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혼성 댄스 그룹의 열기가 대중음악 지형을 뒤바꾸던 시절이 있었다. 손재곤 감독의 신작 <와일드 씽>은 그 시대를 통과한 가상의 그룹 트라이앵글의 현재를 조명한다. 한때 짧게나마 정상을 찍었던 이들이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연예인으로 살아가던 와중, 다시 한번 빛나는 무대에서 재도약할 기회가 찾아온다. <와일드 씽>은 <해치지않아> <이층의 악당> <달콤, 살벌한 연인>의 손재곤 감독이 어느 때보다도 가장 선명한 코미디영화로 귀환한 작품이다. 그는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오정세가 만들 예측 불가능한 앙상블을 두고 담담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 잊혀진 혼성 댄스 그룹의 이야기에서 가능성을 본 이유는.
그 당시 음악들이 예능,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문화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직접적으로 특정 모델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아이돌, 그리고 10대들의 팬 문화는 80년대, 90년대 초중반에도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 아이돌 문화가 열기와 규모 면에서 폭발적으로 커졌다. 지금의 K팝 문화가 태동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특히 되돌아봄직한 시기다.
-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아련한 과거가 아닌 재기를 꿈꾸는 현재다. 돌아보면 손재곤 영화의 주인공들은 ‘한물간’ 상태의 애잔함을 품고 있다. 고군분투의 페이소스, <와일드 씽>에선 어떨까.
내가 사는 게 힘이 들어서 그런가? (웃음)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건 아닌데 시나리오를 쓸 때 주류로부터 약간 소외된 위치의 인물들에게서 코미디적인 순간을 찾는 것이 극적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강동원 배우가 연기한 인물도 한때 짧게나마 정점을 찍은 후, 젊은 세대는 기억도 못하는 셀러브리티로 살아가다가 재데뷔의 기회가 주어진 프로그램에 참가해 좀 지나치게 열심히, 결사적으로 달려간다.
- 엄태구 배우는 특유의 내향형 성격으로 작품 밖의 이미지가 뚜렷한데 <와일드 씽>에선 래퍼다.
나도 그 면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정이 과다하고 에너지 넘치는 ‘폭풍 래퍼’와의 조화가 재미있겠다고 봤다. 과거 활동 당시엔 상대적으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는 상처가 있는 남자인데 재데뷔의 기회 앞에서 용기를 낸다. 엄태구 배우는 알려진 대로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지만 친해지면 의외로 수다스럽기도 하고 굉장히 적극적이다.
-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배우들의 댄스 퍼포먼스는 어떤 모습이 될까.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상 무술영화에서 액션 트레이닝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무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중요한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특히 피날레 장면에서 확실한 재미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 톡 쏘는 말들의 스크루볼코미디에 더해 무대 위의 슬랩스틱, 그리고 생존 앞에서 혼탁해진 마음에 다시 순정을 수혈하는 주제가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동안 시도한 손재곤표 코미디와 비교해 <와일드 씽>이 품은 웃음의 기조를 들려준다면.
현대 영화들이 대부분 혼합 장르이듯 이전에 내가 만든 영화도 범죄스릴러, 로맨틱코미디 등의 결합이었다. 혹은 드라마에 더 가까웠다고도 할 수 있고. 이번 작품은 부분적으로 음악, 액션 등을 적극 차용하지만 거의 완전한 단일 장르로서의 코미디를 지향했다고 봐주시면 좋겠다. 관객의 선명한 즐거움과 유쾌함을 위해 달려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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