회를 하는데 우리는 거의 반은 놀고 있는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능력 가진 선수들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 홍명보 전무이사 ⓒ대한축구협회이미지 크게 보기

▲ 홍명보 전무이사 ⓒ대한축구협회

◆ 해설자에 보낸 홍명보의 쓴 소리, 영웅들이 꺼리는 ‘협회 입사’


사실 이 간담회의 주요 이슈는 대표 팀이 월드컵에서 두 대회 연속 실패한 것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감독으로 참가한 홍 전무도 책임이 없지 않다. 당시 대회 이후 사임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협회의 제안으로 행정 수장을 맡아 복귀했다. 슬그머니 좋은 자리를 꿰차 돌아온 회전문 인사는 아니다. 홍 전무는 “지금 들어오면 욕먹는 자리라는 걸 알지만 한국 축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라 수락했다”고 했다.


실제로 홍 전무는 간담회에서 지상파 방송 3사 해설위원의 쓴 소리에 대해 현장에서 직접 도움을 주고 경험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온 종일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홍 전무의 발언은 해설위원의 직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월드컵에 나간 사람들하고 생각의 차이 있는 거 같다. 2002년은 그 동안 1986년, 1990년, 1994년, 1998년 월드컵에서 한번도 증명하지 못한, 우리 선배들의 힘이 모여서 됐다고 생각한다. 그 해설 세 분은 젊은 나이에 처음 나간 월드컵이 성공하고 그 다음에도 성공하니까, 본인들은 충분히 성공하고 다른 사람이 못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현장의 꽃은 선수로 볼 수 있지만 사실 지도자다. 오케스트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휘자다. 감독 경험을 해봤다면 해설이 좀 더 깊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홍 전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한 선수들이 직접 한국 축구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일해주길 바란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꾸준히 전해왔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1년 앞두고 덜컥 대표 팀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도 “죽을 것을 알지만 맡았다”고 한 홍 전무는 그때도 지금도 “내 명예는 축구로 얻은 것이니 축구로 잃어도 상관없다”는 자세로 일하고 있다.


선수로 무한한 영광을 얻은 홍 전무는 사실 굳이 자신의 명성에 해가 될 협회 일을 하기 보다 해설위원으로 논평하는 쪽이 더 편하고 명예로울 수 있다. 홍 전무가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 해설위원의 발언에 아쉬움을 표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이들 중 박지성 위원은 협회 유스전략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홍 전무는 사실 정 회장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 이후 토사구팽당한 인사다. 홍 전무는 협회와 대표 팀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는 시기에 욕받이를 자처했다.


선수 시절 행정 지원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홍 전무는 사실 현역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보다 행정가의 꿈을 꿨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선수단 사이 가교 역할을 요청한 협회의 제안을 못 이겨 수락한 뒤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행정가의 길도 평탄한 순간이 아니라 최대 위기 상황에 맡았다. 득보다 실이 많은 자리다.

▲ 정몽규 회장이 바뀌지 않으면 홍명보 전무의 개혁 의지는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이미지 크게 보기

▲ 정몽규 회장이 바뀌지 않으면 홍명보 전무의 개혁 의지는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 개혁을 꿈꾸는 홍명보, 달라지지 않은 정몽규


협회의 지난 11월 대대적 인사쇄신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쪽은 김판곤 국가대표선임위원장의 체계적인 대표 팀 평가 및 감독 선발 프로세스다.


대표 팀 지원은 김 위원장의 주 업무다. 본래 이 자리에 다른 인사가 내정되어 있었다. 홍콩에서 일하던 김 위원장을 협회로 불러들인 것은 홍 전무다. 홍 전무가 국가대표선임위원회 위원장, 실질적인 과거 기술위원장의 자리를 정하는 일에만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홍 전무는 대표 팀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적임자로 김 위원장을 추천해, 선임을 관철시켰다.


홍 전무가 지난 반년 간 가시적 성과를 낸 것은 없지만, 협회와 현장의 괴리감을 좁히기 위한 소통을 적극 시도해 그 간극을 좁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하다. 언론과 협회, 대중과 협회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첫 시도가 5일 간담회였다. 하지만 의지와 별개로 정 회장의 자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홍 전무와 김 위원장이 한국 축구를 개선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 전무는 자신이 추진하는 한국 축구 개혁이 꼭 성공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지금 당장 열매를 따고 꽃을 보려는 건 아니다. 이렇게 키운 선수들이 앞으로 언제 한국 축구를 위해 좋은 모습 보일지 모른다. 못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걸 위해 협회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협회 직원도 마찬가지고 축구인도, 언론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기회는 한국 축구에 하늘에서 내려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기회를 못 살리면 한국축구에 앞으로 더 이상 기회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축구는 지금 명백한 위기다. 2013년 정몽규 회장 체제가 시작된 이래 재정도 흥행도 성적도 바닥을 향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아쉬웠던 것은 “정치적 대형 이슈 때문에”, “선수들의 기술이 부족해서”, “유소년 육성 시스템 때문에”, “한국 사회의 제도적 문제 때문에”, “전임 기술위원장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말로 대표 팀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던 정 회장의 모습은 그래서 아쉽다.


실무자가 의지를 가져도, 최종결정권자가 바뀌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밖에 없다. 작은 변화는 있을 수 있어도 큰 틀이 변하긴 어렵다. 홍 전무와 김 위원장의 노력이 도매급으로 적폐가 될 수도 있다. 쇄신 의지를 보여도 최종 결정 단계에서 반려되면, 무려 세 차례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과 자신의 사직서를 건넸던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처럼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다.


협회의 새 집행부가 헌신해도 앞으로 4년 간 정 회장의 리더십이 바뀌지 않으면 또다른 욕받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감독도 행정가도, 한국 축구는 소중한 자원을 계속 잃어가고 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는 현장에서 “이런 저런 제안을 받았지만 탁상행정만 이뤄질 것 같아서 안 갔다. 결국 그렇게 됐다”며 확실한 권한과 추진력이 주어지는 상황이 되어야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이영표를 비롯해 여러 축구 영웅들이 지난 몇년간 협회의 제안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입사를 꺼렸던 박지성도 워낙 위기 상태라 마지못해 비상근직으로 수락했다. 이영표는 "책임을 진다는 것이 꼭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다. 새 집행부는 이제 구성됐다. 지금 일하고 있는 분들이 책임을 지고 일을 잘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혁명적인 변화는 필요하다"고 오묘한 말을 남겼다. 혁명적 변화에 대한 요구는 여기저기서 나온다. 전면적 집행부 쇄신으로 충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려운 미션을 떠안은 이들만 욕받이가 된다면, 홍 전무의 당부에도 한국 축구의 누구도 협회에서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일하고 싶은 협회가 되기 위해선 정 회장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책임과 위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혁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윗물이 바뀌어야 아랫물이 바뀐다. 지금이 한국 축구의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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